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이하여 새로운 작업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지난 8월 협업했던 음악 인플루언서 겸 아티스트 로미어캣님과 겨울 송 작업을 했어요. 한 해가 가기 전에 또 다른 작업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새로 작업한 곡은 <Winter Night>이라는 곡입니다. 장작 난로같이 따뜻한 톤, 아기자기한 벨소리와 사각사각 리듬이 매력인,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에 잘 어울리는 곡이에요. 이번 글에서 Winter Night 작업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사운드를 만들면서 이해하는 아기자기한 감성
작업을 하면서 레퍼런스로 삼은 것은 자이언티, 이문세 님의 <눈>이었습니다. 곡의 정서와 색깔은 다르지만, 겨울이라는 감성과 섬세하게 사운드를 통해 그려내는 것을 들으며 많이 참고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브러시 사운드를 통해 섬세하게 눈이 내리는 적막한 장면을 그려내는 것은 이 곡의 백미라고 느꼈습니다. 그런 감각도 작업에 담아내보고 싶었습니다.
의외로 어려웠던 것은 이 아기자기한 감성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겐 기본으로 탑재해있지 않은 것인지, 아기자기한 곡의 감성도 조금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신기하게도 어떤 사운드를 원하는지 아티스트와 대화를 하고 작업을 진행하면서 조금씩 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사운드를 하나하나 다듬어 가며 곡에서 의도한 정서를 만들어가다 보니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경험도 했습니다.
Winter Night 곡은 따듯한 톤과 사각사각한 리듬을 뼈대로 합니다. 과하지 않게 컨트롤한 베이스는 따뜻함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죠. 브러시 스네어와 클랩 소리는 섬세하고 튀지 않게 곡의 리듬을 잡아줍니다. 아련한 듯한 우드윈드와 스트링, 마림바 같은 토이 트레인 사운드는 귀엽고 무해한 겨울의 축제 같은 분위기를 그려내고, 크리스마스를 외치는 코러스 사운드는 겨울밤 사이로 눈이 흩어지듯 입체적인 공간감을 만들어줍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재미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봤습니다. 리듬의 한 축인 클랩 사운드의 찰진 매력이 드러나도록 딜레이와 리버브, 패닝 등 여러 방법을 사용해 보았습니다. 후반부의 크리스마스 코러스는 눈이 흩날리는 이미지를 상상하며 작업했습니다. 베이스의 저음이 너무 부하지 않게 여러 차례 사운드를 잡았고, 다양한 트랙이 전체적으로 질서 있게 들리도록 레벨과 위치를 다듬었습니다.
믹스 작업중 한 컷
아티스트와의 1문 1 답
작업 과정에 대해 아티스트께 질문을 드려 보았습니다.
이에 대한 아티스트의 이야기도 소개해드립니다.
Q. KIMTAE) 이번 작업에서 재밌거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로미어캣) 이 곡은 작년 1주 1비트 프로젝트할 때 만들어 둔 짧은 스케치에서 시작했어요. 프로듀싱 퀄리티와장면에 대한 이미지를 사운드로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디테일을 많이 신경 썼어요. Interlude의 크리스마스... 부분에서는 여러 겹 창문으로 비추는 불빛과 흔들리는 촛불의 불규칙적, 환상적이고 낮은 해상도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믹스 단계에서도 그 부분이 잘 살아난 것 같아요.
보컬 레코딩할 때 1절과 2절에서 제가 잡고 간 포인트가 달랐는데, 믹싱에서 보컬 톤과 감정선이 1,2절이 다른 것을 짚어주셔서 신기했습니다. 들으시는 분들도 한번 1,2절을 유심히 들어보시면 재밌으실 것 같아요.
1차 믹스본과 완성본이 상당히 차이가 있어요. 1차 믹스본은 처음 곡을 쓰며 생각한 것과 다른 느낌이었는데, 이걸 더 제대로 전달해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소통하며 결과물을 개선하는 과정도 즐거웠고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곡을 쓰고 사운드를 만드는 두 작업의 의미
올해 꾸준히 곡을 쓰고, 사운드를 만들어왔습니다. 두 가지 작업에 대한 생각을 적어봅니다.
이야기에 앞서서,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책을 참 좋아합니다. 작가가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부터, 글쓰기 루틴, 그리고 작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글이죠. 책에서 하루키는 장편소설과 단편, 에세이에 대해, 본업과 본업 사이에 재밌게 하는 작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가장 중요한 장편소설을 쓸 때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시간을 비워 글에만 몰두합니다. 장편이 끝나고는 가볍게 마음 가는 대로 단편을 쓰거나, 외부 기고와 에세이를 쓰기도 합니다. 어디까지나 본업은 장편이지만, 본업 사이에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글을 쓰기도 하는 것이죠.
저에게는 제 곡 작업과 사운드 작업이 비슷한 비유가 될 것 같아요. 가장 하고 싶은 건 제 곡을 쓰고 내 음악을 만드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감성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드러내는 건 정말 뿌듯하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한편으로 그만큼 대단히 어렵고 힘든 작업이기도 합니다. 일단 시작하면 많은 노력과 시간, 집중력을 쏟아부어야 하고, 헌신과 끈기가 필요하죠. 오롯이 혼자 해야 하는, 외로운 작업이기도 합니다.
사운드를 만드는 것은 즐겁고 보람 있습니다. 같이 공부하고 성장하는 동료 음악인들에 도움이 되는 것도 기쁜 일입니다. 매번 내 곡 작업을 하기엔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로 어려운데, 꾸준히 믹싱/마스터링 작업을 하면 다른 작곡가의 음악적인 역량과 고민을 배우고 흡수하는 느낌도 들어요. 지금 음악에 사운드 작업이 불가피한 것을 생각하면, 내 음악의 사운드를 위한 지속적인 훈련 같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아티스트들의 음악적 고민과 영감을 배울 수 있는 것도 재미난 점이에요. 믹스를 하면서 다른 아티스트들이 음악적인 고민으로 만든 트랙을 하나하나 뜯어들어가면서 이해할 수 있죠. 상상해본적 없는 새로운 사운드나 악기도 있고, 여러 트랙의 레이어가 하나의 통일된 음률을 만들거나 다채롭게 음악적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사운드를 만들수록 작곡가가 곡에서 의도한 바에 더 가까워지기에, 그만큼 음악적인상상과 고민을 더 이해하게 되기도 합니다.
Outro
약간 이야기가 샜지만, 이번에도 즐겁게 작업했습니다.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감성을 이해할 수 있었고, 새로 시도해 본 여러 아이디어들이 곡과 잘 어우러져서 좋았습니다.
어수선하고 하 수상한 시절입니다. 저도 틈나는 대로 힘과 목소리를 보태고 있어요. 하지만 힘든 시국일수록 사회에 대한 목소리와 함께 내면의 이야기도 잘 들어보시길, 그리고 삶의 작고 소소한 행복도 놓치지 않으시길 응원드립니다. 겨울의 작고 소소한 일상에 이 곡이 함께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