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심장이 멈출 수도 있다니. 하루에도 수없이 교통사고, 전쟁과 지구멸망 등 기상천외한 상상 속을 헤매는 나조차도, 이 시나리오는 정말이지 꿈에도 그려보지 못한 일이었다. 당장 이 바퀴 달린 집이 없으면 나는 길바닥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깨달음 앞에서, 왜인지 모르게 실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걱정이라기엔 너무 황망했고, 한숨이라기엔 체념에 가까운, 그저 헛헛한 웃음만 났다.
내 파란도 몸값이 700만원인데, 엔진 수리비가 차 값정도가 나올 거라는 얘길 들으니 현기증이 돌았다. 정비소 사장님은 쉐보레는 수입차라서 부품을 구하기가 힘드니 규모가 큰 부산 사상 쉐보레 정비소로 가보길 권하셨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 오후 5시가 훌쩍 넘은 시간. 별수 없이 정비소에 차만 겨우 맡기고,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어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이튿날 아침 8시 30분, 전화벨이 칼날처럼 울렸다. 아마 정비 결과겠지. 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내 파란도의 사망선고를 들을 용기가 도저히 나질 않았다. 꾸역꾸역 끓어오르는 불안감을 억누르고, '지금 바로 방문해서 설명 듣겠다'는 말만 겨우 내뱉곤 전화를 끊었다.
‘ 500만원정도의 돈을 어디서 구해...이대로 폐차 엔딩인가.’
정비소로 향하는 길, 공장 건물들로 빽빽이 들어선 사상의 아침은 날카롭게 차가웠다. 마치 내 속마음을 그대로 비추는 듯했다. 정비소에 도착하니, 아아, 나의 파란도는 리프트에 매달려 붕 떠 있었다. 흡사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정비사님은 차의 배때기를 꼼꼼히 살피며 점검 부위를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액셀과 브레이크 말고는 차에 대해 아는 게 1도 없는 내게, 그 복잡한 설명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소음일 뿐이었다. 내 귀에 꽂히는 건 오직, '엔진의 생사 여부' 딱 하나뿐이었다.
“이거 보이시죠? 이 고무 부분이 닳아서 갈아야 하고요, 에어필터도 교체 시기가 왔네요… 어어, 여기 보시면 냉각 필터가 조금 부식됐는데, 이건 전국에 부품이 없어서 나중에 문제 생기면 그때 가서 손보시는 게 좋겠어요. 배터리도 갈아야 하고, 엔진오일도 교체하셔야겠습니다.”
꼼꼼함이 온몸에 밴 정비사님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엔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온 신경이 차의 생사여부에 쏠려있었기에 차의 다른 장기들의 건강 상태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마침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기… 엔진은요?”
“엔진이요? 엔진은 아무 문제 없는데요?”
“아니, 엔진에서 막 연기 나고, 기름 막 튀고, 소리도 엄청 심했는데요?!”
“엔진은 원래 다 그래요. 엔진은 문제 없습니다.”
그 한마디에 그동안 억눌렸던 몸의 긴장이 일시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나도 모르게 정비사님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정말요?! 저는 엔진에 큰 문제 있는 줄 알고… 이미 마음의 준비까지 하고 왔거든요!”
엔진이 멀쩡하다는 말에 다른 소소한 교체 작업들은 더 이상 걱정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견적서에 찍힌 160만원이라는 숫자가 내 눈에는 기적처럼 보였다. 최소 400만원을 각오하고 왔던 터라, 당장 내 지갑에 20만원밖에 없다는 사실과 김해에 온 주 목적인 ‘차 개조 비용’이 없다는 사실도 새까맣게 잊혔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재벌 2세가 옷을 보지도 않고 '여기 있는 거 다 주세요.'라고 말하듯 견적서 내용은 보지도 않고 정비사님이 말씀하신 모든 걸 교체해달라고 부탁하고 차를 맡겼다.
물론, 당장 160만원을 어떻게 만들어낼지는 전혀 감도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어차피 미리 걱정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지금은 그저 이 예상치 못한 안도감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일단 살았으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