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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보호 고양이에게는 정을 주지 않아요

사랑은 너무 어려워

by 김타닥
임시 이름 먼지, 나이불명, 성별 아마도 암컷. 러시안블루와 코레혼혈(추정)

직장 뒤편에 못 보던 고양이가 나타났다고 했다.

사람에게 곁을 잘 내주고 건물 안까지 거리낌 없이 오고 가는 녀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며칠 안돼 2층에 위치한 내가 있는 사무실까지 뛰어 들어온 녀석의 거취를 정하는 자리에서- 건물 외곽을 떠돌며 얌전히 밥만 먹는 길고양이들과 다르게, 이렇게 건물 안까지 오고 가는 고양이의 말로는 주로 좋지 않다. 후술 할 이유 때문이다- 녀석이 딱히 오 갈 곳이 없음이 밝혀졌다. 그럼 내가 잠깐 맡을까, 하는 생각에 녀석을 안아 들어 집으로 데려왔고, 그날부터 며칠째 동거 중이다. 마침 친구의 고양이를 맡아주고 돌려보낸 지 얼마 안 된 터라 집에는 고양이용품이 박스 가득 남아있었다.


집에 이미 고양이가 네 마리 나있어 녀석을 맡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동료분은 임보에서 임종 까지라며, 이렇게 연이 닿아 쭉 가도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며, 지낼 곳이 생겨 다행이라며 기쁜 얼굴로 내게 녀석을 안겼지만, 사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시큰둥한 마음일 뿐이다. 내가 지내는 오피스텔만큼 내게 주어진 여유도 조막만 하기 그지없어, 그 애를 평생 데리고 있을 여유는 없기 때문에.


그럼 왜 데려왔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한다면 나도 주워섬길 것이 몇 가지는 있다. 러시안블루 혼혈임이 분명한 혈통-못해도 입양은 잘 가겠거니 싶었다-에 뭉툭한 부분 없이 길게 쭉 뻗은 꼬리, 깨끗한 발바닥과 항문등이 본투비 스트릿캣이라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기도 했거니와, 내가 있는 직장 특성상 이미 사람들 눈에 든 상태로 건물 안까지 활개를 친다면 민원이 접수되어 보호소로 직행하게 될 여지가 있었다. 안락사당하는 꼴(?)을 보기는 싫었다고 해도 좋겠다.


무엇보다 마땅한 입양처를 찾을 때까지는 데리고 있을 수 있는 조막만 한 여유는 있었다. 고양이를 맡은 적이 자주 있어 고양이를 어떻게 케어해야 하는지도 익히 알고 있었고, 입양처에서 기꺼워할 수 있을 만큼 검사나 기본적인 치료를 할 만큼의 금전적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물론 통장이 가벼워지고 할부를 긁어야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천천히 입양처를 찾으면 되리라, 하는 계산도 있었다.


털갈이시기라 미친 듯이 빠지는 털과 고약한 분뇨의 악취는 익숙했지만( 그대로 둔 것은 결코 아니고, 빗질에, 미용효과가 있는 습식캔에, 디오더라이저에 모래까지 고급으로 바꾸는 등 다양한 노력이 있기는 했다), 익숙하지 않은 점은 그 애가 갈구하는 미친듯한 애정정도랄까. 한참을 놀아줘도 지치지 않는 체력과, 몇십 분을 쓰다듬어도 그치지 않고 머리통을 비벼대는 탓에 할 일을 하기 힘든 점이 있기는 했다. 더불어 물건을 부수거나 할퀴고 무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기 때문에, 복에 겨운 소리라고 할지는 모르지만.


미지근한 마음으로, 언젠간 좋은데 보내야 할 아이, 정도의 감상을 가지고 있는 내게는 친하지 않은 조카를 맡아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순수하게 사랑해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도 많고 스킨십도 많은 저 아이를 오롯이 사랑해 줄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사랑이 많은 아이니만큼 나도 그것을 돌려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그것은 그냥 바람일 뿐이고, 다음 주 중으로 동물병원에 다녀와 기본적인 점진과 접종을 마친 후에는 꾸준히 입양처를 찾아볼 예정이다. 사랑 많은 아이에게 어울리는 사랑 많은 자리로. 내 여유와 공간이 좁아 마음에 들여놓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아마 나는 영영 미안할 것이다. 그러니 임시보호 고양이에게는 정을 주지 않는다.


*러시안블루, 암컷성묘, 중성화가 완료된(왼쪽귀에 컷팅자국 있음) 아이의 입양에 관심이 있는 분이 있다면 덧글 및 연락 주세요. 얌전하고-얼마 전에 '앉아'를 배웠습니다- 퇴근하면 야옹, 하며 꼭 현관까지 마중을 나오는 사랑이 많은 아이입니다. 어지간한 일로는 이빨이나 발톱을 세우지 않는 온순한 성품이기도 합니다. 너무 멀지만 않다면, 제가 사시는 지역까지 이동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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