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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스스로 Dec 06. 2022

난독

스스로 프로젝트 1탄

활자에 집착하게 된 것은 난독증을 겪은 후부터였다. 난독증은 지능이나 시청각 기능이 정상인데, 글을 읽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증상이다. 분명 어린 시절의 나는 글을 읽고 잘 이해했다. 독후감도 쓰고 책 읽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칠판이나 책의 글자를 읽지 못하고 게다가 글씨를 써도 다른 글씨가 써지는 것이다. 내가 쓴 글씨가 꼭 방언처럼, 낯선 다른 글자의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그때 나이가 10살이었다. 처음에는 간헐적으로 난독 증세가 나타나다가 점점 글자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칠판에 글씨를 따라 써보려고 노력했지만, i를 필기체로 쭉 써넣은 것처럼 알 수 없는 낙서가 그려질 뿐이었다.

매일 밤 기도했다. 다시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된다면, 내 모든 것을 내어드리겠다고 하나님께 맹세도 했었다. 매일 쓰던 일기는 그림으로 채웠고, 아주 간단한 글자 몇 단어도 내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글씨를 쓰려고 연필을 잡으면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모두를 속이며 글자를 아는척하며 지내야만 했다.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지도 못하고 혼자서 고립되었다. 그때 운동부에 소속되어 있어서 수업을 자주 빼먹을 수 있었다. 운동부실에서 몰래 혼자 남아서, 쉬운 그림책을 가져다가 간단한 글자부터 하나하나 천천히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곧 여름방학을 맞이했고, 아침에는 학교에서 운동 연습을 다녀오고, 그 후에는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었다기보다는, 글자를 눈에 익히기를 반복했다. 백과사전을 모두 꺼내서 ㄱ부터 ㅎ까지 줄 세워놓고 그 안의 글자를 모두 읽어 내려갔다. 다행히 여름 방학이 끝날 무렵 점점 난독 증세가 사라졌다. 그 후로 난 글을 읽고 쓰는데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글을 읽고 쓰는 것에 장애가 생길까 봐 두렵기도 하다.

난독증을 앓은 시기는 길지 않았지만, 세상에 글자가 사라졌던 그 순간, 난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었다. 삶에서 글자를 잃어버린 열 살의 나는 비관하고 절망하는 마음을 너무 일찍 알았다. 모두를 속이며 지내는 일에 죄책감마저 들었다. 병을 앓고 있으면서 아무에게도 도움을 구하지 않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지금도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난 그 당시 헬렌 켈러를 떠올리며, 장애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생각과 감정에 도달했고,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양성하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 꿈을 가지고 다시 글을 읽어냈다. 인생에 못할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생각과 믿음이 흩어지고 흐려지려고 할 때마다, 그때의 경험을 꽉 붙잡게 된다. @김스스로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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