오늘 아침 비를 뚫고 출근하는 길에 빵집에 들러 블루베리 스콘을 샀다. 하나는 나의 사우디 친구 A에게 주고 하나는 아침 삼아 자리에서 먹으려고 2개를 담았다. 회사에 도착해 A가 회사 메신저에 접속했는지 확인하고 아침 인사를 했다.
나 : A! 알 게이르~
A : 사바 알 누르~
그제서야 '사바'를 놓친 것을 확인했다. '사바 알 게이르'는아랍어 아침 인사로 '좋은 아침~'이라는 뜻인데 '사바'는 아침이라는 뜻이다. 이에 '밝은 아침~'이라는 뜻의 '사바 알 누르~' 라 화답하는 것이 아랍식 아침 인사이다. 이 얼마나 정다운 아침 인사 인가. 우리나라에서는 '밝은 아침!'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 표현이니 말이다. 역시 밝은 태양이 떠오르는 중동국가 다운 인사말이다.
틀린 아랍어를 바로 잡으며 킥킥 대다가 내가 아르와에게스콘을 먹느냐고 물었다. 스콘이 무어냐는 물음에 쿠키 비슷한 빵이라고 했더니 먹는다고 했다. 돼지고기나 매운 음식을 먹지 않기에 다른 건 몰라도 음식을 전할 때는 먼저 노크를 똑똑 두드린다. A가 있는 2층에 잠깐 내려가 스콘 하나와 포지타노 레몬 캔디 하나를 가져다주고 자리로 돌아왔다.
태풍 '카눈'이 몰려온다는 소식에 지하 구내식당에서 먹어야 하나, 아니면 사온 스콘이랑 우유로 간단히 때워야 할까 고민했다. 내 마음을 알았던지 A는 점심 나가서 같이 먹겠냐고 메신저로 말을 건네주었다. 나는 근처 쌀국숫집을 추천했고 할 얘기가 많은 우리는 평소 점심시간 보다 5분 먼저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내렸다. 평소 보다 기온이 낮아 시원하고 바람이 불지 않아서 우산을 쓰긴 하지만 오히려 좋은 날씨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비 내리는 날 보다 햇빛이 쨍쨍한 날에 날씨가 좋다고 말한다. 아랍에서는 그와 반대여서 비 오는 날을 좋아하고 아랍사람들은 비를 '축복'으로 여긴다고 한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도 안 쓰고 밖에 나가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그 해롭다는 '산성비'를 먹으려는 장난꾸러기 어린 시절도있었다. 이제는 산성비를 맞으면 머리카락이 몽땅 빠진다며 물 한 방울 안 묻힐 요량으로 우산과 우비 거기에 장화까지 챙겨 신어 장마 룩을 완성한다. 청춘 드라마에서 남자친구와 헤어진 비련의 여주인공이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버스정류장에서 오열하는 장면도 어색하지 않게 다가온다. 또 태풍 피해로 농사를 망치거나 장마철에 배수로가 막혀 물이 범람하는 안 좋은 소식을 뉴스에서 접한다. 나 또한 비 오는 주말에는 집순이가 되고 심지어 위험하다는 이유로 차도 안 타려고 한다.
그치만 아랍에서는 비가 오면 차를 타고 비를 맞으며 집 근처를 드라이브한다고 했다. 우산을 쓰고 쌀국숫집으로 향하는 길에 사우디에서는 우산 안 쓰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도 했다. 회사를 가거나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에는 우산을 쓰지만 비가 오는 날에 아랍인들은 부러 비를 맞으려 한다며, A도 비 오는 날에는 집 마당이나 옥상에서 10분 정도 비를 맞기도 한단다. 그건 마치 명상 같은 거라고하니 이 얼마나 놀라운 문화적 차이인가.
쌀국숫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비가 많이 와서 인지 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늘 바글거리던 식당도 카페도 한적했다. 한국에 있는 아랍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 오히려 좋은 날이기에 꼭 약속을 잡는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아련하거나 우울한 느낌보다는 오히려 좋다는 기분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역시 아랍인 친구가 생기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이렇게 넓어지는구나!
평소보다 한적한 카페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몸을 녹였다. 한동안 육수 줄줄 하는 더위로 무조건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셨는데 오랜만에 따뜻한 허니자몽블랙티를 주문했다. 비바람이 불어 우산을 붙들고 가는 사람들을 창밖으로 바라보는데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에 어떡하지. 밖에 진짜 비 많이 오는데 어떻게 가나.' 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여기서 따뜻한 차로 몸을 녹이는 이 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건 아마도 비는 '축복'이다 라는 생각의 씨앗이 마음판에 심어졌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