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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왔으면 좋겠는데 다 꺼졌으면 좋겠기도 해

아프리카 청춘인지 아프니까 청춘인지 하나만 하자

by 김타닥

가만히 있자면 에어프라이어 속 군만두 내지는 용가리의 기분을 절절히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다.

숨만 쉬어도 콧속이 뜨끈하게 달아오르고 열풍에 몸이 흔들릴 때면 이게 사람 사는 건지 타 죽는 과정인 건지

분간조차 안 갈 때가 많다.


먹는 약이 식욕을 감퇴시킨다더니 불어난 몸에 대한 경각심이 전두엽을 후 드려 팬건지 약이 제 역할을 톡톡하게 다한건지, 식욕도 그다지 들지 않고 운동에는 썩 재미를 붙여서 그새 5킬로나 감량했다. 나쁘지 않은 성과에 이대로 예전 체중으로 어서 돌아가고 싶다가도(아직 10킬로나 남았다) 급히 빼서 쓸데라곤 못 입던 예전 옷들을 다시 입을 수 있다는 것 정도밖에 없지 않나, 그마저도 반절은 유행이 지나 못 입는 것들인데, 뭐 이런 생각도 해본다.


이직 면접에는 세 번이나 떨어졌고, 연애전선에도 인간관계에도 거대한 변화는 없다. 입양 보내려던 고양이는 아무도 찾지 않아 식구가 되었다. 임보에서 임종 까지라더니. 품에 쏙 안겨자는 그 애를 이제 와서 다른데 보내자니 그것도 웃긴 일이라 내가 앞으로 너와 오래 살겠구나, 다짐하고 그 애를 끌어안고 뽀뽀를 하고 똥을 치우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열 권이 넘는 추리소설을 읽었고 주인공이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을 마지막까지 의심하지 않다가 뒤통수를 크게 맞은 일이 두 권쯤 반복되자 그 뒤로는 모든 이들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한 번도 범인을 틀리지 않았다. 예전에 사귄 사람이 나는 은근히 속이기 쉽다고 해서 발끈한 적이 있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의심하지 못한다. 바보같이 그대로 믿어버리는 거지.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어야 하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여전히 재밌지만 동시에 피곤했다. 몇 번의 시도를 거쳤지만 더 깊어질 관계라고는 느끼지 못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감정에 따라 몸을 내던지던 나는 어디로 간 거지. 이제 내가 몸을 내던지는 건 체육센터의 수영장 레일밖에 없다. 물살을 가르고 다리를 움직이다 보면 잡생각이 비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뭔가, 그게 꼭 누군가가 아니더라도, 내 인생에 뭔가 다가왔으면 좋겠는데 그와 동시에 다 꺼졌으면 좋겠는 이 기분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 살을 에는 추위보다는 작열하는 태양이 낫지만, 그게 낫다고 쾌적하게 오래 버틸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모두의 스물일곱이 이렇진 않을 텐데. 이렇게 또 스물여덟이 되고 서른이 되는 걸까. 갈 곳 없는 생각을 활자로 덮어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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