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프로젝트 1탄
30대 초반까지 타인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했다. 난 누군가의 부탁을 받으면, 내가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자존감이 낮았고, 나의 욕구보다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보며 자라 온 까닭이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넌 꼭 타인의 감정 쓰레기통 같아!
그 친구는 매우 솔직한 친구였다. 나를 걱정해서 건넨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 한마디에 철저하게 무너졌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서서히 멀어지려 노력했다. 부탁을 거절한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타인이 하는 말에서 멀리 도망쳐버렸다.
그 당시에 내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첫 아이를 유산하고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 육체적인 고통과 우울한 감정이 내 삶을 통째로 집어삼켜버렸다. 그때는 타인과의 차단만이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었다.
고독의 시간 속에서 나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에 파고들었다. 특히 명리학이 세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세상과 사람을 다양하게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지혜가 든든한 마음을 갖게 했다. 사람에게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일, 죽고 다시 태어나는 재생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40대가 된 나는 건강하게 회복되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한다. 하지만 타인의 부탁에는 매우 단호해졌다. 단순한 부탁일수록 단번에 거절한다.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면, 상대방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도움이 꼭 필요한 부탁은 하루 동안 생각하고 결정한다. 그 일을 내가 해도 되는 것인지 간략하게 글을 써보면, 내가 그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이유가 떠오른다. 내 안에 이유가 생기지 않으면 타인의 부탁을 거절한다. 프로세스가 간단하고 단호할수록, 삶을 가볍게 살아갈 수 있다.
누구도 타인의 쓰레기통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남에게 의존도가 높은 사람의 부탁은 거절하는 것을 권한다. 그 거절이 그들을 돕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거절과 부탁은 친구처럼 가깝다. 부탁을 거절하여 그 사이가 멀어진다면, 그들은 친구가 될 수 없다. 거절을 해보면 그 관계를 알 수 있다. 거절의 언어가 결코 단절의 의미가 아님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관계가,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난 오늘도 거절을 했다. 아이의 단순한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이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들을 나는 그저 옆에서 지켜보았다. 아이는 하루 동안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생겨났다. 이 단순한 행동이 상대방에게 기회를 줄 수 있고, 나의 믿음에 자신감이 생겨나게 한다. @김스스로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