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를 안무하다 - 고립

먼저 연습실을 나온 날

by 김성용

리허설을 시작한 지 세 달이 지나고, 공연을 한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매일 아침부터 오후까지 이어진 시간 속에서 우리는 적지 않은 장면을 통과해 왔다. 구조는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고, 나는 우리가 충분히 멀리 왔다고 믿고 있었다. 이제는 다듬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날, 프로세서들의 고민과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전조를 읽지 못했다.

이미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생각했기에, 우리는 같은 이해 위에 서 있다고 믿었기에, 그 간극은 더 크게 느껴졌다.


그들이 꺼낸 말들은 차갑게 들렸다. 어쩌면 실제의 온도와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의 나에게는 모든 문장이 따지듯이 다가왔고, 설명이라기보다 공격처럼 느껴졌다. 프로세서들은 여럿이었고, 나는 혼자였다. 그 구도가 유난히 선명하게 다가왔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쌓아온 시간이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나는 다른 편에 서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서운함이 먼저 올라왔다.

우리는 같은 그림을 보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 믿음이 나만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나는 설명하려 했고, 이해시키려 했고, 동시에 내 말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것을 느꼈다. 말이 길어질수록 내가 더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안무가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날은 내가 먼저 리허설을 마쳤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고 말한 뒤, 프로세서들이 여전히 공간에 남아 있는 채로 나는 먼저 연습실을 나왔다. 문을 닫는 순간에도 안에서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었다. 바닥을 스치는 발소리와 숨 고르는 기척이 희미하게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끝까지 듣지 못한 채 복도를 걸어 내려왔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낮의 빛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침부터 이어진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남아 있었고, 나는 그 흐름에서 잠시 이탈한 사람처럼 서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문득 숨이 얕다는 걸 알았다.

공연은 한 달 남아 있었다.

지금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미 중심이 미세하게 어긋나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사실은 무너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작품이 아니라, 내가.


Process init이라는 방식 안에서 나는 과정을 열어두되, 결국 장면을 고정해 왔다. 그 선택은 책임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그 책임이 누군가에게는 아직 보이지 않는 부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내가 서 있던 자리가 갑자기 낯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시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안에서 나만 조금 다른 속도로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비슷한 시간을 지나왔을지 모른다.

열심히 해왔다고 믿었는데 어느 순간 관계가 어긋나는 느낌.

이해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순간.

여럿의 시선 앞에서 설명해야 하는 자리에 서 있지만, 그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 먼저 느끼는 시간.


그 고립은 조용하지만 깊다.


그날의 나는 많이 외로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공연이 끝난 뒤에야, 나는 그 시간을 조금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차갑게 들렸던 말들 속에는 각자의 절박함이 있었다는 것을, 다수와 홀로 서 있던 구도 역시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같은 작품을 붙잡고 있던 장면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말해주었기에 우리는 멈출 수 있었고,

그 멈춤 덕분에 조금 더 깊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그날의 외로움을 지우지는 않는다.

그날은 분명 너무 힘들고, 아프고, 무너질 수도 있겠다고 느꼈던 시간이었다.


이제는 안다.

그날 내가 먼저 연습실을 나왔던 그 순간까지도 리허설의 일부였다는 것을.


리허설은 작품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작품이 되고 있는 시간이다. 세 달의 축적과, 공연을 한 달 앞둔 그 흔들림까지도 결국 무대 위의 질감이 된다. 갈등과 침묵, 서운함과 질문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장면을 만든다.


그 균열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 작품은 지금의 얼굴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이 일이 있었기에 나는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나는 확신보다 질문에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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