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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타 Jan 26. 2021

체력은 국력이다.

새벽에 조깅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축구는 체력이다. 


인사이드 킥! 발의 안쪽을 이용해 볼을 차는 방법이다. 가장 기본적인 킥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나에게는 결코 쉽지가 않다. 주로 동료들에게 정확한 패스를 할 때 사용한다고 하지만 몸과 마음은 항상 따로 노는 법이다. 가끔은 몸과 입도 따로 노는 경우가 있다. 

“준수야 받아라!! “

분명히 입으로는 준수에게 패스를 했지만 공은 저 멀리 엉뚱한 곳으로 날라갔다.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패스였고 상대방과 준수를 모두 속이고 심지어 나조차 속아 넘어 가는 마법같은 패스였다. 축구에서 가장 정확도가 높은 패스를 할 때 사용한다는 인사이드 킥 역시 이렇게 변수가 많다. 그래서 항상 운동장에 도착하면 인사이드 킥 연습을 많이 한다. 가장 안정적으로 써야 하는 기술이니 잘못하면 큰 민폐를 끼치는 것은 물론이고 망신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뭐 체면 따위야 신경 쓰지 않는지 오래지만···. 


아웃프런트 킥! 내가 축구 하면서 전혀 시도해 볼 일이 없는 킥이지만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천수가 아웃프런트 킥을 차는 것을 보고 홀딱 반해버려 수 십 번은 다시 돌려 보았다. 정말 신기한 궤적을 그리며 날라가는 공을 보고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운동장에 텅 빈 골대를 두고 몇 번 차보았지만 어림없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을 넘어 마음, 눈, 발, 공, 입이 모두 따로따로 놀다가 한번도 성공하지 못하고 만다. 이 슛은 내가 찰 수 있는 슛이 아니다. 


캐논슛!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슛으로 발등에 정확하게 맞아 공의 회전이 없이 날아가는 슛이다. 정말 가끔 발등에 정확하게 잘 맞으면 느낌이 그렇게 짜릿할 수 없다. 흔히 골프를 칠 때 “손맛”이라고 하지 않는가? 정확한 킥의 그 “발맛” 역시 중독성이 있다. 가끔 운동장에 아무도 없을 때면 텅 빈 골대를 두고 있는 힘껏 슈팅 해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엉덩이 꼬리뼈까지 있는 힘껏 힘을 주고 슈팅을 날려 보지만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회오리 슛 혹은 하늘로 힘없이 날라가는 똥볼이 되기 일쑤다. 모든 운동은 힘을 빼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했던가? 골프는 입문하면 힘 빼는 것부터 배우던데 축구는 어디 타이밍에 힘을 빼야 하나?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발등에 얹힐 수 있을까? 


긴 겨울이 지나고 모처럼 운동장에 모인 어느 날. 경기가 시작되기 전 몸을 풀면서 여러가지 연습을 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과 함께 짧은 패스를 주고받고 비어 있는 골대를 향해 시원하게 슛을 날려 보았다. 

“김과장, 힘을 빼고 공을 끝까지 보면서 임팩트를 정확하게 맞춰야지.”

세상에 존재하는 운동이라는 운동은 모두 다 잘한다고 정평이 나 있는 서차장님의 코칭이 이어 졌고 그동안 유튜브에서만 보고 내 마음데로 따라 했던 기술 들을 하나씩 제대로 코칭 받으면서 연습을 했다. 역시 뭐든지 제대로 된 교육이 중요하구나. 모처럼 운동장에 나와서 인지 아니면 서차장님의 코칭 덕분인지 몸이 너무 가벼웠고 컨디션이 몹시 좋았다. 연습했던 기술들을 당장 오늘 실전에서 똑같이 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꼭 모두가 놀랄 만한 신비한 궤적을 그리면서 날라가는 아웃프런트 킥이나 골대를 뚫어버릴 법한 강력한 캐논슛을 오늘 한번 날려 보리라···.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고 15분 정도 뛰고 나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슛은 커녕 공을 제대로 잡아 보지도 못했는데···.  급격히 고갈되는 체력으로 인하여 공을 잡으면 걷어 내기 바빴기 때문에 경기전 몸을 풀면서 연습했던 기술 들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반면 같이 몸을 풀었던 서차장님은 40대 중반의 나이가 의심스러울 만큼 운동장을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현란한 기술과 멋있는 슈팅까지 너무 눈이 부셨다. 나는 그렇게 마음 따로 몸 따로 공만 졸졸 쫓아다니다 끝나버렸다. 

“서차장님, 너무 힘들어서 가르쳐 주신 기술을 하나도 못해 봤어요.”

“김과장. 다 필요 없어!! 축구는 기술이 아니라 체력이야 체력!! ”

“아··· .”

