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와 윤리 6주차. 2024. 10. 8.
<오늘의 논제>
조휘: 고통을 마주하고 이겨내는 사람의 가치는 가치롭다 여길 수 없는가?
정성학: 자족으로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을까?
김서현: 자족이 된다 해서 사교성을 지닐 필요가 없는가? [선정 논제]
김민서: 현대사회에서 자족이 의미 있는 가치인가? [선정 논제]
김수민: 죽음으로 인한 관계 소멸로 시작된 고독으로도 자족할 수 있는가?
내면의 부(富)가 충분해서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외부의 도움이 별로 필요 없거나 전혀 필요 없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 인간이 타인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극히 좁은 한계 내에서다.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괴테의 말이 옳다.
가장 좋고 바람직한 것은 각자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향유의 원천을 자기 자신 속에서 더 많이 발견할수록 인간은 더 행복해진다. 자신이 원래 지니고 있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진정한 원천이자 유일하게 영속적인 것이다. 자기 자신이 전부일 수 있어서 “나는 모든 재산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확실한 행복이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만 온전히 그 자신일 수 있다.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홀로 있음의 상태에서는 그가 원래 지니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 혼자 있을 때, 비참한 인간은 자신의 무가치함을 느끼고 위대한 인간은 자신의 위대함을 느낀다. 각자 자기 본연의 모습을 느끼는 것이다.
인간은 높은 곳에 있을수록, 즉 정신적으로 위대할수록 홀로 있게 된다. 그것은 본질적이고 불가피하다. 본래 지니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외부로부터 필요한 것이 적어지고 다른 사람이 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는 비사교적 인간이 된다.
인간은 본래 자기 자신과만 완전히 융화할 수 있다. 친구나 애인과도 완전히 융화할 수 없다. 따라서 마음의 평화와 내적 평정, 즉 건강 다음으로 중요한 이 최상의 재산은 고독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고독이 행복과 평정심의 원천이기 때문에 젊은이는 홀로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을 인생의 주된 과제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자기 자신에게만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자기 자신이 전부일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 이때 자신의 자아가 크고 풍요롭다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상태를 누릴 수 있다. 키케로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의존하고 자신에게만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 완전히 행복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이 그 자신에게 차지하는 비중이 클수록 그에게 타인의 비중은 작아진다.
고독은 탁월한 정신을 지닌 존재들의 숙명과 같다. 때로는 “당신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인간이다”라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속삭임의 반격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고독은 점점 더 쉬워지고 자연스러워진다. 무엇보다, 남과 어울리려는 가장 강력한 본능인 호색과 성적 충동이 사라진다. 강화된 자족감이 성욕과 군서 본능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서 수많은 착각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난다.
인류의 참된 스승들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는 다른 사람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고 광명의 세계로 끌어올리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는 사람들 틈에서 살아야 하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들의 일원이 아니다. 그들은 청년 시절부터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현격히 다른 존재라고 느끼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 사실을 더욱 분명히 인식한다.
음식을 절제하면 몸이 건강해지고 사교를 절제하면 마음이 건강해진다. 따라서 일찍부터 고독과 친해지고 홀로 있음을 좋아하게 된 사람은 금광을 얻은 것과 같다. 비사교적인 사람은 사교성을 지닐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사교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많은 것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