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이 끝날 때
중3이었던 거 같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친척들이 그랬다. 네가 큰딸이니까, 네가 이제부터 엄마랑 동생을 잘 지켜야 해.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울지도 않고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에 밥을 두 그릇씩 먹었다. 친할머니가 나 자는 줄 알고 쟤는 울지도 않는다고 욕할 때도 참았다. 나는 큰딸이니까.
집안에 돈이 없는데 미술이 너무너무하고 싶었다. 다섯 살 때 장래희망에 화가가 적혀있을 정도였다. 집이 이렇게 됐으니 무난한 학과로 가서 취업 일찍 해야 되는 거 아니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도 엄마는 너 정 하고 싶으면 하라고, 없는 살림에 미대입시를 시켜줬었다. 외삼촌도 힘이 되어주었다.
나는 소원하던 미대에 갔고, 장학금도 타고, 인턴도 하고, 공모전이며 대외활동이며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나중 가서는 학기 중에도 알바를 두세 개씩 하며 생활비정도는 알아서 했다. 졸업학년에는 학자금대출을 훈장처럼 안고 운 좋게도 졸업하기도 전에 일자리를 구하는 데 성공했다.
멋지다 칭찬이라도 받고 싶은 거냐, 니 밥벌이하는 게 뭐가 대단하단 거냐, 할 수도 있지만,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그런 쪽이 아니랄지. (제목에 힌트가 있다) 정신과에 20살 때부터 차 한 대는 뽑을 정도로 돈을 쏟아붓고 쓰리 잡을 뛰며 여기저기 몸이 축나면서도 이를 악문 것은, 엄마의 칼 같은 전언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졸업하면 국물도 없다. 그때부턴 너 진짜 알아서 하는 거야. 엄마 퇴직하면 엄마 생활비는 네가 책임지는 거야.
빠르게 닥쳐오는 미래에 속도를 맞추려면, 타이어에 펑크가 나도 씹던 껌으로 메우고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의사가 술 담배 하지 마세요, 운동하세요, 하면 예, 할 수 있지만 스트레스받지 마세요, 하면 예? 그거 어떻게 하는 거죠? 하고 우왕좌왕하게 되지 않는가. 예, 하지 못한 나를 꾸짖듯이 몸에는 자꾸 에러사항이 팝업처럼 떴고, 닫기, 6개월 후에 다시 알리기,를 연타하던 내게 기어코 이번 정기검진에서는 수리청구서를 들이밀기에 이르렀다.
대학병원 수술상담실에 앉아서, 이게 공이 몇 개야, 싶어지는 수술비에 일단 신용카드 한도를 가늠해 보던 나는 공이 한 개는 너끈히 빠지는 좀 더 싼 수술을 할지, 뭔가 이름부터 최신기술의 집합체 같아 보이는 공하나 더 붙은 수술을 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실비를 어릴 때 둔덕에 90프로는 보전이 된다고 했지만, 일단 결제가 난관이었다. 고민하다가 수화기를 집어든 나는 엄마에게 혹시 대출이나 자금융통이 가능한지 물었다.
네가 결제하는 게 연말정산 혜택이 더 좋지 않니?
그보다 수술 말고 한의원에 가보는 건 어떻겠니.
자연치유는 어렵다는 거니,
꼭 수술을 해야 되는 거니,
실비가 빨리 들어오는 게 아니면
카드값은 어떻게 하라는 거니.
네가 모은 돈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되는 거니,
횡설수설하던 엄마는 내가 그래서 부담스럽다는 거냐고 묻자,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나는 집안 사정이 그러하니 내가 모은 돈으로 해결이 가능한 싼 수술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네가 대출을 받던지 한도를 늘리던지 해서 좋은 수술을 하면 안 되는 거냐고 묻는 엄마에게,
결국 나는 엄마 대출은 어렵고 나는 쉽냐며,
엄마는 집도 있고 차도 있는데 부담스러운 대출을 왜 아무것도 없는 나한테 받으라고 하는 거냐며, 그래서 내가 싼 거 받는다는데 왜 뭐라고 하는거냐고,
아니 그보다,
엄마는 대학병원에서 수술 야무지게 잘만 받고 오더니 왜 나한테는 한의원 타령을 하는 거냐,며 못된 소리(나도 안다, 내가 못되게 얘기한 거)를 해버리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전화와 메신저를 무시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네 살 터울 동생의 겨울방학 인턴 합격소식이 가족 단톡방에 전해졌다.
학고를 두 번이 나 맞고 성적미달로 장학재단에서 주는 장학금조차 수급이 불가능했던 동생을 받아준 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으나(비꼬는 것 맞다) 본가에서 왕복 8시간이 걸리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었고, 엄마는 원룸은 잘 모르니 자취방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엄마는 잘 몰라, 한다. 나는 예산은 얼마야? 물었고, 엄마는 몇백까진 쓸 수 있어, 돈은 더 써도 되고 동생 안전이 최고 중요해, 했다. 그래, 하고 무심결에 동생 자취방을 열심히 알아봐 주던 나는 무언가 기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엄마, 그럼 나는?
스물세 살이었다. 공모전 특채로 인턴에 합격한 나는 서울에 자취방을 구해야 했고,
여기저기 쏘다닌 끝에 싼 자취방을 하나 구했다. 치안이 나쁜 동네에 침대하나 딱 들어갈만한 방이었으나 열심히 알아본덕에 그 근방에서 그 예산으로 반지하가 아닌 집을 구한 것은 큰 성과였다.
