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롤의 길이만큼 우리는 가까워질 수 있을까
종이책장을 넘기는 게 활자와 페이지를 헤치며 그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라면,
세로로 펼쳐진 모바일 기반의 글들은 엄지 한 번에 빠르게 내달음치는 글자의 활주로를 달리는 느낌이다.
글자는 세로로 펼쳐진 테피스트리처럼 위로부터 시작해 아래로 뻗어나가고, 시선이 위에서 아래를 훑다 마침내 몇 걸음 물러서 전체를 휘 둘러보듯, 우리는 그 마지막에 다 달아서야 툭, 글에 대한 감상을 느낀다.
브런치에 처음 쓴 글이 운 좋게 몇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도달했었다.
내 인생에서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많이 닿아본 적이 있던가.
하지만 나는 처음 잡은-분명 시작할 때는 내 마음에 쏙 들었던-주제를 끌고 갈 만한 능력이 없었고, 꾸준함은 더더욱 없었으며, 그 시리즈를 정리하고 놓아줄 때까지 내가 다시는 그렇게 높은 조회수를 기록할만한 글을 쓰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실패자가 된 기분이었다.
다시 시작한 글은 고만고만한 조회수를 기록했다.
고만고만한 이야기와 고만고만한 주제로 글을 썼다.
그리고 고만고만한 숫자는 내 마음에 도박도박 걸어 들어왔다. 어떤 날은 스무 명 어떤 날은 백 명.
명확한 목적성이 있는 것도, 특별한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닌 글을 누군가 읽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내 글을 읽는 눈, 내 글의 스크롤을 내렸을 그 손가락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내 글에 다다랐을까. 통계칸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곳곳에서 내 글에 다다른 각기 다른 사람들의 족적을 숫자로나마 볼 수 있었다.
인터넷 어드매에 널린 너절한 내 이야기들.
한 개 두 개 방물장수처럼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나는 아마도 액정너머에 있을 누군가에게 묻지도 않은 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버리는 투머치토커가 되어버린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아직 하기에 이를까. 이 이야기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냥 쓰세요, 보는 사람이 많지도 않은데. 그런 핀잔도 속에서 들려오지만. 그러니까 더 중요한 거예요. 천 명 만 명 왔다 갔다면 몰라도 열댓 명이 왔다 가면 한 명 한 명 기억에 남는 거랑 같은 이치니까.
그러니 손짓 한 번에 휘발될 문장의 나열이더라도.
나는 누군가의 화면을 활주 할 내 글자의 나열들의 신발끈을 단단히 묶어본다.
넘어지지 말고, 가야 할 곳에 꼭 다 달아야 해. 네가 가야 할 곳이 분명 있을 거야.
중간에 뒤로 가기를 누르거나 아우토반의 속도로 휙, 스크롤 끝까지 글을 내려버려
완주를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겠지만. 길을 잃어 글을 잘못 누른 손가락이나 원했던 글이 이런 게 아니라
갈피를 잃은 손가락을 만나 함께 길을 잃기도 하겠지만.
리듬감 있는 속도로 마르고 바삭한 스크롤길을 걷는 내 활자가 있다면.
미끄러지듯 유려한 손길에 홀리듯 이끌려 종착지를 보여준 글들이 있다면.
어딘가에 닿아 목적지에 도달했다면, 그게 아마 내가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글을 쓰는 이유는 뭐가 될까. 또 다음에 생각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