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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라 Dec 23. 2023

사랑과 두려움, 그리고 교육

AI 시대의 논리 이야기 5주차. 2024. 10. 4.

<오늘의 의견>


장영은

사랑을 하며 효능감, 자기 발전 등을 경험하고 에너지를 얻을 수 있지만 이는 진정한 사랑에 도달하는 경험과 배움의 기회일 뿐 그저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에 완전히 도달했다면 특정한 대상이나 상황 없이도 사랑을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논제>


이용빈

뮤리엘 스파크는 '학생들 속에 없는 뭔가를 집어넣는 것, 그런 것은 나에게는 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침범이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안시현

사랑은 인간의 기본상태이다. 그리고 교육은 내면에있는것을 이끌어내는것이라 하였는데 그러면 사랑을 배워가는것은 교육일까 훈련일까?


김희원

주입식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가 없다면 우리가 이러한 교육 시스템에서 피해 입지 않고 진취적으로 다양한 꿈을 더 쉽게 꿀 수 있을까?


권사랑

가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와줄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데 진정한 의미의 교육을 실현시키지 못하는 교육 환경에서 가짜 두려움 극복을 위한 지도자가 있는 것이 나을까 없는 것이 나을까?


박준호

Power와 force가 균형을 이뤄야 하는가?


박윤서화

만약 현재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의 위에 대심문관과 같이 두려움을 극복한 것처럼 보이는, 권위적인 지도자가 생기게 된다면 이는 긍적적 결과를 가져올까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까?


박민영

너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이 나왔다면 학생들의 영혼 속에 없는 것을 집어넣는 형식의 침범하는 교육을 해도 될까? [선정 논제]


문하은

학생들 속에 없는 뭔가를 접어넣는 것은 교육일까 침범일까?


서우

진짜 사랑할 때 느끼는 감정들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 또한 착각일 수 있는거야? [선정 논제]


천혜은

주입식 교육을 통한 가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을 때, 내면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교육으로 극복할 수 있는가?


옥지우

주입식 교육을 완전히 없앤 교육방식이 가능할까?


박치현

현대사회는 어째서 내면의 재능을 피우는 교육이 아니라 주어진 내용을 주입하기만 하는 교육이 강요되는걸까?̊̈


안준모

교육은 인간 내면으로부터 끌어내는 것임 현재 교육은 학생들 속에 뭔가를 집어넣는 침범이라고 하며 너무 많은 학생들이 네모난 구멍 속에 쑤셔박힌 말뚝처럼 살고 있다고 할 정도로 교육 시스템으로부터 피해를 받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김도우

만약 두려움, 불안함이 없는 세상에선 모두가 행복하고 위협이 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신성열

톰 새디악은 진정한 교육은 인간의 본질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렇다면 톰 새디악이 말하는 진정한 교육은 어디에서 배울 수 있는 거야?


정가연

영혼과 정신의 죽음이 나타나면 진짜 두려움과 가짜 두려움은 사라질까?


채지아

현재 교육이 비이성적 두려움을 조성해 내면에 능력을 억압한다고 생각해?


김서연

뮤리엘 스파크는 '침범'했을 때 학생들의 창의성이나 독창성을 제한하기 때문에 이를 부정적으로 본다고 생각해. 근데 어떤 사람들은 창의성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떤게 맞는걸까?



우리가 내리는 가장 중요한 결정은

자신이 우호적인 우주에서 산다고 믿느냐

아니면 적대적인 우주에서 산다고 믿느냐이다.

-아인슈타인

 

 

톰 새디악, <두려움과의 대화> 중


‘교육education’이라는 말은 ‘내면으로부터 끌어내는’ 혹은 ‘드러내는’이라는 뜻의 라틴어 ‘educare’에서 유래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교육은 인간 속에 있는 것을 끌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끌어낸다기보다는 주입시킨다. 지금 학교 교육에는 사실 '훈련schooling'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우리는 학생들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도록 고취하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할 경우에도 잘 듣지 않으며, 내면에 있는 저마다의 빛이 잘 빛나도록 도와주지도 않는다. 그 대신에 우리는 그들이 어릴 때부터 알아야 할 것을 말해주고, 그것으로 슬프게도 그들이 앞으로 되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은근히 일러준다. 스코틀랜드의 작가 뮤리엘 스파크는 그런 앞뒤가 바뀐 접근 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교육은 학생들의 영혼 속에 이미 있는 것을 끌어내는 것이다. 학생들 속에 없는 뭔가를 집어넣는 것, 그런 것은 나에게는 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침범intrusion이다.”


<도마복음>에는 이런 말이 있다. “만일 너희가 너희 안에 갖고 있는 것을 끌어내 열매를 맺게 한다면 너희 안에 있는 그것이 너희를 구할 것이다. 만일 너희가 너희 안에 갖고 있는 것을 끌어내지 않는다면 너희 안에 있는 그것이 너희를 파괴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의 심각성이 분명해진다. 진정한 교육은 바로 삶과 죽음의 문제인 것이다. 육체의 죽음은 아니라도 정신과 영혼의 죽음이 달린 문제이다.


지금 시스템에서는 거의 묻지 않지만 아주 기본적인 질문이 있다. 바로 이 질문에서 교육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서 “너는 무엇을 사랑하나?”라는 질문이 나온다.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이 나오든 그것을 하찮게 치부해서는 안 된다. 노는 것을 사랑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학생들이 네모난 구멍 속에 쑤셔박힌 둥근 말뚝처럼 살고 있다. 폴 메카트니가 학교를 마칠 때까지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챈 교사는 한 명도 없었다. 파울로 코엘료는 글을 쓰지 못하게 하는 충격 요법까지 받았다. 아인슈타인조차 기존의 학교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유명한 사람들만 교육 시스템으로부터 피해를 입는 건 아니다. 수천 명의 또 다른 아인슈타인들이 매일 유사한 좌절을 겪고 있다. 그들은 비범하지만 평범하다. 아무도 그들에게 아주 기본적인 질문, "무엇이 당신을 살아있게 하는가?"라고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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