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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권력 행사를 하고자 하는 마음과 행동들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 4

by 벌판에 서서

나는 요즘 온갖 것에서 내가 추구하려는 아버지의 힘을 본다. 온갖 것에서 아버지의 힘을 대리로 가져오려고 하는 나의 몸짓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약간 과도하게 멋진 옷을 사려고 한다. 쇼핑중독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가진 경제적 여유의 거의 반 정도를 옷을 구입하는데 소비한다. 퇴근 후 세일 문자를 받고 피곤한데도 어디서 솟는 아드레날린으로 옷을 사러 먼 길을 운전하고 갈 때였다. 이렇게 운전하고 가는 내 모습을 한걸음 떨어져 바라보면서 문득 ‘나는 옷을 통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남들이 내가 걸친 멋지게 잘 어울리는 옷을 보고는 감탄하고 약간 기가 죽는 그 순간을 즐긴다는 것을 안다. 별다른 주장을 하지 않으면서도 보아서 ‘멋있다.’ 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좋다. 물론 나 자신도 이런 나의 모습을 즐기지만 타인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그 힘을 즐기는 것이다. 힘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을 수 있지만 나의 멋진 겉모습이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넘실대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즐긴다.

그러나 즐기는 것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남들이 나의 힘을 느끼게 하는데 나의 경제적 여유의 반을 써 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그런데 그 힘도 일종의 아버지의 힘, 남들을 조종하고 남들에게 힘을 행사하려는 그런 성향에 기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것도 일종의 방대한 부분에서 내 속의 아버지가 행사하고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문득 느끼게 된 것이다.

내가 행사하려는 힘, 능력, 이런 것들은 모두 내 속의 ‘아버지 권력에의 의지’의 변형이라는 생각. 그래서 아버지는 내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구나, 나를 지배하는 그 무엇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차를 운전하는 것을 즐기고 마음껏 속력을 낼 때, 나 스스로 효능감을 느끼며 순조롭다는 생각을 가진다. 이런 능숙한 기술을 행할 때, 마음이 쭉- 뻗어가며 스스로 힘차게 앞으로 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것 뒤에 아버지의 힘들이 나를 밀어주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일상에서 나 자신이 정신적 권력을 가지고 자신감 있게 살아가는 것.

내가 생각하는, 내가 원하는, 내가 만나고 싶은 아버지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바라는 아버지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아버지라는 것이 가장 크다. 사려 깊은 아버지, 자상한 아버지일 것이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 조언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분석할 수 있게 하는 존재이다. 내 앞길이 어떤지 알고 앞길을 터주는 그런 존재. 내 앞에서 나의 손을 붙잡고 인생길을 끌어주는 무형의 존재이다.

이렇게 생각을 쓰다 보면 ‘그런 존재’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의 아버지인 것이 드러난다.

이런 생각 끝에 내 저 안쪽에 ‘어떤 우주의 아버지’같은 존재가 있어 나를 이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정말 알 수가 없고 잠시 감지 했다고 해도 어떻게 표현하기 힘든 어떤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중심이 되고 저 깊은 곳에서 나를 밀어내어 추진하게 하는 어떤 힘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결정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틀어가려고 할 때 뭔가 미심적다는 의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그런 것일 것이다.

한참을 잘못된 방향을 길을 가고 있을 때에 문득 ‘이것이 옳은 길인가?’ 하는 의구심을 던지게 하는 어떤 것일 것이다. 내가 뭔가 잘못된 길로 한참을 갔다던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될 때, ‘나는 이제 파멸이다. 이제 끝이다’라고 생각할 때, ‘그것이 아니다. 이 순간은 한 과정일 뿐이다.’고 말해주는 내 속에 있는 어떤 것일 것이다.

용기를 잃고 주저앉아 더 이상 일어서려고 하지 않을 때 한참을 기다렸다가 은근히 나타나 주저앉아 있는 것에 싫증을 일으키게 하고 서서히 일어나 앞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가게 하는 어떤 것일 것이다.

어떤 것이 옳다고 생각될 때 그것으로 향하게 하고 끊임없이 그쪽으로 가게 하는 그런 힘일 것이다.

타인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그 속으로 빠져들려고 할 때 나를 털어내어 의심 속에서 너털웃음을 웃으며 의심을 다시 의심하게 하는 그런 한줄기 생각들일 것이다.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하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려고 하는 투지를 가지게 하는 어떤 마음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추진력을 주고, 가다가 쓰러지고 무릎이 쓸려나가 피가 나도 그것은 아주 조그만, 길을 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힘일 것이다. 어떤 일을 대했을 때,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하는 힘일 것이다. 그런 힘.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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