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모른다. 왜 차에서 살고 있는지.

의식의 흐름대로 두서없이 써 내려간 글

by 김태라



"사무실에서 잘 수 없어? 라꾸라꾸 같은 거 놓을 순 없나?"


내가 매일 사무실로 출근한다고 하면, 지인들은 꼭 이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럼 나는 사무실에서 자는 건 딱 질색이라고, 그런 식의 삶은 원치 않는다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덧붙여, 나는 잠자리를 가리는 섬세한 영혼이고 나만의 아늑한 공간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고 강조하곤 했다.


사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감했다. 나조차도 내가 왜 굳이 차에서 살기로 결심했는지, 그 속 시원한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기 때문이었다. 어떤 거창한 삶의 철학이나 심오한 의미에서 비롯된 일도 아니었다. 그저 '꼭 집이 필요한가?'라는 물음 하나가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마치 초등학생이 '하늘은 왜 파랄까?' 하고 던지는 질문처럼, 나에게는 집이라는 견고한 시스템에 대한 순수한 의문 같은 것이었다.


차에서 살기 시작한 후 밤늦게 씻기 위해 찜질방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늦은 새벽, 찜질방 바닥에서 익숙하게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들이 어떤 사연으로 왜 멀쩡한 집을 놔두고 여기서 자는지, 이런 곳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삶이 얼마나 불안할지 상상했다. 사실, 그들의 모습이 결코 멋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의 시선처럼 나의 모습도 누군가에게 초라해 보일 수 있겠다 생각하니 참 별로였다.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벗어난 행위에 대한 나의 미개한 편견을 나무라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재 나의 선택이 결국 나를 저런 미래로 이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섬뜩한 두려움을 느꼈다.


익숙했던 '시스템'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한 발자국 내디뎌 보니, 그 시스템 바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역 앞에서 빳빳한 박스와 낡은 담요로 간이 ‘집’을 만들어 놓은 노숙자 분들이 이제는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전에는 그저 지나치는 풍경이었던 모든 것이, 이제는 나 자신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처럼 다가왔다.


나는 때때로 시스템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을 상상하곤 했다. 불법체류자가 된다거나, 교도소에 간다거나,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경한 삶의 단면들은 어떨까 하고 말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그런 극한의 삶도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다는 객기 어린 생각까지 해본 적도 있다. 나의 간의 크기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그저 물리적인 ‘집’만 없을 뿐인데, 나의 존재는 이토록 뼈아프게 흔들리고 불안했다. 집이라는 견고한 보호막을 잃어버리자, 나는 단단한 껍데기에서 벗겨져 나온 민달팽이처럼 모든 것에 취약해진 기분이었다.

집이 있을 때는 머리도 잘 안 빗고 외모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지만, 집이 없어지고 나니 초라해 보이고 싶지 않아 아침에 눈을 뜨면 거울을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흐릿한 눈썹이라도 선명하게 그리고 나서야 겨우 차 밖을 나섰다.


나는 사실 나 자신을 설득하지 못했다. 왜 차에서 살고 싶어 하는지, 그 진정한 의미를 여전히 모른다. 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길이 나에게는 최선의 답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왜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내가 도전하고 있는 ‘철인 3종’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뜬금없이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곧장 관련 클럽에 가입했다. 수영도, 러닝도, 자전거도, 뭐 하나 특별히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거창한 목표라도 있어야 지금의 나태한 몸뚱이라도 겨우 움직일 것 같아, 그저 그렇게 대충 정한 목표였다.



11월 15일, 그날은 나의 생애 첫 철인 3종 대회 출전일이었다.


통영 월드 트라이애슬론 컵은 추첨제로 참가자를 선발하는 대회였다. 평소 이런 운빨은 지지리도 없었거늘, 웬일인지 이번 추첨에는 덜컥 당첨이 되어 버렸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하는 설렘과 함께 기분 좋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설렘은 그저 마음만의 일이었다. 내 몸은 굳건히 침묵했다. 훈련다운 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완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일단 꽤 비싼 돈을 내고 신청했으니 일단 가기로 했다.


