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대로 두서없이 써 내려간 글
‘그래 딱 일 년만 더 살고 죽자. 영화만 완성하고 이 지겨운 고통을 끝내는 거야.’
주말 내 씻지 못한 몸을 씻기 위해 수영장을 방문했다. 거의 혼자 시간을 보내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과 살과 살을 가깝게 맞대고 있는 지금, 나는 어느 때보다 외로운 상태였다. 존재함이 나는 왜 항상 이렇게 괴로운 걸까, 내 존재가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이 아니라 짐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 지 오래이다. 뼛속까지 시린 외로움은 겨울이 되면 더 참을 수 없어진다.
텅 빈 표정의 거울 속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 나의 눈을 보며 문득 영화만 완성하고 그냥 살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삶에 대한 고통의 크기만큼 삶에 대한 욕망 또한 큰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삶의 공허함은 언제나 참기가 참 힘들다.
요즘 핫한 식당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유튜브에서 어떤 권위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정치적 문제에 분노하고, 사회적 활동을 통해 돈을 벌고, 하는 당연하다면 너무 당연한 삶이 참 공허하게 느껴진다. 하나의 존귀한 존재로 태어나 사회를 운영하는 소수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다가 죽는 것이 싫다.
SNS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가 기업의 광고콘텐츠가 되기 위해 자신의 이미지를 가꾸고, 그를 위한 에너지를 쓰고, 세계인의 관심사와 언어는 글로벌이라는 이름으로 평준화되고 있다. 어느 순간 나의 집을 둘러봤을 때, 내 것이 아닌 욕망들(내가 취향이라고 부르던)이 가득 찬 집 안을 참아내기가 어려웠다. 그 안에서 적당히 혹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이상한 일로 여겨졌다.
나의 존재가 이렇게 쓰이다 죽는 게 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디톡스의 개념으로 과감히 환경을 바꿔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에 집을 나와서도 그때 느끼던 나의 공허함과 우울함은 아직 그대로이다.
내가 우울한 이유는 결국은 경제적 문제이다. 2년을 경제활동 없이 버텨왔다. 그리고 요 근래 그 폭탄처럼 터졌고 청약담보대출을 상환해야 하는 상황에 청약을 해지해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청약은 아버지가 내가 학생일 때부터 들어서 성인이 된 후 나에게 주신 선물이다. 15년이 넘은 이 선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60만 원이라는 돈을 무리해서 빌리거나, 그냥 해지를 하는 것이다.
가족들이나 내 주위에 돈을 빌리는 것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게 똑똑한 판단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닌 미래의 어떤 가치 때문에 이렇게나 괴로울 수 있다니, 집이 뭐길래.
은행에서는 계속 전화가 오고, 나는 돈이 없고, 청약 해지는 하고 싶지 않고, 돈을 빌리고 싶지 않고.
무한 반복되는 고리에 괴로워만 하다가 1년 뒤에 죽기로 마음먹으니 조금은 마음이 편했다.
그래. 지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들만 가지고 가자. 지금 이 시간을 잘 버텨내어서 지금까지의 내 삶과 내 습관의 고리를 끊어버리자. 추운 겨울이면 내 존재를 사랑이 아니라고 우기는 이 우울함도 같이 끊어내자.
휴대폰의 알람을 끄고 일단 며칠 아무 생각 없이 지금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공부만 계속했다.
오늘은 창문 밖에 눈 휘날렸다. 항상 통유리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는데, 그 꿈은 이룬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