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시대, 인간의 일>과 인공지능 시대의 일과 삶에 대한 고민들
호기심은 지적 결핍이자 인지적 불만족의 한 형태다. 하지만 호기심은 가장 행복한 결핍 이자 불만족이다. 호기심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생겨나는 궁금증이 아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사이에서 설명되지 않는 인지적 빈틈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적 호기심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고, 또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아는 데서 출발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를 밝혀내기 위해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를 확보한 뒤 실험과 이론으로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 학문과 연구의 전통적인 접근 방법이었다. 반면 빅데이터 기술은 데이터에서 발견되는 높은 상관성을 활용하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왜?”를 규명하는 가설과 그에 기초한 이론의 필요성이 빅데이터의 설명력으로 대체되는 상황이다. <와이어드>의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이 이런 주장의 대변자다. 앤더슨은 “데이터 홍수로 과학적 방법은 구식이 됐다”며, ‘순수한 상관성’이라는 통계적 분석이 이론을 대체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론의 종말’이라고까지 말한다.
우리가 기억을 아웃 소싱하게 되면 기억의 주인이 더 이상 우리가 아닐 수 있다. 기억을 아웃 소싱하는 행위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기억하려고 시도하기도 전에 스스로 기억을 포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이러한 자발적인 기억의 포기가 결국 자신이 내려야 하는 판단과 결정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디지털 기술의 구조와 조작법을 그 설계자들에게 전담시키면 기술은 '블랙박스'가 되어 그 작동방식이 드러나지 않게 된다. 사용자는 거대한 힘을 통제하지 못하고 거꾸로 그 힘에 통제당하게 된다는 것이 러시코프의 주장이다. 르네상스 시대 왕들이 무력으로 인쇄술을 독점했다면 디지털 세상에서는 소수의 기술 엘리트가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을 이용해 기술을 통제한다. 알고리즘과 시스템 설계자는 사회로부터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지 않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 일종의 입법가가 되어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질서를 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 우주에서 우리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그 두 가지 선물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불인 동시에 우리를 태우는 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