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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TAE Feb 25. 2021

기술을 통제하는가, 기술과 경쟁하는가

<로봇 시대, 인간의 일>과 인공지능 시대의 일과 삶에 대한 고민들

<로봇 시대, 인간의 일>은 기술에 대한 호기심과 앞으로 내 일, 내 업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 고민하던 중 만난 책이다. 현재 기술 트렌드와 그 영향에 대한 이야기로, 자동 번역, 자율주행차량, 로봇 등 이미 현재 상식선에서 들어본 이야기들은 쉽게 쉽게 읽었지만, 읽을수록 점점 기술이 사고와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기술과 인간사회, 그리고 근본적인 사고의 방식이 바뀔 수도 있겠다는 느낌도 들었다. 컴퓨터를 어릴 때부터 접한 내 세대와 모바일로 자라난 세대가 완전히 다르듯, 미래 세대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도 든다. 지금 고민하는 대상이 되는 기술은 이미 현재 존재하고 확산되는 기술이다. 이 책이 주는 인사이트와 고민을 몇 가지 키워드로 풀어내 본다.



1. 호기심

호기심은 지적 결핍이자 인지적 불만족의 한 형태다. 하지만 호기심은 가장 행복한 결핍 이자 불만족이다. 호기심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생겨나는 궁금증이 아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사이에서 설명되지 않는 인지적 빈틈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적 호기심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고, 또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아는 데서 출발한다.


첫 번째 인사이트는 사람의 탁월함은 호기심을 숙성시켜서 제대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해가는 과정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지적이고 정신적인 작업 위주인 학자나 사상가가 뿐 아니라, 자신의 몸을 도구로 사용하여 육체적 노동을 통해 예술적 경지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장인들의 경우에도 질문은 핵심적 가치를 갖는다고 이야기한다.


호기심은 호기심을 자라나게 만드는 토양이 있을 때 커진다. 호기심은 단지 무지를 해소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는 것과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의 불일치, 또는 내 생각이나 상식과 다른 무언가가 있을 때 왜 그럴까 하며 의문을 품고 그것을 지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일련의 문제 해결 프로세스이다. 사물과 사안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그 궁금증을 양분 삼아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해소하려고 할 때 문제 해결 능력도 커지고, 지식의 습득도 활발해진다. 또한 호기심이 숙성되고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해나가는 것이 탁월함을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하이퍼링크와 멀티태스킹은 호기심을 자라나게 만드는 틈, 스콜레를 없애버렸다.”


요즘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검색을 한다. 모든 것이 즉각 해결되고 답변이 생기는 지금, 특히나 인공지능과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으로 호기심이 자라날 틈이 사라지고 있다. 호기심이 생겨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틈이 없어져 버린다. 창조성을 강조하는 시대에서, 인간이 기계와 인공지능과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 시대에서 호기심이 자라날 토양이 사라진다는 생각은 인간성의 소멸의 시초가 아닐까.



2. 데이터와 사고방식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를 밝혀내기 위해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를 확보한 뒤 실험과 이론으로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 학문과 연구의 전통적인 접근 방법이었다. 반면 빅데이터 기술은 데이터에서 발견되는 높은 상관성을 활용하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왜?”를 규명하는 가설과 그에 기초한 이론의 필요성이 빅데이터의 설명력으로 대체되는 상황이다. <와이어드>의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이 이런 주장의 대변자다. 앤더슨은 “데이터 홍수로 과학적 방법은 구식이 됐다”며, ‘순수한 상관성’이라는 통계적 분석이 이론을 대체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론의 종말’이라고까지 말한다.


빅데이터는 이미 너무 흔한 용어가 되었지만 정작 빅데이터가 어떻게 사고의 과정을 바꿀 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단지 데이터의 모수가 커지니 신뢰성이나 상관관계가 좀 더 의미 있게 나오겠지 정도의 얄팍한 이해가 있었을 뿐.


데이터가 거대해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바로 나온다는 것은 사고의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인간의 사고는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데이터를 활용한다. 혹은 가설과 데이터가 다르면 가설을 수정해가며 데이터에 맞는 인과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데이터가 상관관계를 바로 보여 준다는 것은 인과관계로 설명하려는 사고의 단계를 건너뛴다는 것을, 혹은 인과관계를 이해하지 않아도 상관관계를 그대로 활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데이터와 이해, 상관성과 활용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할 수도 있겠다 싶다. 앞으로는 세대나 기술은, ‘왜 이렇게 되었느냐’라는 질문은 듣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데이터가 이렇게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인과성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수용하는 것이다.


사실 많은 일들은 인과관계나 의도와 관계없이 벌어진다. 인과관계를 꼭 이야기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인과성이라는 것은 인간의 사고체계의 기본적인 논리의 전개인데, 이런 논리의 전개가 없이, 이유가 아닌 결론을 바로 묻는 방식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뭔가 중요한 질문을 빠뜨린 채 답을 쓰는 수험생 같은 느낌이 든다.



