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상 일기
소년은 교실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부러진 안경을 한 손에 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부러진 부분을 본드로 붙여도 보고 투명 테이프로 감아도 보지만 그렇다고 쉽게 고쳐질 리가 있겠는가. 만지면 만질수록 부러진 안경은 더욱 망가져만 갔고 소년의 근심은 깊어만 갔다.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러 운동장에 따라 나갔던 소년은 공 한번 제대로 차보지도 못하고 골대 앞에 우두커니 서있다가 전혀 상관없는 어딘가에서 날라 온 캐논슛 한방을 머리에 제대로 맞아 버렸다. 순간 머리가 알딸딸 하고 얼굴이 뜨끈뜨끈 달아올랐지만 오로지 안경이 부러지진 않았을까 라는 생각만이 소년의 머리에 맴돌았고 아니나 다를까 눈앞에 두 동강난 안경을 보는 순간 소년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야 말았다.
“아 엄마한테 혼날텐데 · · ·. 어쩌지 · · ·. “
소년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걱정이 휩싸였다. 지난달 엄마로부터 한번만 더 안경을 부러뜨리고 온다면 더 이상의 용서는 없다는 최후의 경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캐논슛을 날린 사람을 찾아가서 안경 값을 물려 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같이 축구를 했던 친구들에게 사건에 대한 책임을 조금씩 부담하기로 하고 500원씩 걷어야 하나.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은 소년으로써 쉽지 않는 일이었다. 올해만 벌써 네번째 안경인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아니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소년은 축구를 자주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제대로 뛰어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전형적인 몸치였던 소년은 잘하는 운동이 하나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용기를 내어 친구들과 뛰어놀면 이렇게 사고를 치기 일쑤였다. 운동을 잘 하고 열심히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친구들은 전혀 이런 일이 없던데… 소년으로선 답답할 노릇이었다.
학교가 끝날 때까지 부러진 안경을 손에 쥐고 걱정을 하던 소년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네 안경원에 들렀다. 그리고 안경사 아저씨에게 용기를 내어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아저씨 안경이 부러졌는데 이거 좀 붙일 수 없을까요?”
“조금 고장난 것은 수리를 하면 되지만 이렇게 부러진 것은 어쩔 수 없단다. 만약 억지로 붙이더라도 모양이 이상해진단다.”
“아저씨, 모양이 이상해져도 상관없으니까 어떻게든 좀 붙여 주세요. 제발요.”
소년의 간절한 눈빛이 안경사 아저씨의 마음을 움직였고 안경에 땜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분 후 안경은 마법과 같이 붙어 졌다. 하지만 검은색이었던 안경은 한쪽 껍질이 다 벗겨진 체 바보 같은 모양이었지만 소년은 개의치 않았다. 마치 세상이라도 구한 듯 존경의 눈빛으로 안경사 아저씨에게 감사의 표현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소년은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지금 소년의 안경이 왜 이모양인지. 하지만 지금은 고쳤기 때문에 안경을 새로 살 필요는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그 순간 소년의 등짝에는 엄마의 손바닥 스파이크가 내려 꽂혔고 소년는 밤새도록 엄마에게 혼이 나고야 말았다.
소년은 그때 미처 알지 못했다. 소년의 엄마가 걱정하며 이야기했던 그 최후의 경고는 부러진 안경 값이 아니라 퉁퉁 부어 있는 소년의 얼굴이었다는 것을…
김과장은 오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퇴근 후 축구모임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저질스러운 체력과 안타까운 실력으로 축구만 하면 같은 팀들에게 피해만 끼치는 김과장이라 중요한 축구 시합이 있으면 선뜻 자신 있게 나서질 못한다. 그렇기에 오히려 오늘처럼 동료들과 부담없이 가볍게 축구를 하는 날이 더욱 기다려 지는 이유이다. 헛발질을 하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심지어 경기가 지더라도 상관없다. 다같이 모여서 즐겁게 공을 차는 것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보, 잘 안 해도 되니까 다치지는 마라.”
김과장이 축구를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아내는 언제나 골을 넣고 오라는 응원 대신에 다치지 마라는 걱정을 해준다. 김과장은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만큼 남편을 걱정하는 아내의 마음 또한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아내에게 걱정을 끼칠 일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김과장님 오늘 컨디션 되게 좋아 보이시는데요.”
“오늘 기대하겠습니다. 김과장님”
모두들 김과장의 축구실력을 뻔히 알고 있지만 오늘도 예의 바른 후배들은 깍듯하게 격려를 해준다. 김과장 또한 후배들이 예의상 하는 말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후배들의 인사에 답을 한다. 모두들 다 아는 사이고 실수를 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몸이 정말 가벼운 것은 사실이다.
“김과장님, 받으십시오.”
“김과장님 슛!! 슛!! “
경기가 시작되자 마자 많은 사람들의 배려로 더욱 신이 난 김과장은 몹시 흥분이 되었고 더욱 열심히 뛰었다. 컨디션도 좋은 것 같고 후배들도 이렇게 나를 배려해 주고 있으니 첫 골은 반드시 본인이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경기 시작 5분 후 상대편 골대 앞에 서있던 김과장에게 스루패스가 연결되었다. 하지만 패스가 정확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패스가 너무 길어서 골라인을 넘어 갈 것으로 보였지만 몹시 흥분된 상태였던 김과장은 그 공을 꼭 잡고 싶었다. 그리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낸다는 심정으로 공을 향해 달려갔다. 보통 이런 친목 모임에서는 ‘몸을 사린다.’ 라는 표현에 맞게 무리해서까지 볼에 집착을 하진 않는다. 하지만 김과장은 마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집착 어린 눈빛으로 볼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몇 초 후 김과장은 볼과 함께 바닥에 넘어지고 만다. 몸싸움도 없었고 태클도 없었다. 그 누구도 김과장을 건들지 않았으나 볼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잠시 후 그는 무릎을 붙잡고 오열하였다. 이렇게 김과장은 경기시작 5분만에 부상으로 실려 나갔다.
5분을 뛰고 부상으로 실려 나가는 김과장의 머리 속에는 절대 다치고 오면 안된다던 아내의 당부가 머리 속에 맴돌았다. 분명 아내의 마음도 25년 전 소년을 걱정하던 엄마의 마음과 같으리라. 남편의 부상을 걱정하는 아내의 마을을 아프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김과장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제발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 보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은 심해지고 견딜 수 없다는 결론을 내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 아내한테 혼날텐데 · · ·. 어쩌지 · · ·. “
병원에 도착한 김과장은 깁스를 하고 이틀 동안 입원을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 눈앞이 깜깜 했다. 며칠식이나 집에서 혼자 지내야 할 아내가 걱정이 되었고 이렇게 남편이 병원에 누어 있으면 얼마나 혼자 걱정을 할지 미안해져만 갔다. 김과장은 최대한 아내가 걱정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연락을 했다.
“여보. 오늘 축구를 하다가 그만 넘어져서 조금 다쳤어.”
“뭐? 어딜 다쳤는데?”
“무릎을 좀 다쳤는데 몇 일 입원하고 깁스를 해야 한데. “
“아 그래? 그럼 언제 퇴원 하는데?”
“모래 퇴원 할 것 같아. ”
“아! 나 마침 오늘 저녁에 동네 언니들 좀 만나기로 했거든. 그리고 내일은 회사 회식이야. 모래 보자 여보.”
“응”
다행히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김과장의 마음은 순간 편안해졌고 병원에서 이틀동안 푹 쉬다가 퇴원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