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만한 위로
직업 특성상 상사가 꽤 자주 바뀐다. 상사들은 배정받은 사무실을 나갈 때 취임 때 받은 화분들을 복도에 늘어놓고, 그것을 필요한 직원들이 알아서 분양(?)해가는 시스템은 내 일터에 꽤 고착화되어 있다.
스투키는- 그러고 보니 딱히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복도에 동그마니 놓여있다가 잘 안 죽고 키우기도 쉽다는 말에 그래 그럼 내가 데려가마, 해서 업어온 그런 화분이었다. 난이나 다른 관상용 식물들처럼 예쁜 모양새나 높은 가격을 자랑하는 편도 아니었고. 그것들은 사람들이 앞다퉈 집어갔지만 스투키는 투박한 생김새 때문인지 그다지 인기 있는 편은 아니었다. 알아보니 공기정화를 한다는 둥 이런저런 얘기가 있었으나 나는 그저 잘 죽지나 않았으면, 하는 감상만 느낄 뿐이었고.
초등학교 때부터 식물이라면 죽이기 일쑤여서 그랬던 가.
잎마름병이나 원인불명의 이유들로-나름 영양제를 사서 꽂는다던지, 분갈이를 한다던지 노력은 부단히 도 했던 기억이 있다-말라죽어가는 식물들을 보며, 마침내 회생의 여지없이 바싹 말라죽은 그것들을 보고 식물은 안 키워야지, 다짐했었다. 오전에는 양지에 두었다가 기온이 떨어지는 오후에는 온도가 낮지 않은 방안에 옮겨두어야 한다던지, 잎을 닦아줘야 한다던지, 그런 아주 세세한일들을 매일 챙기지는 못했지만, 그저 식물이란 물 제때 주고 빛이나 좀 보여주면 되는 게 아니었던가, 그게 내 생각이었다. 왜 이렇게 픽픽 죽어나가는 건지. 적성에 맞지 않는가 보다 생각하기도 했다.
재능 없는 내손에 떨어진 스투키의 말로가 걱정됐지만,
스투키는 물을 안 주면 조금 가늘어지고 내가 물을 주면 다시 굵기를 조금 회복하는 식으로, 내 신경 언저리에서 아주, 아주 작은 부분만을 차지했다.
친구의 고양이에게 끄트머리를 약간 씹히는 사고가 있기도 했다.
아작, 하고 깍두기를 씹는 소리가 났다. 아직도 귀에 선하다. 스투키는 깍두기 같은 식감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함께한 지 일 년 하고도 거의 반이 되어갔던 것이다.
스투키는 죽지도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으며, 화분 모퉁이에 몇 개의 새순까지 틔웠다.
길게는 몇 개월간 물을 주지 않은 적도 있는데도. 내가 한 것은 종종 화분의 위치를 바꿔둔-나의 편의를 위해서지 스투키를 위해서가 아니었음에 죄책감을 느낀다-것 정도밖에 없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검색해 보니 모든 스투키가 이렇게 신비한 생명력을 가진 것은 아니고, 병에 걸리거나 말라죽는 일도 잦다고 한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나는 좋은 동거인은 결단코 아니었는데. 물도 듬뿍 준 적은 별로 없고, 물 마시다가 창가에 있는 스투키가 눈에 띄면 내가 먹고 남은 물을 부어주는 정도였다. 이렇게 보니 나 거의 식물학대를 자행했구나. 잠시 묵념.
어쨌건 이렇게 과하게 무심한 나를 견뎌준 스투키에게 감사를.
식물에게 위로받는다는 말을 결단코 마음으로 공감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건 조금 더 앞치마가 잘 어울리고 정원가위를 능숙하게 다루며, 애니멀커뮤니케이터처럼 들리지 않는 식물의 목소리를 듣는(!) 드루이드 같은 사람들에게 적합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긴 시간을 버티고 내 곁에 있어준 스투키에게, 문득 느껴버린 것이다. 그 위로라는 거.
내가 나로 있어도 내 곁에 머물러줄 수 있는 존재가 하나는 있었던 것이다.
그게 스투키에게 행복한 나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리에 있어주는, 그냥 그런 가만한 위로.
틔워진 새순을 옮겨 심어 작은 화분을 몇 개 더 만들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들도 모체(?)의 생명력을 이어받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또 괜히 내가 건드렸다가 모체가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식물 커뮤니티에라도 찾아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