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내가 사는 곳이다. 내 몸안에 내가 살아야 나답다. 우리는 종종 몸밖에 살 때가 있다. 내가 아닌 남에 의해 살아진다. 남과 함께 산다는 것과 남에 의해 산다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종종 몸밖에 산다. 나의 맘이 몸밖에 촉수를 펼치고 주변을 살핀다. 남들을 지켜본다. 그들과 나를 비교하고 평가한다. 비교하는 것과 평가하는 것은 다르다. 그와 나를 보며 '그는 이렇고 나는 이렇다"이건 비교다. '그는 이게 좋고 나는 이게 나쁘다'이건 평가다. 우리는 종종 몸밖에 산다. 나를 나로 인식하지 않고 남과 견준다. 나를 평가하며 산다. 난 느려(누구보다) 난 작아(누구보다) 난 잘못해(누구보다).
나 어릴 적 병원집 아들이 있었다. 좋은 자전거를 탄다. 난 아버지가 자전거포에 중고자전거를 주문해 주셨다. 자전거가 조립되고 색칠되는 과정을 매일 가서 지켜보며 애가 탔다. 어서 나도 자전거 오너가 되고 싶었다. 드디어 친구들에게 한 번만 타 보자고 떼쓰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난 이미 영화'ET'에 나오는 녀석들처럼 멋지게 자전거를 탈 줄 안다. 병원집 아들과 같이 자전거를 탄다. 비록 내것은 중고자전거지만 난 그 녀석보다 자전거를 잘 타야 한다. 왜? 내건 중고니까. 중고인데 지기까지 하면 너무 속상하다. 신나게 타고 다녔다. 병원집 아들은 항상 내 뒤에서 따라와야 했다. 그래도 내것은 중고자전거였다. 브랜드도 없다. 내가 빨라도 내가 잘 타도 내것은 중고자전거였다. 바뀔 건 없었다.
교복을 입고 까까머리가 되어야 하는 나이. 아부지와 교복을 사러 갔다. 검은 교복에 검정 운동화 또는 검은 교복에 검은 구두. 영화'친구"에 나오는 교복 패션은 스타일이 두 가지다. 교복에 운동화, 교복에 구두.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다. 맘에 드는 스타일을 말하면 안 된다. 그저 아부지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앗싸!" 아부지는 구두를 사주셨다. 엄니는 뭐라 하시겠지만 아부지는 구두를 사주셨다. 내 표정을 읽으신 듯... 난 어여 빨리 학교에 가고 싶었다. 검은 구두 신고 검정 운동화가 아닌 검정이 아닌 검은... 어깨가 펴진다 고개가 들어진다. 길에서 병원집 아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 담날 아부지는 이발용 기구를 사 오셨다. 직접 나의 머리를 까까머리로 만드시려는 의지시다. 학교의 두발 기준은 머리카락 길이 3cm 이하였다. 아부지는 내 머리 전체를 3cm로 깎으셨다. 이건 머리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미는 것이다. 3cm짜리 어댑터를 끼우고 머리를 밀며 나간다. 윗머리도 3cm 귀 옆머리도 3cm 모든 머리카락의 길이는 3cm. 그때까지도 난 내 헤어스타일의 정체를 몰랐다. 그저 아부지의 정성에 감사함을 느낄 뿐, 검은 구두에 머리까지 손수 깎아주신 아부지. 담날 난 열정 가득한 신입생이었다. 교문 앞 선도부를 지나 교실에 도착하여 자리 잡고 앉아서 앞으로 함께 지내게 될 친구이자 경쟁자들을 촉수를 펼쳐 스캔했다. 역시 검은 구두의 존재감이란.... 음하하! 아부지 감사합니다. '실내 탈모' 당연하다. 급우들이 날 쳐다본다. 뭐지? 왜? 내 구두를 봐야 하는데 머리를 본다. 뭐지? 왜? 교실 뒤 거울로 간다. 내 머리를 본다. 나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 난 알아 버렸다. 내 머리를 봐 버림으로 알아 버렸다. 정수리에서 3cm로 내려온 머리카락이 모자 테두리에 눌려 그 부분은 1mm가 되고 다시 3cm 됨으로 내 두귀와 만나는 유일무이 한 스타일. 더 큰 문제는 아부지의 정성 가득한 의지에 부정적 피드백을 못하겠는 나의 마음. 난 한 학기를 그리 다녔다. 별명도 생겼다. '두리' 두리두리 테두리 ㅠㅠ. 그 후 나이를 먹어가도 좀처럼 변할 수 없었던 나의 용모에 대한 원칙은 검은 구두와 바짝 붙인 귀 옆머리... 트라우마!
내 몸안에 내가 살아야 하는데, 내 몸안에 남들이 살기 시작했다. 병원집 아들이, 눌린 머리를 보던 남들의 눈이, 게다가 중고 자전거가 나의 삶을 간섭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오만 것이 나를 간섭하며 같이 산다. 영업보다는 전략이지, 주식은 도박이고 투자는 부동산이지, 차는 벤츠지, 강북보다 강남이지, 여자는 여자다워야지, 이런 잡념들이 내 안에 쌓이며 난 내 몸 밖으로 조금씩 조금씩 밀려난다. 내 몸안에 내가 살아야 하는데 남들의 잡념이 살아간다.
"에버랜드 많이 가보셨죠?"
"그럼요! 자연농원 때부터 다녔는데요! 엄청 다녔죠!
"그러시겠죠! 근데요 자기 자신을 위해 가본 적 있으세요?"
