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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나처 Dec 07. 2024

기억 저 편

스토리#21

담요가 풀썩 대고 뒤집어지더니 화투장이 흐투 뿌려집니다.

민들레꽃님이 어눌한 몸짓을 하고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십니다.

“왜 내 청단 가져가”

“네 꺼나 잘 챙기지 남의 것을 왜 가져가냐고?”

방금 전까지 어르신 네 분 이서 즐겁게 화투 놀이를 하고 계셨습니다.

웃음소리가 사방에 흩어져 원내 분위기도 웃음꽃잎으로 가득 차 어르신들 모두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민들레꽃님이 화가 단단히 나셨습니다.


민들레꽃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다른 어르신들과 다투십니다.

그래도 오늘은 가벼운 화투장이어서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입니다.

민들레꽃님은 화가 나면 무엇이든 집어던지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민들레꽃님 상두대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수시로 마셔야 하는 물통조차도 둘 수가 없습니다.


“아유 어르신 왜 화나셨어요?”하며 모시고 방으로 들어옵니다.

“저 할망구가 내가 모를 줄 알고 청단이 내 건데 가져가잖아 내가 바보 천지인줄 아나?” 하시며 침상에 털썩 앉아 쉬십니다.

저는 얼른 주머니에서 비스킷 하나 꺼내어 민들레꽃님 앞에 놓아 드립니다.

민들레꽃님은 비스킷을 받아 들고 아주 맛있게 드십니다.

목이 멜까 물통을 건네 드립니다.

기분이 좋아지신 민들레꽃님은 언제 다투었나 싶게 밝은 표정으로 “이 과자 맛있어요” 하시며 빙그레 웃으십니다.


혼자 계실 때에는 항상 인자하시고 잖게 말씀하시고 우리들 한테도 꼭 존칭을 써 주십니다.

그런데 다른 어르신들과 계시면 꼭 다투십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시간에도 혼자 따로 하시고 식사도 대부분 방에서 혼자 드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양원에서 다른 어르신들과 같이 어울리며 시간 보내시면 좋으련만…

혼자 계셔야 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비스킷 하나에 기분 좋아진 민들레꽃님 약간 비척대는 걸음으로 다시 거실로 나오십니다.

“고스톱이나 칩시다. 호호호호”


아마도 방금 전 일은 기억 저 편으로 사라져 갔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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