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논리 이야기 3주차. 2024. 9. 20.
학생들의 놀라운 통찰력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의 논제>
도롱뇽 종류 중 ‘액서러틀’은 올챙이 상태에서 번식하며 성체로 성장하지 않는데, 그럼 인간도 미성숙한 상태에서 번식을 하면 이를 통해 성숙한 자아로 성장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가? (권사랑)
<오늘의 의견>
인간이 성장할수록 과연 번식을 하려 할까? 개인적으로는 성숙한 인간일수록 번식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을 더 성숙하게 하려 노력할 것이기에 미성숙한 상태에서 번식을 한다고 해서 더 어려워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최다혜)
번식이라는 행위를 통해 성숙한 자아로 성장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아이에게 영향을 받아 자아가 성장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고딩엄빠’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미성숙한 사람들이 번식이라는 행위에 대한 책임을 못지는 모습을 보고 자아성장을 위해 번식하는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수영)
인간이 미성숙한 상태에서 번식을 하면 번식 행위가 성숙한 자아로 성장을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임신-출산-양육의 과정에서는 크고 작은 고통이 많다. 이를 미성숙한 인간이 겪기에는 버겁다고 생각한다. 출산 후에는 잠도 못 자고 경제적으로도 지출이 많기 때문에 책임감이 증가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상태가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아이에게 맞춘, 자신의 삶이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따라서 미성숙한 개인은 이러한 상황이 부담으로 느껴지고 이는 성숙한 자아로의 성장을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단단한 자아가 형성되지 못한 개인은 성숙한 인간보다 시련에 더 흔들리고 성장하기 어려운 위치에 놓이기 쉽다. 그러므로 미성숙한 상태에서의 번식 행위는 인간의 성장을 더디게 한다. (권사랑)
M. Walshe, <영원한 올챙이> 중
멕시코에 서식하는 도롱뇽 가운데 '액서러틀'이라 부르는 특이한 종류가 있다. 이들은 나름대로 환경에 적응한 결과 대단히 기이해지고 말았다. 올챙이 상태 그대로 번식하는 방법을 터득해 버렸기 때문에 결코 어른으로 성장하는 일이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영원한 올챙이’ 얘기가 도롱뇽 세계에서 그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인간 세상에서도 그와 유사한 현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번식은 대단히 자유롭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실제로 진정한 성숙인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만다. 올챙이가 올챙이를 낳고, 그 올챙이가 다시 올챙이를 낳고……. 이렇게 미성숙한 인류가 끝없이 번식해 나가고 있다.
이를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되겠다.
“인간이란 동물은 완전히 성숙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미성숙 상태에서도 생식을 한다.”
인간 사회의 제반 문제가 근본적으로 여기서 비롯된다. 플라톤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철학자 왕을 꿈꾸었다. 만약 철학자들이 충분히 각성한 존재이고 왕이 될 수 있으며 또 버텨낼 수만 있다면 그건 분명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 기록을 아무리 훑어봐도 그런 일은 있어 본 적이 없다.
역사에는 가끔 진정으로 자비로운 군주들이 나타나서 비록 국지적이고 또 일시적이긴 하지만 많은 선행을 해낸 경우도 있기는 했었다. 서양에서는 교황이나 대사제 등 종료 지도자들까지 그런 시도를 해왔다. 그러나 예수는 유혹을 뿌리치면서까지 이런 놀이에 말려들기를 거부했으며, 부처 또한 출가하기 전 전륜성왕이 될 수 있었는데도 기어코 다른 길을 택하였던 것이다.
우리처럼 평범한 대다수의 미성숙 인간 올챙이를 빨리어로 ‘뿌툿자나puthujjana’라고 부르는데 이는 속물이란 뜻이다. 도롱뇽이 원래 성숙할 수 있듯이 인간도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도롱뇽의 경우처럼 호르몬이나 약물을 주사해 성체로 만드는 그런 기술이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 개인으로서만 깨달을 수 있으며 집단으로는 깨달을 수 없다. 인간 올챙이 각각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수련하여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성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