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 망한 소개팅들아
"저희 이거 안 시켰는데요!"
다급히 종업원을 불러 세우는 그를 보고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손을 내리라고 황급히 손짓하고는 서둘러 속삭였다. 이거 그냥 주는 거예요, 그러자 그가 나를 쳐다보며 반문했다. 네? 이거 그냥 주는 거라고요. 식전빵이에요. 그러자 그가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을 감싸 쥘뻔했지만 겨우 참고는 당황한 기색을 감췄다.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소개팅이었다.
내가 스물넷, 그가 스물여섯이었던 기억이다. 후배소개였고, 자신의 동아리 회장선배라고 들었다. 취미는 헬스와 골프에, 다독하며 동아리원들도 잘 챙기는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라며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한 가지 흠(?)이라면 연애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는 것 정도인데, 애초에 이성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편이 아닌 편이었던 나는 선선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만나서 재밌으면 그만이지, 뭐.
그렇게 생각하고 큰 부담 없이 나간 소개팅은 식전빵을 시작으로 당황의 연속이었다. 그는 내가 먹는 바질파스타가 초록색이라 징그럽다며 질색했고(바질이라는 식재료를 처음 들어본다고 했더랬다), 근처에 잘 아는 괜찮은 카페가 있다며 데려간 곳은 폴바셋이었다. 아, 폴바셋 좋죠,라고 말하는 내게 그는 폴바셋을 가봤어요?라고 물었고, 내가 서울에서 자주 가봤다고 말하자 폴바셋이 동네 카페가 아닌 프랜차이즈였냐고 되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말하자 마침 걸어가면서 인근에 있던 스무디킹을 가리키며 그럼 저것도 프랜차이즈냐고 묻기까지 했다. 네 그럼요. 나는 나중에서는 조금 두통이 오는 기분이었다. 그와는 영혼 없는 대화를 며칠 더 나누다가 인스타 속 지인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딱히 문제라고 느껴지지도 않는 부분이기는 하다. 모르면 이제 알았으면 그만이고 나라고 세상 모든 걸 다 아는 것도 아닐진대. 굳이 따지자면 문제는 취향이나 대화방식의 차이었겠으나 그때는 식전빵이 유독 크게 느껴졌었다. 그는 내 이후로 여자친구를 사귀는 데 성공해서 곧잘 연애를 했고, 그렇게 보니 오히려 식견이 좁았던 건 나였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제는 소개팅자리에서는 식전빵을 모르는 상대를 만나도 그러려니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후로도 소개팅은 번번이 망해 단 한 번도 성공한 일이 없지만. 그것은 또 나중의 일이다.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