아르바이트하면서 모은 돈으로 복비며 첫 달 월세며 계약금을 넣고 나니 최대한 싼 데를 알아본다고 알아보았으나 150만 원 정도가 비었다.
엄마에게 혹시 그 정도만 빌려줄 수 있냐고 묻자 엄마는 딱 잘라 거절했다. 내가 대출을 받던 어디서 구해오던 알아서 하라고 했다. 나는 당장 집을 계약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러면 내가 대출을 받거나 월급이 나오면 갚을 테니 한 달만 융통해 줄 수 없겠냐고 싹싹 빌었다. 엄마는 단호했다. 인턴을 포기하게 생긴 나는 가능한 한 빨리 나오는 대출을 알아보며 눈물로 며칠을 지새웠고, 결국 그 당시 남자친구가 보증금을 빌려주기에 이른다.
그렇게 구한 집에 이삿날 이삿짐 푸는 것을 도와주러 온 엄마는 어디서 이런 후진 데를 구해왔냐고, 더 안전하고 좋은 데는 없었냐며 나를 타박했다.
본가에 돌아와서도 계속 집이 마음에 안 든다고 동네도 안 좋고 집도 별로고 하며 트집을 잡던 엄마는 내가 왜 도와주지도 않았으면서 싫은 소리만 하냐고 하자, 너 엄마가 돈 안 줬으니까 입 다물라는 거니? 소리를 질렀고, 나는 그렇다고 마주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집이별로면, 치안이 걱정되면, 엄마가 도와주면 되는 거였잖아. 왜 도와주지도 않고 뭐라고 하기만 해?
과거 일로 타성에 젖기도 잠시.
나는 내가 느낀 기시감의 정체를 알아냈다.
내 수술하는데 들어가는 돈은 게임머니고 동생 자취방 들어가는데 쓰는 돈만 돈인 걸까?
나는 엄마가 매일같이 집에는 한 푼도 없다고 못을 박길래. 매번 정말로 집에 한 푼도 없는 줄로만 알았다. 몇백이 수중에 있으면, 그 돈은 융통이 가능하니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하라고 했으면 되잖아. 동생 인턴은 3개월짜리니까. 그 이후에 수술하면 내가 다 대출받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아니 그보다.
왜 같은 스물세 살인데 동생에겐 몇백만 원이 턱턱 나오고 나에게는 단돈 150도 줄 수 없었던 건지, 나는 뭐 아무 데서나 막 굴러도 된다는 건지. 나는 왜 돈은 더 써도 된다는 말을 엄마에게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건지.
"엄마는 잘 몰라.
동생은 기말고사 기간이니까 방알아보러는 너랑 나랑 둘이 가면 어떨까 싶은데."
엄마, 잘 모르는구나. 큰딸이 못해도 이사를 열 번은 했을 텐데, 왜 엄마는 원룸 매물 구하는 일에 대해서 잘 모르는 걸까. 내가 집 구하러 다닐 때 중간고사인지 기말고사인지 알바일정은 어떤지 물어봐줬던 적 한 번이라도 있던가. 그 애는 무려 시험기간이니까 검사며 수술일정이며 대학병원 오르락내리락하는 내가 엄마랑 같이 걔 집을 알아보러 가줘야 한다는 게, 왜 엄마에겐 아무런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 걸까.
"돈은 더 써도 되고 안전이 최고 중요해."
큰딸은 돈은 못줘도 알아서 척척 엄마 마음에 쏙 드는 안전하고 질 좋은 집을 척척 구해와야 하고, 작은딸은 몇백이건 돈이 들어가도 되니 안전하고 질 좋은 집에서 잤으면 한다는 거잖아. 나도 안전한 집에서 잘 줄 아는데. 나도 좋은 집 살 줄 아는데. 엄마 나는?
그러니 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짝사랑을,
이제는 끝내보려고 한다.
짝사랑의 특징은 명확하다. 상대는 내 희생을 요구한 적 없다고 발뺌하면 그만이고, 나는 준 만큼 받지 못해 괴로워하는 구걸꾼이 된다는 것. 다 네가 좋아서 한 거잖아.
맞아. 내가 좋아서 했어. 좋아해서 그랬어. 그러니까 이제 미워하려고.
미워하면 그만해도 되니까. 단톡방을 나가고 엄마의 번호를 차단한다. 동생에게는 당분간 연락이 어렵다고 짧게 메시지를 남겨둔다. 나는 이제 정말 꽤 오래 혼자이리라.
상담사 선생님은 지금 내 행동이 일종의 반작용이라고 했다. 기대에 부응하려고 꾸역꾸역 눌러뒀던 자유의지가 이제야 펑 터져나가는 거라고 했다. 기대에서 벗어나 충분히 자유시간을 가지고, 먼 미래에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도 될 일이라고 말했다. 나는 한결 후련해진 마음으로 상담을 마쳤지만, 유치하다고 생각해서 못한 질문이 하나 있었다. 그 질문을 여기에나마 던져본다.
그럼 엄마를 미워해도 될까요. 지금까지 많이 사랑했으니까 이제는 미워해도 될까요.
엄마를 미워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