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빼고 살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십 대 초반부터 헬스를 꽤 열심히 했었다.
타고나길 나쁜 운동신경에-심각한 몸치다-피티선생님께 순살치킨이나 근손실날 근육도 없는 몸이라는 혹독한 평가를 들었던 나는, 얼마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그로부터 1~2년 정도 후에는 꽤 괜찮은 수행 능력을 가지게 됐었다. 이만하면 마른 편 내지는 평범한 편이라는 기준선에 머무르던 나는 그 뒤로도 졸업할 때까지 운동과 식단도시락며 리프팅이며 이래저래 핏한 몸매를 유지해 왔고-돌이켜보면 그때도 살을 더 빼고 싶다는 강한 열망은 있었으나, 몸무게는 제자리에서 지지부진할 뿐이었던 기억도 있다-, 그 뒤로는 요가와 헬스를 병행한다던지, 일반식의 밥은 반공기 이하로만 먹는다던지 하는 방법으로 몸무게를 유지해 왔다.
찌는 것도 빠지는 것도 유지하던 몸무게에서 2~3킬로는 금방금방 왔다 갔다 하는 체질덕에-아침과 저녁몸무게가 2킬로씩 차이가 나는 일은 흔했다- 웬만한 체중변화에는 심드렁했고, 워낙 먹는 걸 좋아하다 보니 먹을 땐 먹고 식단 할 때는 식단 하자는 마인드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1년 반.
내 몸무게는 스물일곱 해 역사상 기록적인 최고점을 기록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평균몸무게에서 무려 15킬로가량이 쪄버린 것이다. 변동폭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10~15킬로 사이라지만, 처음으로 XXL바지를 구매해야 했을 때 느꼈던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엑스트라-엑스트라-라지라니. 내가 세상의 기준으로 아주-아주-크다라고 라벨링된 것은 골이 띵할만한 사건이었다.
물론 한국의 여성의류가 작게 나오는 편이라 신장이 평균보다 큰 나는 사이즈가 보통 옷마다 바뀌기는 했지만, 또 주변에서는 내가 이만큼이 쪘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며 전혀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찐 거 맞아?라고 말해주긴 하지만, 그 왜 할머니가 살쪘다고 하면 끝이라는 말을 혹시 알고 있는가? 올해 명절, 바로 그 할머니는 왜 이렇게 허리가 드럼통이 돼서 왔냐는 말로 나를 주저앉혔다. 드럼통이라니요, 할머니.
어쩌다 이렇게 됐냐고 하면 이전 연애와 부족한 인프라의 탓을 조금 해봐도 좋겠다.
물론 나의 의지박약과 쌀알만 한 자제력과 의지력이 근본적인 원인이지만, 사람은 무릇 탓할 구석이 필요한 법이다.
연애가 시작할 때는 선명했던 나와 전 애인의 복근은 그로부터 삼 개월이 지나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와 나 둘 다 맛있는 요리와 술을 즐기는 성격이었고, 퇴근 후의 운동시간은 요리를 해 먹거나 술을 마시는 시간으로 변모되었으며, 연애기간 내내 미친 듯이 불어 가는 살과 더불어 커져만 간 나의 게으름은 이윽고 내가 자기 관리를 하나둘 놓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헤어지고 나서도 그 버릇은 어디 가질 않았고, 여전히 맛있는 음식을 양껏 먹으며 몸은 뉘어놓는 것의 행복에 푹 빠진 내 몸은 몸피를 점점 불려 가기만 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 내지는 커리어건 건강이건 점차 발전하는 스스로를 자랑삼던 나는 온데간데없었다.
차라리 그게 다였으면 좋았으련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