 

미라클모닝 


아무리 현란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거나 강력한 슈팅을 날릴 수 있어도 체력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2002년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 히딩크 감독이 처음 지적한 한국 축구의 문제점이 바로 기술이 아닌 체력이었다. 그리고 너무 체력 훈련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위의 우려를 결과로 해소시켜 주었던 기억이 난다. 어제 서차장님의 축구는 체력이라는 말도 바로 히딩크 감독의 뜻과 같은 맥락이었으리라···. 그렇게 나는 앞으로 체력을 길러야 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럼 어떻게 체력을 길러야 할까?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체력단련 관련 검색을 해보니 헬스 클럽 및 관련 용품들에 대한 내용이 수없이 검색이 되었다. 그럼 체력을 기르기 위하여 우선 헬스장을 다녀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약 40년에 몇 년 모자란 인생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쉽게 헬스장을 등록할 수 없었다. 보통 헬스장은 한 달씩 결제하는 것 보다 3개월, 6개월, 1년씩 한꺼번에 결제를 하면 파격 할인을 해 주는 곳이 많기 때문에 이제부터 건강해질 것이라는 큰 다짐과 함께 6개월 혹은 1년을 결제해 놓고 일주일 열심히 다니다가 그 후로 한 달에 한 두번 가서 음악만 듣고 오는 경험을 수 없이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름에 해수욕장을 가기 위해 등록했던 헬스장만 열심히 다녔더라면 지금쯤 헬스 유튜버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언제 포기할지 모를 가능성이 존재하는 곳에 투자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걱정만 하면서 맥주에 통닭을 한 마리 먹고 쇼파에 누어서 TV를 보고 있는데 홈쇼핑에서 판매 중인 러닝머신이 눈에 들어왔다. 가정용이라 크기가 부담스럽지도 않고 헬스장 두 달 비용이면 구매가 가능 하니 저것만 있으면 체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바로 아내에게 러닝머신을 구매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여보. 집에 러닝머신을 하나 사면 매일매일 운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보나마나 일주일 타고 나서 옷걸이로 사용할 게 눈에 훤하다. 헛소리하지 말고 음식물 쓰레기나 버리고 와. 이거 버리러 뛰어 갔다 오면 되겠네.”

나는 조용히 음식물 쓰레기를 받아 들고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매일 저녁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길은 춥고 외롭기 때문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며 다녀온다. 쓰레기장으로 가는 곳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고 매일 저녁 많은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 그런데 오늘 쓰레기장에 가는 그 길을 잠시 멈추고 놀이터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문득 생각을 해보니 아내의 말이 무조건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저 놀이터 10바퀴 뛰면 되는 걸 왜 돈을 드려서 러닝머신을 사야 한단 말인가? 어차피 아내가 혼자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지 않는 한 나는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매일 이곳에 나와야 하는데···. 그저 돈이 아까워서 대충 대답한 것처럼 느껴졌던 아내의 말 속에는 무척 심오한 가르침과 뜻이 숨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여보 앞으로 음식물 쓰레기는 새벽에 버릴 테니까 그냥 부엌에 두도록 해.”

매일 저녁 놀이터는 뛰어노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멀찌감치 바라보며 아메리카노와 수다를 즐기시는 어머님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나의 운동 시간으로 적합하지 않다. 그리고 늦은 밤에는 교복입고 모여서 놀이터를 서성이는 무서운 10대 형님 누나들이 있기 때문에 치안이 좋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놀이터에서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한적한 새벽 시간대가 좋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렇게 나는 5시 30분에 알람을 맞춰 주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히 유럽축구를 보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는 날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새벽 일찍 잠에서 깨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음날 새벽,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놀이터로 향했고 아무도 없을 것으로 생각 했던 새벽 놀이터에는 할머니 한 분이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산책을 하고 있었다. 난 개의치 않고 놀이터를 열심히 뛰었다. 한바퀴 뛰고 나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래, 지금까지 이것이 문제였다. 숨이 차서 아무것도 못하겠는데 축구를 잘하고 못하고는 의미가 없지. 오늘 하루 열심히 한다고 없던 체력이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니기에 앞으로 꾸준히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을 하며 오늘은 다섯 바퀴만 돌기로 하고 열심히 뛰었다. 그리고 몇 분 후, 놀이터에 또 다른 할머니들께서 각자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할머니들끼리 서로 인사를 나누었고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셨다. 우리집 강아지가 어디가 아팠고 똥을 잘 못 쌌고 등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아 아침마다 정기적으로 안부를 나누는 친한 할머니들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놀이터를 뛰는 동안 나를 힐끗 보라보시는 할머니들의 시선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운동을 마칠 때쯤 놀이터에는 경비 아저씨가 순찰을 도셨고 밤새 무서운 10대 형님들 것으로 추정되는 담배꽁초를 주우셨다. 

운동을 시작한 지 일주일 후, 오늘도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나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놀이터로 향했다. 오늘은 일주일에 한번 있는 종이 박스를 수거하는 날이라 쓰레기장에 먼저 다녀오느라 조금 늦게 도착하다 보니 할머니 들은 모두 나보다 일찍 놀이터에 나와 계셨다. 

“총각! 오늘은 조금 늦었네!!”

나는 일주일 사이에 할머니들과 친해졌고 고맙게도 할머니들께서는 나를 총각이라고 불러 주셨다. 우리는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고 내가 하루라도 놀이터에 나오지 않으면 할머니들은 걱정을 하셨다. 이제 할머니들 때문에 새벽 운동을 멈출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작심삼일로 끝날 수 있었던 나의 체력단련 계획에 큰 동기부여가 생겼다. 그리고 매일 운동을 마친 후 놀이터에 있는 담배 꽁초를 줍는 습관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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