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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라 Nov 14. 2024

진정한 상류층과 불사자의 세계

'상류층'이란 무엇인가. 

재산으로 계급을 나눠 상/중/하로 구분하는 문제는 차치하고, 상류층이란 한마디로 ‘많이 가진 계층’을 뜻한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가진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가령 ‘자동차’의 소유자는 무엇을 가졌는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다. 그런데 <전우치>에서처럼 축지법을 써서 이동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에겐 자동차가 필요 없다. 그렇다면 자동차라는 ‘소유물을 가졌다’는 것은 자동차가 지닌 ‘능력을 못 가졌음’을 뜻한다. 따라서 진정한 소유란 소유물 자체가 아니라 소유물이 보유한 본질, 능력을 갖는 것이다. 


고로 가시적(물질적)인 것의 소유란 그것에 내재한 능력의 ‘결핍’을 뜻한다. 공동체의 본질이 충만이 아닌 결핍이라는 R. 에스포지토의 통찰도 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외적인 소유, 즉 물건이나 관계를 많이 가질수록 에너지적 결핍과 맞물린다는 각성에서 나온 것이 라이프스타일로서의 미니멀리즘이다. 이는 불필요한 것을 없앰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 기술이다.


‘목발’이라는 소유물이 부의 기준인 어떤 세상이 있다고 하자. 그 세상에 속한 인간들은 목발을 짚어야만 제대로 걸을 수 있기에 그 물건이 필요하다. 이 세계에서 목발을 갖지 못한 자는 하류층이 되고, 목발을 하나 가진 자는 중산층, 두 개 이상 가진 자는 상류층이 된다. 그런데 어느 날, 걷는 능력을 가진 자가 나타났다. 그에겐 목발이 ‘필요 없다.’ 스스로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소유자다. 그런데 외관상 그는 ‘못 가진 자’와 동일하게 보인다. 목발이 없기 때문이다.


본질적 측면에서 ‘있는’ 자는 여러 개의 목발이 있는 자가 아니라 걷는 능력이 있는 자이다. 반대로 진정 ‘없는’ 자는 목발이 없는 자가 아니라 걷는 능력이 없는 자이다. 목발이 필요하지만 못 가진 자나, 목발을 여러 개 가진 자나 능력의 측면에선 매한가지로 ‘없는’ 자인 것이다. 인생에서 이 ‘목발’에 해당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움 속에서 계속 깨닫게 되는데, ‘목발’이 많을수록 죽음의 사슬(윤회)에 묶이게 된다는 점 또한 명료해진다. 외관상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은 내가 중위소득 기준으로 상류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오늘 알았는데, 미니멀리즘 기준으로도 지구상 몇 손가락 안에 들 터이니 나야말로 진정한 부자라는 생각이 든다. 


인류의 의식이 진화하면 부의 측정 기준도 달라질 것이다.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가진 것이 많아지는 게 아니라 필요한 것이 없어지는 것이다. 즉, 자족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요즘 대학 강의실엔 벌써부터 이를 아는 사람들이 있다. MZ세대의 개인주의 성향을 문제 삼는 기성세대가 많은데, 나는 이를 (거시적으로 봤을 때) 집단주의와 타자 의존성에서 벗어나 자족적 인간으로 진화하는 양상이라고 본다. MZ의 선두이자 물심양면의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불사자(不死者)들의 공동체는 없다”는 J. L. 낭시의 말을 떠올리며 죽음의 사슬을 깬 존재들의 세계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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