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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더 Aug 13. 2023

아랍어로 쓴 엽서를 아랍사람이 읽지 못한 이유

회사에서 아랍인 친구사귀기 (3)


한글은 ㄱ,ㄴ,ㄷ,ㄹ... 자음이 총 14개인데 아랍어는 그에 2배에 달하는 28개의 자음과 3개의 모음으로 구성되어 다. 아랍어 특유의 발음인 목에 가시가 걸린듯 힘주어 소리내는 ㄱ 발음, 양치할 때 '캭-' 하는 듯한 ㅋ 발음, 베이스 성악가 처럼 성대를 아래로 쭉 내려서 소리내는 ㄷ 발음 등으로 미세하게 다른 자음들이 있다. 아랍어 알파벳을  외우기 어려워 아랍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레 겁을 먹고 포기하게 된다. 흐물흐물하게 선을 긋다가 중간에 점을 선 사이로 여기저기 툭툭 찍으면 하나의 문장이 완성된다. 아랍어를 배우기 전에는 아랍어를 쓰는 모습이 그렇게 보였다. 그렇듯 아랍어는 소리내기도 쓰기도 어려운 글자로 가장 배우기 어려운 외국어로 꼽힌다.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발주처 소속인 N씨가 마지막 미팅을 위해 우리나라로 출장을 왔다. N 씨의 딸이 블랙핑크를 좋아해서 블랙핑크가 입은 짧은 스타일의 치마를 사가야 한다고 했다. 사우디 젊은이들 사이에서 K-POP 스타 들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그 인기를 실감  수 있었다. 특히 한국 K-POP 중에서 BTS를 빼 놓을 수 없다.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서 비아랍권 최초 아이돌인 BTS 의 콘서트에 3만명의 인파가 모여들었다는 뉴스를 보고 K-POP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가수들은 세계 각국에 우리나라를 긍정적인 이미지로 전달하는 문화적 통로이자 홍보대사였다. BTS 급으로 할 수는 없지만 나도 작은 한국 홍보대사가 되어 사우디 발주처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N씨와 나는 개인 연락처를 주고 받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혹은 사우디에서 일어난 뉴스에 대해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N씨와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대화할 때 영어를 쓰다 보니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에 아랍어를 초급 수준으로 라도 구사해 대화한다면 얼마나 친근히 느껴질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 또한 비영어권 국가 이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초급 한국어로 인사할 때 더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드니까.


N씨가 미팅을 마치고 돌아가는 날에 그림을 전해 주면서 짧게 아랍어로 편지를 쓰기로 했다. 아랍어 감수는 내 옆자리에 있는 사우디 동료인 R이 맡아 주었다. 엽서를 쓰기 전에 먼저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한 다음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한국어를 아랍어로 번역했다. 그렇게 완성한 아랍어 초안 편지를 본 R은 피식 웃었다.


한국어를 아랍어로 바로 구글 번역하면 오역이 너무 많다고,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한 다음 영어를 구글 번역과 네이버 아랍어사전을 이용해 번역해야한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랍어 편지 수정본1이 나왔고, R의 최종 검토 후에 내용을 출력해서 엽서에 손글씨로 담았다. 꼬부랑꼬부랑 하는 아랍어를 쓰다 보니 이건 무슨 글씨가 아니라 그림 같았다. 글씨를 한자 한자 보고 따라 쓴다기 보다는 선과 점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그린다는 느낌이었달까.

실제로 아랍문자는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 아랍 사람들은 아랍어를 예쁘고 화려하게 쓰는 것을 좋아하기에 같은 아랍어라도 고딕체로 쓰지 않고 화려한 글자로 캘리그라피 한다. 그런 아랍어를 보노라면 아랍어는 마치 그들만이 해독할 수 있는 기 같으면서 또 하나의 예술로 다가온다. 그래서 더욱 아랍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림인듯 글자인듯한 아랍어로 손바닥만한 엽서 한 바닥을 가득 채우고 R에게 어떠냐고 보여주었다. R의 표정은 처음에는 알쏭달쏭하더니 점점 킥킥대고 급기야 푸하하 터졌다. 무슨일일까. 보아하니 아랍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거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내 편지내용은 이런식의 글자가 된 것이다.

당신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게 되어 영광이었어요.

=> 영광 이었어요 프로젝트를 하게 되어 함께 당신과


순이 완전 엉터리가 된 편지였다. 어쩔 수 없이 아랍어와 영어로 쓴 본문을 인쇄해 엽서 왼쪽 페이지에 붙였다. 엽서를 집어 든 나즈라니씨는 내가 쓴 오른쪽 페이지를 한참 읽더니 나를 놀리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무슨 소린지 못 알아 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한참을 그 큰 눈을 깜빡깜빡 거렸다. 글자는 예쁜데 틀린 글자들이 있다고 했지만 대체로 의미는 통했던가 보다.  


여전히 아랍어 초급반에 전전하지만 인생은 백살까지 산다고 하지 않다던가. 어차피 까먹고 말 언어지만 남들은 못하는 언어를 나는 야금야금 쓰고 읽고 또 대화할 줄 안다면 사우디 친구들에게는 큰 선물이 되고 무엇보다도 재미난 대화를 더 많이 나눌 수 있을 것이다.


N의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2개의 국기가 나란히 놓여있는 사진이 걸려있다. 왼쪽에 대한민국, 오른쪽에 사우디 깃발이 크로스로 놓인 사진이다. 한국을 좋아하는 사우디 사람, 사우디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이 우정을 쌓아 가는 방법은 작은 정성과 관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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