첫 출전자인 만큼 수영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 300m를 10분 안에 통과해야 본선 출전 자격이 주어졌다. 다행히 본격적인 테스트 전에 차가운 물에 몸을 적응시킬 수 있는 워밍업 구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지난 5월에 출전한 한강 수영대회 때 물이 너무 차가워서 숨을 제대로 못 쉰 경험이 있었기에 꽤나 긴장한 상태였다. 게다가 11월이니 더 차갑겠지. 우려했던 대로, 물속에 몸을 담그자마 공포심과 함께 차가운 수온이 심장을 조여왔다. 순식간에 과호흡이 찾아왔고, 나는 팔 한번 제대로 휘저어 보지 못한 채 가이드 줄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맹렬한 숨소리 속에서 겨우 호흡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보트 위의 구조요원들이 마치 산모에게 출산 호흡을 유도하듯 숨을 천천히 깊게 들이마시라고 안내해 주었다. 워밍업 구간을 대여섯 번 돌며 간신히 정신을 차린 후, 수영 테스트 존으로 향했다.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무엇이 그리 무서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온몸의 세포들이 나를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공포감이 심장까지 쥐여 짰고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내가 지금 왜 여기와 있는 거지? 도대체 무엇을 증명하려고 이토록 무서운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왜 굳이, 수영, 달리기, 자전거 이 세 종목 중 잘하는 것 하나 없으면서 철인 3종에 섣불리 도전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걸까?’ 그제야,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질문들이 걷잡을 수 없이 나를 파고들었다.


‘300m 헤엄치는 것도 이렇게 무서운데, 내일 1.5km를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그냥 포기하는 게 현명한 선택일지도 몰라.’


혹시 모를 패닉 상황에 대비해 오른쪽에 있는 가이드 줄을 꼭 붙들고 헤엄을 친 것은 큰 실수였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그 생명줄에 의지하려 했기에, 그곳은 이미 아비규환의 ‘핫스팟’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거칠게 몸을 치고 지나가고, 누군가는 앞을 가로막아 나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왼쪽으로 노선을 틀고 싶었지만, 수영할 때 오른쪽으로만 고개를 돌리는 법을 배워왔기에 왼쪽에 사람이 있는지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내일 대회는 포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무사히 완주했다. 사실, 극한의 공포심만 제외하면 슈트 덕분에 물에 잘 뜨고 수온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슈트 덕분에 물에 빠져 죽을 일은 절대 없을 것을 알면서도 왜 그리도 무서웠는지 모르겠다.


물에서 나오자마자 스태프가 내 기록 칩을 회수했다. 그리고 돌아온 말은 테스트 탈락. 기록은 10분 15초였다. 합격선인 10분보다 15초 늦게 들어온 것이다. 절망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스스로 포기할 생각도 했지만, 애초에 ‘기록 미달’로 떨어져서 참가할 자격도 없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사실, 테스트에서 떨어질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실내수영장에서는 1.5km 수영을 늘 꽤나 안전한 기록으로 완주해 왔기 때문이다.


‘제출하는 공모전마다 죄다 떨어지고, 요즘 되는 일이 하나도 없더니, 이런 것마저 떨어지네. 나는 집도 없도, 돈도 없고, 성공하는 건 하나도 없는 진짜 실패한 인생이다. 나는 실패만 하는 보잘것없는 존재야.’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모든 일을 안일하게 어영부영 살아온 나 자신을 뼈아프게 자책했다. 자존감은 그야말로 바닥을 쳤다.





이미 출전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워밍업 수영을 하기 위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래, 실패자는 얼른 자리를 비켜줘야지.’

힘없이 짐을 챙겨 떠나려던 찰나, 갑자기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수영 테스트 중 사망사고가 발생하여 워밍업 수영은 진행하지 않겠습니다. 내일 대회 진행 여부는 회의 후 다시 공지하겠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테스트 수영을 위해 줄을 서 있을 때, 누군가가 구명보트에 구조되어 나오는 걸 보았다. 그리고 그분이 결국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설마 이곳에서 사람이 죽을 거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물속에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의미로 심장이 조여 오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나였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더 아팠다.

그러나 그 아픔과는 별개로, 한없이 떨어져 있던 나의 깊은 실패감은 순식간에 기묘한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실패자면 어때. 그래도 살아있잖아. 오늘 실패했으면 어때. 살아 있으니 내일 또다시 도전하면 되는 거잖아.’


누군가의 비극적인 사망 소식에 아픔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안도감을 느끼는 이 아이러니한 감정이 낯설었다.


결국 대회는 취소되었다. 오늘을 오랫동안 고대했던 수많은 참가자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인생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순간들로 가득하다. 테스트에서 떨어졌던 내가, 어쩌다 보니 동행한 우리 클럽원들 중 가장 먼저 ‘물맛’을 본 유일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클럽원들에게 수영 테스트에서 떨어졌다는 슬픈 소식을 전하면서도, '그래도 살아있어요.'라는 기쁜 소식도 함께 덧붙였다.


나는 여전히 내가 왜 이토록 불확실한 길을 선택했는지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차 안에서 밤을 보내는 불확실함, 차가운 물속에서 밀려오는 공포, 그리고 실패라는 이름의 좌절감 속에서도, 결국 나는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누군가의 비극 앞에서 실패와 안도감이 기묘하게 뒤섞이는 아이러니 속에서, 거창한 성공 보다는 한 호흡 한 호흡 버텨내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끝없는 질문과 깨달음의 연속이 바로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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