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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스스로 Sep 20. 2022

권정생 읽기

스스로 프로젝트 제1탄

'강아지똥' '몽실언니' 작품을 좋아한다. 권정생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설렌다. 권정생 선생님을 생전에 뵙지 못했지만, 함께 피를 나눈 사이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선생님의 글마다 나를 보게 된다. 쓸쓸하고 슬픈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내 아픔은 회복된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읽고 나서다.


작품에서 만난 강아지똥, 주인공은 정말 작고 보잘것없다. 그 존재가 자기 몸을 잘게 부수어 꽃을 피우는 장면은 나를 눈물짓게 만들었다. 길거리에 핀 민들레꽃을 볼 때마다 강아지똥을 떠올린다. 시장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을 만나면 몽실언니가 생각난다. 나의 타인을 향한 적대감과 두려움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선생님의 글은, 굳어있는 나를 말랑하게 변화시키고 주변 사람들을 돌보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권정생 선생님의 글이 너무 슬프고, 우울하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이런 글을 읽혀도 되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권정생 선생님은 '빌뱅이 언덕 산문집에 그런 질문들에 답을 하셨다.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


사람들은 슬프지 않으려고 절망한다. 슬픔은 많은 감정 중 하나지만, 절망은 잘못된 선택이 된다. 살아있다면, 슬픔과 절망을 겪는다. 슬픔과 절망에는 각각 다른 표정이 있다. 슬픔은 내 얼굴에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우는 표정이다. 절망은 내가 사라진 표정으로 내 얼굴에서 살아간다. 상처 난 삶을 회복하기 위해, 내면에 전쟁이 일어난다. 그 전쟁에서 나를 버리는 것이 절망이다. 요즘 절망에 빠진 이들이 많다. 나도 한때 그랬다. 현실을 벗어날 수 없기에 절망을 선택하는 것에 익숙했다. 나는 나를 세상을 살아가는 무엇이라고 표현할 방법을 몰라 방황했다. 이번 생은 망했구나 절망했을 때, 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읽었다. 나는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권정생 선생님처럼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삶에서 슬픔을 경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슬픈 경험은 이야기를 통해 할 수 있다.  마음껏 슬퍼하고, 제대로 눈물을 흘려봐야 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절망의 길 앞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게 된다. 나는 아이에게 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읽어준다. 어린아이는 작품 속에서 슬픔을 어렷풋이 이해한다. 아이가 슬퍼하면, 로알드 달 이야기도 들려준다. 로알드 달은 어른들을 무력화시키는 꼬마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아이에게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슬픈 이야기를 피하면 안 된다. 아이들은 많은 감정 을 드러내고 감정 범벅 놀이를 해야 한다.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 같은 마음에서 권정생을 만나, 권정생을 읽고, 마음껏 울고, 다시 일어설 힘을 가지게 되었다.@김스스로_게으름 불태우기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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