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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세, 두 개의 집을 꿈꾸다

by 김태라


나는 만 서른여덟이다. 이 나이쯤 되면 다들 어느 정도 자기 삶의 방향이 정해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요즘 두 개의 상반된 꿈 사이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다. 아니, 어쩌면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애초에 그 두 갈래 길 모두를 한 번에 가려고 애썼던 건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찾아왔다.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이유들도 있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나의 조급함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결혼하고 싶다. 아이를 가지고 싶다.'


이번 연애에는 왠지 모를 확신이 있었다. 애인의 섬세함, 친절함, 모든 것이 남은 여생을 함께 하기에 더없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빨리 '결혼'이라는 확신을 얻고 싶은 마음이, 그를 완벽하게 바라보도록 나를 조종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는 아직 20대였고, 결혼이나 아이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 어쩌면 그 나이의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을 테지만 38세의 나는 달랐다. 가임기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물학적인 숫자는 나를 한없이 초조하게 만들었다. 연인에게서 더 빨리, 더 확실한 미래를 기대했고, 그와 작은 트러블이 생길 때마다 나는 '그래, 역시 여기서 그만두는 게 나을지도 몰라' 하고 조급하게 관계의 끝을 예단하곤 했다.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역설적이게도, 이별을 한 발자국 더 앞당기는 방아쇠가 되어버렸다.

이와 동시에, 내 마음 한쪽에는 또 다른 갈망이 꿈틀거렸다. 차에서 살면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떠도는 자유로운 삶. 이 욕망 또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이런 모험을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가정이라는 틀을 바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랑하는 삶을 꿈꾼다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모순적이었다. 안정감을 위한 '집'과 자유를 위한 '차'라는 두 개의 집이, 내 안에서 쿵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내 신체 나이는 마치 인생의 데드라인인 양 모든 것에 초조함을 더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이젠 진짜 마지막 기회일 거야!' 같은 생각들이 쉴 새 없이 나를 몰아세웠다. 결혼도, 아이도, 그리고 오로지 나를 위한 모험까지. 이 모든 것을 '지금 당장' 해내야만 할 것 같았다. 마치 슈퍼우먼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너는 지금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필사적으로 뛰어가고 있는 거니?'


이별의 아픔 속에서 나는 다시금 나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결혼과 아이를 향한 이 욕망이 진정 나의 본질적인 바람인지, 아니면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이라는 테두리에 나를 억지로 욱여넣으려는 압박감 때문인지.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든 걸 내려놓고 홀로 시작한 차박 라이프가 과연 나의 해방구가 될 수 있을지. 서른여덟의 나는, 아직도 나만의 '진짜 집'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급함은 잠시 내려놓고, 진짜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고 싶지만, 아직은 그 목소리가 낯설고 희미하다. 호르몬 탓인지도 모르겠다. 죽어가는 난자들의 비명 소리가 너무나 선명해서 나의 진짜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제대로 들을 수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안정된 가정이라는 이름의 든든한 벽 뒤에서, 혹은 자유라는 이름의 바퀴 위에서. 과연 나는 어디에서 나만의 '진짜 나'를 발견하고, 비로소 편안하게 숨 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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