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6
가을걷이 끝낸 들녘엔 짧은 벼 밑동들이 줄 맞춰 서 있습니다.
그것도 걸어가니 보이는 풍경입니다.
자동차 운전해서 출근할 땐 미처 보지 못했던 모습입니다.
게을러서 가까운 거리임에도 굳이 차 몰고 출근했던 자신이 한심하기 이를 데 없음을 깨닫게 해주는 아침입니다.
아침 인계시간 전인데 나팔꽃님이 워커 잡고 거실 한가운데 서 계십니다.
“내가 다 봤어요 내 돈 찾아와서 나눠 갖는 거”
“아 글쎄 내놔요 아니면 내가 아무 말 안 하고 이번만 눈감아 줄게요”
“빨리 돈 가져오던지 경찰에 신고해 주던지 하세요”
“어르신 우린 아무것도 안 가져갔어요 아마 아드님이 가져가셨을 거예요”
요양보호사들이 귀 막고 고개 저어 봅니다.
그래 도어 찌나 큰소리로 소리 역정 내시는지 달아나는 영혼을 잡을 수 없습니다.
나팔꽃님은 젊어서 교통사고 당하셔서 보험금회사에서 평생 생활비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렇게 나오는 돈을 우리 요양보호사들이 다 같이 나눠서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시나 봅니다.
아마도 그냥 그대로 말씀하시는 거 들어 드리면 하루 종일 되풀이 하실 기세입니다.
우린 서둘러 며느님께 전화 걸어 드렸습니다.
“아유 어머님 그 돈 아범이 다 가지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아범 바꿔 드릴게요 아범한테 물어보세요” 하신 뒤 수화기 너머에선 남성 목소리가 나옵니다.
“엄마 돈은 제가 다 찾아서 쓰고 있어요 제발 그분들 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요양보호사들 힘든데 엄마가 자꾸 도둑 취급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 알았어 안 그럴게”하시고 통화 마무리 합니다.
나팔꽃님의 이런 현상은 주기적으로 약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발생합니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런 일 있을 때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벌어졌던 소동이 잦아들었습니다.
위생케어 후 나팔꽃님 방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나팔꽃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곤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아드님 목소리 듣고 마음이 안정되셨나 봅니다.
마치 자장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