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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라 Dec 01. 2023

자유와 평안: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심문관>

AI 시대의 논리 이야기 4주차. 2024. 9. 27.

<오늘의 논제>


안시현: 과거 1세기의 예수를 열렬히 섬기지만 15세기 후 부활한 예수를 핍박하는 추기경을 신앙심이 깊다고 할수 있을까?     


김희원: 대다수의 인류가 진정한 자유, 스스로 선택하는 것보다 권위에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박윤서화: 예수를 따라 진리를 깨닫는 섬김의 삶은 복종을 뜻하는 게 아니야? 대심문관이 말한 복종과 어떻게 다른 거야?     


안준모: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사는 것과 권위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선정 논제]


신성열: 1) 경제적으로 부족했던 50년 전의 한국과 경제적으로 풍요한 지금의 한국을 이야기해보자. 빵과 안정이 이루어졌지만 대심문관이 말한 것처럼 범죄도 죄악도 없을까?

2) 지혜와 과학으로 인해 범죄 없는 세상, 죄악이 없는 세상은 과연 정상적인 세상일까?     


이현서: 대심문관은 예수가 인간에게 자유를 준 것을 비판하였는데 그렇다면 만약 예수가 인간에게 자유를 선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장서우: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심문관에서 추기경은 예수가 말한 참된 자유는 평범한 인간은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종교는 안정감을 주고 자유를 어느정도 억압해야한다고 말하는데 예수의 참된 자유를 통해 얻는 안정감과 다른가?     


한지원: 과연 인류의 모든 미래의 역사는 꼭 하나로 단정 지어야만 하는것인가?     


문하은: 인간 존재의 비밀은 그저 살아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닌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에 있다고 하는데, 목적이 없는 삶은 의미가 있을까?     


박치현: 자유는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나?     


박민영: 예수가 주는 완전한 자유를 이해하고 추구하는 사람들은 예수가 기적을 보이지 않아도 그를 따르는데, 그렇다면 그런 자유의지가 없음에도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진정한 믿음이 아닌 것이 아닐까?     


황언: 예수의 입장에서 어떻게 사랑과 용서로 인간의 자유를 존중할까?


이용빈: 대심문관의 논리에 따르면 인간 존재의 비밀은 그저 살아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아가느냐에 있다고 했는데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도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대심문관의 논리에 따르면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은 자유를 가진 것인가?     

     

최다혜: 대신문관이 말한 복종 속에서 안정이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까?  

   

장영은: 인간이 자유 선택 의지로 그리스도(신) 등을 섬기며 복종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게 진정한 인간의 자유라고 생각해?     


채지아: 권위는 복종을 의미하나?     


박준호: 안주하는 데서 오는 평안과 불편한 발전, 어느 쪽을 지향해야 할까?     


정가연: 인간이 무엇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자유가 방해가 되나?     


조은서: 예수가 자유를 뺏는것이 인간에게 안락함을 주는 걸까?     


정경원: 대심문관에서는 기적을 위해 신을 믿는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해 그런데 현대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적 등을 위해 신을 믿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진정한 믿음이 아닌가?    

 

김서연: 인간이 무언가에 구속받지 않고 온전히 자유가 될 수 있을까?     



<대심문관>에 대한 챗GPT의 요약

(텍스트 원문은 수업 시간에 강독)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심문관"은 그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포함된 이야기 중 하나로, 작품 내에서 이반 카라마조프가 동생 알료샤에게 들려주는 상징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자유와 구원의 문제, 그리고 종교와 권력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줄거리 요약:


16세기 스페인 세비야에서 종교재판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예수가 다시 인간 세상에 나타납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기적을 베풀며 사랑을 전하지만, 곧 대심문관에 의해 체포됩니다. 대심문관은 예수가 인간에게 준 자유가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며 그를 비난합니다.


대심문관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가 인간에게 자유를 준 것은 그들을 무거운 짐 속에 남겨두는 행위였으며,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를 원하지 않고, 차라리 안정과 빵을 원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보다 권위에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원하며, 교회는 이를 잘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자유 대신 안정을 제공합니다.


대심문관은 예수가 이를 몰랐다고 비판하며, 그가 인간을 구원하는 대신 고통으로 내몰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키고, 대심문관에게 다가가 입맞춤을 합니다. 대심문관은 그 입맞춤에 충격을 받지만, 끝내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며 예수를 풀어줍니다. 예수는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떠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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