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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살고 불면증이 나았어요.’ 3주 차 차박일기

by 김태라

처음 집을 나섰을 때의 막막함은 그야말로 절망에 가까웠다. 차에서 사는 삶을 계획할수록 그 계획 자체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깨달을 것 같아 일단 집 밖으로 나온 후 고민하자고 계획했다. 그런데 막상 집을 뺀 후 발길이 닿을 곳이 없어지자, 물컹하고 나약한 민달팽이가 된 기분이었다. 물컹한 몸으로 어떤 충격에도 스르르 녹아 없어질 것 같은, 껍데기 없는 존재의 처량함과 나약함이 온몸을 감쌌다.

차에서 잠들기 시작한 이후에도 불안감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혹여나 누군가 내가 차에 들어가거나 나가는 모습을 볼까 걱정했고, 차 안에서 길을 지나는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싶어 노심초사했다. 행여라도 인기척이 들리면 몸을 바싹 낮게 뉘었다가, 발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겨우 일어서곤 했다.

짐을 아무리 덜어냈어도 차 한쪽에는 생활필수품이 담긴 박스 두세 개가 항상 자리하고 있다. 그 덕에 몸을 뉘이면 다른 곳으로 뒤척일 공간조차 없다. 그럼에도 희한하게도 잠은 꿀처럼 잘 잔다. 머리만 대면 바로 잠이 든다. 전기가 없어 별다른 딴짓을 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엄마 자궁처럼 아늑하게 몸을 감싸는 좁은 잠자리 덕분인지는 모르겠다. 고질적으로 앓던 불면증이 신기하게도 말끔히 사라졌다.

차에서의 생활은 엄청난 부지런함을 선물했다. 이불속에서 뒤척일 편안한 공간이 사라지자, 일단 눈을 떠서 기지개라도 필려고 하면 집 밖으로 나와야 한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어디론가 움직이게 되었다.

보통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씻기 위해 실내수영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전 같으면 이불속에서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 못 가거나, 아예 집 안에만 머물며 씻지 않는 날도 많았지만, 집을 떠난 후로는 운동도 더 자주 하고 몸도 더 자주 씻는다.

양말이나 속옷 같은 간단한 빨래는 화장실에서 손빨래로 해결하고, 차 안에 설치한 빨랫줄에 널어둔다. 기관지가 좋지 않아 건조한 것을 힘들어했는데, 이것이 의도치 않게 천연 가습기 효과를 준다.

큰 빨래는 코인세탁방을 이용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으나, 1인 빨래를 넣기에는 요금이 너무 비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빨래를 모아두자니 그 많은 옷들을 보관할 공간도 없었고, 애초에 그렇게 자주 옷을 갈아입지도 않는다. 결국 지인들 집에 세탁을 부탁하는 신세가 되었고, 내 옷들은 현재 각자의 집에서 '이산가족'이 되었있다.

밥은 주로 사무실에서 해 먹는다. 요리도구라고는 미니 전기밥솥 하나뿐이라, 있는 요리 재료들을 뭐든 밥통에 넣어 익혀 먹었다. 원래 집에서도 요리는 간단히 하는 편이었기에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그래도 조금 더 다양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낮에는 사무실에서 식사를 마치고 외부 일정을 소화한 후, 저녁에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화장실에 가고 이를 닦은 뒤, 차로 '퇴근'한다.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침낭 안에 몸을 뉘이고, 거의 눈을 붙이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든다.





"에이, 그게 무슨 차박이야? “

“맨날 같은 곳에서만 지낼 거면 그게 무슨 의미야?”


내가 차에서 산다고 하니, 어떤 사람들은 매일 다른 풍경에서 눈을 뜨는 자유로운 차박 라이프, 혹은 도시를 떠나 사는 유랑하는 캠퍼의 이미지를 상상하는 듯했다. 그런데 사실 난 이런 질문들이 불편하다. '제대로 된 차박', '제대로 된 자유', '제대로 된 노숙', 그들이 이 여정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굳이 '제대로 된'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영 못마땅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 나도 정의를 하지는 못하겠다. 낭만 가득한 차박라이프를 꿈꾸는 것도 아니고, 마냥 도시에서 차노숙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지금의 선택으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는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출근해서 일도 하고 있고, 학교도 다니고 있다.


어느덧 바퀴 달린 집 생활 3주째이다. 차로 돌아가는 루틴에 제법 익숙해져가고 있다. 진짜 웃긴 건, 꼴에 내 집이라고 이 차 밖에서는 잠을 영 못 잔다는 거다. 얼마 전 출장 때문에 묵었던 폭신한 호텔 침대에서도, 친구네 따뜻한 방바닥에서도 영 불편해서 잠을 설쳤다. 아, 역시 잠은 내 집이 최고라더니, 빨리 차로 돌아가서 곤히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3주 차가 되니 차에서 뭘 어떻게 꾸리고 정리해야 할지 대충 감이 잡힌다. 효율적인 동선과 수납법에 대한 노하우가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다. 다만, 이 모든 차박력 상승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돈이 없을 뿐. 그럼에도 일단은, 어떻게든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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