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려치우기로 했다.

의식의 흐름대로 두서없이 써 내려간 글

by 김태라

다 때려치우기로 했다. 내 행위에서 일말의 의미라도 찾으려 애쓰는 일, 나의 괴로움을 인지적으로 정리하고 해석해보려 노력하는 일, 이따위 것들은 이제 다 그만두기로 했다.

2025년 한 해 내내 집 안에 쌓인 물건들을 정리하고 비우려했고, 차로 거처를 옮긴 이후에도 정리하는 일은 계속됐다.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인지적으로도 끊임없이 '나'라는 존재를 정리하고 해석하려 분투해왔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무의미한 짓거리에 에너지를 낭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제는 내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정의하려 들지 않기로 했다. 그저 나를 행동하게 하는 그 괴로움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어떤 꾸밈도 없이 느끼는 것까지만 하기로 했다.

나는 내 존재가 너무 괴롭다. 이 괴로움은 내 삶에 항상 함께해서 어떤 행위를 해도 나아지질 않는다. 해외를 떠나 살아도 그랬고, 좋은 집을 구해 아늑하게 지내고 같았다. 애석하게도 집을 떠나 차 안에서 살기 시작한 후에도 그 괴로움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이 괴로움을 이야기하기 위해 창작활동을 해오고 있다. 2년 전부터는 경제 활동마저 중단한 채 오로지 내 안으로만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기록하는 데에만 집착했다.

수중에 돈은 없었지만 카드빚을 내서라도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정말 막막할 때는 용기를 내어 도움을 청했고, 감사하게도 참 많은 이들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 분명 행복하고 복 받은 나날들이었으나, 한편으론 현실적인 압박감과 존재론적 괴로움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공부하고 기록하며 살아왔음에도 나아지기는 커녕 그 행위 때문에 발생하는 더 많은 현실적인 비용만 늘어났다.

지난 10년 동안 매년 빠짐없이 공모전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늘 낙선이었다. 그 시간만큼 쌓인 좌절은 나를 '셀리그먼의 개'로 만들었다. 10년 치 낙선의 경험은 무서운 무기력을 낳았다. 누군가 10년 내내 내 귓가에 "네 작품은 별로야"라고 얘기하는 걸 저항없이 들어온 기분이다. 어쩔 수 없이 작업에는 내가 많이 투영되어 있기에 '네 존재는 별로야'라는 말과 같은 의미였다. 내 작업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며 작업을 투영하는 내 존재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마모되었다. 그럼에도 10년 넘게 인생의 족쇄처럼 끌고 온 이 작업을 결코 놓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물론 이미지를 상상하고 글로 옮기는 행위는 여전히 짜릿하다. 하지만 쌓여가는 빚이 정신 차리라며 무거운 고무 망치로 내 머리를 후드려 패곤 한다. 현재는 개인회생을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보험료, 학자금 대출, 휴대폰 요금 연체는 매달 산처럼 쌓여간다.

누군가의 눈엔 아주 무책임한 삶일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건 나의 선택이었다. 지난 10년간 다른 작업에 참여하며 돈을 벌고 남는 시간에 내 작업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 방식은 내게 작동하지 않았다. 이 지긋지긋한 족쇄를 하루빨리 벗어던지기 위해 감행한 과감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작년 한 해 정말 많은 성과를 이뤄냈지만, 그 대가로 막대한 빚도 얻었다.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일단 받지 않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독촉 전화가 오기 때문이다. 전화를 받아도, 문자를 읽어도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그냥 잊고 지내기로 했다. 그래도 오늘은 새해니까, 연체료와 월 지출을 한 번 정리해 보았다. 수입이 없으니 당연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다. 이 상황이라면 작업을 때려치우고 적극적으로 경제 활동에 뛰어드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게 더 무섭다. 지금 하는 작업이 지연되어 평생 족쇄를 차고 사는 것이, 빚을 못 갚아 감옥에 가는 것보다 훨씬 더 공포스럽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일단 무엇이 되든 멈추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더 열심히 하루를 살아내고 또 기록하기로 한번 더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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