"헉! 애들 데리고 운전하고 주차하고 줄 서서 표사고, 놀이기구 줄 서고 태우고 줄 서고 태우고, 밥 먹이고 또 줄 서고 태우고, 목말하고 태우고 안고 태우고 업고 태우고.... 이 짓은 해봤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 와 본 적이 있냐고?"
갑자기 주변이 사라진다. 멍해진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다. 내가 불쌍해진다. 그렇다! 내 몸은 주변 사람들의 바람으로 온통 채워져 있었다. 부모가, 아내가, 자식이, 친구가, 직장이, 사회가 바라는 것으로 가득 채워진 나. 오로지 책임과 의무로 뒤 덮인 나. 나는 누구이며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하루는 한 달은 일 년은?
내가 살아야 할 몸에 남들이 산다. 그래서 가봤다 혼자서 나 자신을 위해서... 그곳에 만발한 꽃들이 그렇게 나 많은지 몰랐다. 매번 놀이기구가 어디인지 식당이 어디인지 지도와 표지판만 보고 다녀서 못 봤다. 수도 없이 가봤는데 못 봤단 말이다.
나 스스로 나를 밀어내기도 한다. 내가 나를 밀어낸다는 말이다. 내가 나를 몸 밖을 밀어낸다. 주말에는 절대 가족과 함께, 누군가 말하기 전에 먼저 해놓기, 자식의 미래를 미리 고민, 후배가 밥값 못 내게 먼저 계산, 남들이 원하기 전에 선의를 베풀면 나를 따르리, 부모님께 좀 소홀해도 나는 애를 키우니 이해하시리, 조짐이 이상하면 먼저 내리기, 체면치레는 해야 함, 내 삶을 인도해 줄 외국어, 주 2권 1년 백권 읽기, 교회에서 역할하기, 화난 상태로 대화하지 않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없고 해야 할 것들로 가득가득하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채워진다
그래서 뭐! 근데 뭐! 그래서 어쩌라구! 난 나 답게 거침없이 살려구!
그래! 이제부터라도 달리하자. 몸 밖으로 밀려난 나를 다시 몸안으로 조금씩 조금씩 밀어 넣자. 나 스스로 짊어진 역할과 책임 그리고 수많은 간섭들을 내려놓고 덜어내고 지우고 지우고...
하나 버리기 - 1주일 꽉 찬 스케줄에서 3시간을 지우기. 그래서 무엇을 해도 용서가 되는 3시간을 갖기(아무것도 안 해도 신날 것 같다)
하나 버리기 - 거절 못하는 나를 불쌍히 여겨 하루 한 가지는 거절하기 (거절할 때 조건 달기 "해주고 싶은데 지금 내가 ~~ 하고 있어서 이거 다 끝나면 해줄 수 있어")
하나 버리기 - 후배랑 밥 먹으면 내가 계산해야 한다는 강박 버리기. 후배가 산다 하면 고맙다 말하기(매번 얻어먹는 후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스러워지던지 면역되던지...)
하나 버리기 - 아내에게 혼자 만의 시간, 혼자 만의 여행을 추천하기 나도 그리하기(그동안 왜 굳이 꼭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묶여 있었을까?)
하나 버리기 -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맘대로 하기. 아내에게 동의나 허락을 요구하지 않기. (내가 오디오가 사고 싶으면 사고, 아내가 뭐 산다 하면 그리하라 하기. '사느냐? 마느냐?'는 결국 자신이 알아서 현명히 판단함. 하지 말라하면 이상하게 더 하고 싶어 짐)
하나 버리기 - 부모님께 효도할 생각 버리기. 그저 아들 얼굴 보여드리기(부모님 찾아뵙고 청소해드리고 안마해드리고 맛난 거 사드리고 선물드리고 이런 생각 말고 부모님 찾아뵙기만 더 많이 하기)
하나 버리기 - 남에게 잘해주려는 생각 버리기. 남에게 못하지 않고, 부탁하면 귀담아 들어주고 가능하면 해주고(츤데레가 훨씬 멋지다)
하나 버리기 - 남과 비교 평가하는 것 버리기. 남이 뭘 하던 남이 뭐라던 나는 내 길을 가기 ("나의 길을 올 곳이 갈 것이지 남 따라 하는 원숭이 짓 하지 마라"라고 누군가 말했다. 멋지다!)
하나 버리기 - 미리 사놓는 소비 버리기. 꼭 필요한 것, 필요한 것, 있으면 좋은 것, 없어도 되는 것 순서로 돈쓰기 (떨어질 까 봐 미리 쌀 때 쟁겨 놓으며 물건이 쌓이고 쌓여 집이 좁아 보이지 않게)
하나 버리기 - 살 빼면 입으려고 넣어 둔 옷 버리기. 작년에 안 입은 옷 버리기. 작업 공구 버리기 (살 빠지면 나에게 상으로 옷 사주기. 작년에 그 옷 안 입은 나의 판단 지지해주기. 공구 빌려 쓰기)
하나 버리기 - 있는 척 가진 척하기 버리기. 나의 현실보다 가난한 척 하기 (현실 보다 있는 척하는 어색함 보다, 현실보다 가난한 척하여 남들이 부담 없이 사심 없이 내게 다가오게 )
하나 버리기 - 마주 앉은 상대가 있는데 스마트폰 보기 않기. 상대의 동공을 보며 대화하기
일단 버리고 버려서 빈 공간 빈 시간 빈 마음을 만들어 놓자. 그리고 나 다운 것들로 다시 채우자. 조금씩 조금씩 터질 듯 꽉 차게 하나씩 하나씩.
나 다움이 넘칠 때까지...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