3. 기억

우리가 기억을 아웃 소싱하게 되면 기억의 주인이 더 이상 우리가 아닐 수 있다. 기억을 아웃 소싱하는 행위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기억하려고 시도하기도 전에 스스로 기억을 포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이러한 자발적인 기억의 포기가 결국 자신이 내려야 하는 판단과 결정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기억과 기억의 저장의 문제는 내 삶에 중요한 화두이다. 기억력의 한계에 관한 글에서 다루기도 했지만 나는 짧은 기억력 때문에 쓰기 시작했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억을 기계에 의존한다는 것은 바로 나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클라우드에, 스마트폰에, 웹에 기록을 남기고 그것을 참조하는 삶을 이미 살고 있다.


이 책은 기억을 기계에 의존하는 지금, 우리가 직접 두뇌에 저장할 정보는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최후까지 기계가 아닌 스스로의 몸에 지닐 기억은 무엇인지, 기억을 외부에 맡기면 어떤 변화를 겪을 것인지 질문한다.


이 흐름을 바꾸는 것은 분명 불가능하다. 방대한 정보들이 흘러넘치는 시대에서 기억의 천재 푸네스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고 살 수는 없다. 그러나 기억을 외부에 아웃 소싱하는 순간 기억의 주인이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인가 기억하려고 시도하기도 전에 스스로 기억을 포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기억의 포기는 자발적인 판단과 결정의 포기와 같은 것이다. 우리의 사고와 판단은 기억을 통해서 가능한데, 그것을 아웃 소싱하는 것은 기계와 알고리즘에 그 판단과 결정까지도 맡긴다는,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무엇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무엇을 판단하고 결정할 것인지, 그리고 기계의 시대에 인간으로서 내가 존재하는 근본에 대한 것이다.



4. 코드 리터러시 Code Literacy


디지털 기술의 구조와 조작법을 그 설계자들에게 전담시키면 기술은 '블랙박스'가 되어 그 작동방식이 드러나지 않게 된다. 사용자는 거대한 힘을 통제하지 못하고 거꾸로 그 힘에 통제당하게 된다는 것이 러시코프의 주장이다. 르네상스 시대 왕들이 무력으로 인쇄술을 독점했다면 디지털 세상에서는 소수의 기술 엘리트가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을 이용해 기술을 통제한다. 알고리즘과 시스템 설계자는 사회로부터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지 않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 일종의 입법가가 되어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질서를 정하는 역할을 한다.


전에 <명견만리>를 읽고 코딩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코딩되어 있는 것을 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지 굳이 배울 필요까지 있을까 라는 반문이 들 수도 있다. 이 질문에 대해 미국의 미디어 이론가 더글러스 러시코프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프로그래밍은 디지털 사회의 제어판이자 최대의 힘을 작동시키는 지렛대이기 때문이고, 프로그래밍을 배우지 않으면 프로그램 설계자들의 통제에 맡겨진다고 설명한다. “프로그램하라, 그렇지 않으면 프로그램당한다 Program or Be Programmed”라는 무서운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디지털을 이해하지 못하면 마치 블랙박스처럼,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프로그램이, 알고리즘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코드 리터러시. 코드에 대해 최소한 이해하고 있어야 통제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술을 통제하는 사례는 레이 달리오의 <원칙>에서 찾아볼 수 있다. 레이 달리오는 미국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의 창업자이다. 그는 투명한 의사소통과 신뢰성에 가중치를 두는 의사결정을 하라고 권하면서 원칙을 바탕으로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수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짜서 의사 결정하되, 그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는 원칙은 수없는 토론과 가정, 역사적인 사례에 대한 학습을 바탕으로 세운다. 그리고 끊임없이 검증하며 수정해나간다. 그렇게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통제하는 능력이 지금의 레이 달리오를 만든 것은 아닐까 싶다.



결론 : 지식의 반감기와 학습 능력, 그리고 인간성의 핵심은 불완전성


“이 우주에서 우리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그 두 가지 선물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불인 동시에 우리를 태우는 불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지식의 반감기”라는 말이 깊이 와 닿았다. 그동안 대학교 4년의 교육으로 30년을 먹고살았다면, 지금은 대학에서 배운 지식의 유효기간이 너무나 짧아져 버렸다. 계속해서 배우고 배우려는 학습능력을 가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이미 되어버렸다. 그런 사회에서 어떻게 미래를 마주해야 할까.


기술과의 경쟁이 아니라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최소한 그 기술의 흐름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지금이 가장 좋은 시대이지만, 기술과 경쟁하는 노동자에게는 지금이 가장 나쁜 시대라고 한다. 로봇, 인공지능, 인간의 노동과 의미와 가치를 무력화시키는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그것을 활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로봇과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의 약점은 새로운 희망이 된다. 알고리즘에 의해 완벽하게 작동할 수 있는 기계와 달리 실수도 하고 불완전한 작동과 판단을 하기도 하는 인간의 약점은, 바로 그것 때문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최후의 요소이다. 그리고 그 약점과 불완전성이 창조성과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희망의 씨앗이기도 하다. 약점이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나는 부족한 인간이라는 희망으로 좀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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