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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춘기: 혼자 있고 싶은데 혼자이기 싫어

'함께'라는 정서적 보행기에서 내린 후에

by 김타닥

미운 다섯 살도 아니오 사춘기도아니오. 이십 춘기라는 신조어를 이렇게 절절하게 느끼게 될 줄이야.

나의 이십 춘기는 뭐든지 나 혼자 할 거야! 를 외치는 방향으로 찾아왔다.


날 때부터 보행기가 채워진 아이가 혼자 걷는 법을 알까? 나는 혼자를 기르는 법을 결단코 모르는 편이었다.


이십 대 전부를 가족보다 가까운 대학 친구들 틈에서 보냈다. 쉴 새 없이 웃고 울고 떠들고 마시고 먹으며, 그 사이사이 미친 듯이 사랑하고 연애하며, 또 한편으로는 악착같이 돈을 벌고 운동이나 자기계발 같은 것을 하며 보냈다. 밀푀유처럼 켜켜이, 우정과 사랑과 일로 단단하게 쌓인 인생에 남몰래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엄마나 정신과 선생님이 간간히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라'라고 말하곤 했지만, 내 인생이 이렇게 달콤하고 단단하게 쌓여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더 나 자신을 잘 돌아보라는 건지, 그런 오만한 생각으로 콧방귀를뀌곤했다. 사회물을 일찍 먹었다고 자부해 헛물을 잔뜩 켠 이십 대 중반만이 가질 수 있는 오만함이었다.


에덴에서 쫓겨난 것은 일 년 하고도 반이 되었다. 아니다, 이 년 정도라고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뭐가 꼬였던 건지. 계약직을 끝내면 가기로 약속되어 있던 일자리를 누군가 가로챘던 직후부터였는지,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그 당시 애인이었던 교포를 따라 도피성으로 두 달이나 미국에 다녀온 것부터였는지, 그 직후 그 가족보다 가까웠던 바로 그 친구들이 내게 등을 돌리고 절연을 선언했던 때부터였는지.


에덴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쫓겨난 나는 더욱더 혼자가 싫어 주변에 있는 것들을 바쁘게 움켜잡았다.

가족 같던 친구들의 자리는 우여곡절 끝에 입사한 새 직장의 애인이 채웠다. 10년 지기 친구인 고교 동창도 나에게 있어선 반쪽이나 마찬가지 었다. 밤이 되면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듯 빛이 나는 그녀는 술과 놀이문화에 빠삭했다. 그녀와 웃고 떠들면 내게 외로움이 파고들 틈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알람 없는 주말아침에 잠이 깨듯, 나는 서서히 혼자 있고 싶어 졌다. 혼자 하는 게 지독히도 싫었던 내가 어느 날부터 지독히도 혼자를 갈망하고 있었다. 걷지 못하는 아기가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혼자 뒤집고 일어나 마침내 발걸음을 떼듯이.


왜 그런가, 가만 들여다보면 이유는 존재했다. 스피커의 볼륨을 한 칸씩 높여도 결국에는 소리가 견딜 수 없이 커지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애인은 내게 집착했고, 결혼을 과하게 서둘렀으며,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소리를 지르고 울며 싸웠다. 친구는 나를 종 부리듯이 대하곤 했다. 나의 모든 스케줄은 그녀에게 맞춰 돌아가야 했다. 그만 버튼을 눌러 소리를 끌 차례였다.


그들이 태워주는 '함께'라는 정서적 보행기에 너무 오래 머물렀던 나는, 혼자라는 적막과 맨바닥이 주는 감촉에 쉬이 익숙해지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는 자유로웠다. 혼자 하느니 안 하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전부 혼자 하고 싶었다. 아이가 나 혼자 할 거야! 시기를 겪듯이. 서툴러도 전부 홀로 해보고 싶었다. 좋아하는 카페에 가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전시회를 보러 가는 것도.


그제야 조언이 와닿는다. 아니 그래서 조언 다 아무 소용없다니까 싶지만.

이제야 안다. 나 자신을 돌아보라는 게 어떤 말인지. 혼자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게 뭔지. 고대의 상형문자나 뜻 모를 물리법칙같이 느껴졌던 그 말을, 이제야 어렴풋이 안다.


'함께'라는 게 꼭 나쁜 게 아니고, 오히려 소중한 것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안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혼자가 싫어서 '함께'에 눌어붙어있으면 꼭 나 같은 사태가 생기고야 만다는 것이다. 몸은 커져서 맞지도 않는 보행기에 다리를 욱여넣고 여기저기 땀띠 나가면서도 보행기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스물일곱이 돼서야 '혼자'를 배우고 있는 나 같은 사태가 발생하게 되니까.


이제 막 혼자를 시작한 나는 김칫국도 조금 마셔본다. 이대로 혼자가 너무너무 좋아져서, 영원히 혼자 있는 게 좋아지면 어쩌지? 그건 싫은데. 영원히 혼자이고 싶진 않은데. 그러니까 혼자 있고 싶은데, 혼자 있긴 싫은 것이다. 아직 멀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로 살게 되면, 혼자서도 괜찮게 되면 그제야 진정으로 함께 있음 직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혼자 있는 게 괜찮은데 왜 또 사람을 만나요! 궁시럭대는 소리가 여기까지 올라온다. 이제 막 첫걸음마를 뗀 '혼자'의 투정일지도 모르겠다. 가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답을 찾는다면 그에 관한 글도 또 써봐야겠다.


PS.

내게 너무 불편한 보행기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당신이라면, 내려와도 좋다.

내가 한번 내려와 봤는데, 내려오는 게 너무너무 무서워서 몇 년을 질질 끌었는데, 내 내려와 보니 확실히 내려오는 게 좋다. 나를 아프게 하는 관계-그러니까 보행기-는 이제 그만 분리수거를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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