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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TAE Mar 18. 2021

일을 잘한다는 것과 일의 감각

<일을 잘한다는 것>을  읽고 회사에 묻고 싶은 질문들


회사 내 조직개편이 단행되었다. 현장에 있는 내게 본사의 조직개편은 그다지 영향이 없지만 반가운 것은 신임 본부장의 부임이었다. 유능하고 명철하신 분이니 본부를 좋은 방향으로 잘 이끄실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다. 현장에 오래 계셨던 분이시기에, 현장과 본사의 정책을 잘 조화시켜 이끄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에 현혹되거나 현장에서 수행이 불가능한 정책을 펴지는 않으실 것이라는 기대하게 된다.


<일을 잘한다는 것>이라는 책을 최근 읽었다. 이 책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쓴 야마구치 슈와 경쟁전략 전문가 ‘구스노키 겐’이라는 두 사람이 ‘일을 잘하는 것’이라는 주제로 대담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책의 내용에는 공감하는 대목이 많았다. 조직개편 이전 회사의 운영 방향과 최근 각종 무비판적 일방향의 정책에 대해 답답했던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최근 생각했던 내용을 몇 가지 적어본다.



1. 일의 감각은 ‘구체와 추상의 왕복운동’이다.


감각의 중요성은 일해본 사람이라면 다들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감각을 받아들이는 데 문제점이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감각의 사후성’ 때문이죠. 사후성이란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나중에 회상하며 새롭게 해석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것이 장벽을 높이는 것이죠.


일은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 그리고 그것은 일을 대하는 스킬, 기술과도 관련이 있지만 감각적인 부분도 크다. 이 책에서는 일의 감각을 ‘감각의 사후성’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기술에 대한 감각, 숫자에 대한 감각, 보고의 감각, 의사결정과 판단의 감각은 논리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경험을 통해 다져진 감각에 기인하는 바도 크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본능적으로 ‘아 이건 이렇게 해야 해’ 혹은 ‘이렇게 보면 위험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경험을 통해 날이 벼린 감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감각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감각의 알맹이가 무엇인가에 관해 제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구체와 추상의 왕복운동’입니다.” 구체적인 내용 해결이 동반되는 결론의 추상화, 혹은 논리화라는 의미이다. 이를 건설에 적용해보자면 건설사업의 매출을 만들어내는 물리적인 실재(實在)가 있는 현장에서 구현 가능한 것에 대한 경험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경영일 것이다. 인사나 경영지원 등 현장을 다 알기 쉽지 않은, 혹은 굳이 다 알지 않아도 되는 직군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건설회사의 경영은 현장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구체와 추상의 왕복운동, 그렇게 현장과 경영이 왕복하며 움직이는 것이 건설업의 일의 감각일 것이다.


최근에 실망했던 것은 현장에 기반하지 않은 탁상공론이 너무 많이 현장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에 있다. 물론 우리 회사는 직원들이 기본적으로 잘 순응하는 편이라서 시키면 일단은 어떻게든 한다. 하지만 현장에 기반하지 않은 정책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을 아래의 한 대목으로 대신한다.


인간은 의미를 모르면 동기 부여가 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이 파악해 산출해온 상관성의 결과물에도 인과가 깃들어 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관계에서 드러나지 않으면 인간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동기를 찾아내지 못합니다. 당사자가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 사업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어요.



2. 일은 시간적 깊이와 순서, 실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바로 이 순열과 조합의 차이이다.


고교 수학에서 순열과 조합을 배웠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순열은 계산할 때 경우의 수와 숫자의 순서가 중요하다. 순서가 달라지면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 순열이다. 조합은 순열과 유사하지만 순서는 관계없다. (기억 못 해도 괜찮다.)


일을 잘 만들어가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바로 이 순열과 조합의 차이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고 이 책은 설명한다. 그저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잔뜩 나열하고 모조리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합의 방식이다. 그러나 일은 순서와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한 시간적 깊이와 순서를 고려하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일이 된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 어떤 일도 중간부터 시작할 수는 없다. 선한 의도에서 추진하는 일이라도 일의 순서와 기본을 고려하지 않고는 제대로 만들어 낼 수 없다. 이 순서라는 것은 프로세스이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이나 사업의 스타일 같은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앞뒤 순서 다 잘라먹고 ‘무조건 해’ 라거나 순서를 고려하지 않고 추진하는 일들은 결국 삐그덕 댈 수밖에 없다. 혹은 위에서의 지시에 못 이겨서 하는 시늉을 낼 수는 있겠지만 결국 무산될 수밖에 없다.


책의 내용에 내 생각을 덧붙이자면, 순열과 조합의 차이는 당위와 실현 가능성의 차이로도 볼 수 있다. 어느 본부에서 통하는 이야기니 전체를 다 이렇게 적용해!라는 식의 논리는 사업의 배경과 수익구조, 실행 방식 등을 다 무시한 채 ‘이것이 마음에 드니 다 이대로 해야 해’라는, 당위로 추진하는 일이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을 고민하지 않고 명분과 당위만으로 추진하는 일들은 쉽사리 실패한다. 왜 그러한지, 책의 내용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현재 상황인 X에서 이상적인 상태인 Y에 도달하기까지는 여러 층의 논리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거기서 모두가 ‘그렇지, 좋았어. 우선 이것부터 해보고 최종적으로는 이걸 목표로 하자’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개연성 높은 논리로 이어진 스토리가 바로 뛰어난 전략의 조건이에요. 논리가 없으면 의미가 전달되지 않습니다. 논리가 서지 않으면 설득력이 부족하고, 결국 모두 동조해주지 않기 때문에 실행까지 갈 수가 없죠.


흔히 사용하는 '액션플랜'이라는 단어는 정말 중요하다. 계획이 실제 액션에 이르기까지 개연성이 있는 논리로 이어진 스토리를 통해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움직이게 해야 한다. 탑다운으로 액션을 시작하게 될 수는 있으나 끝맺음 없이 흐지부지되는 과제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저 당위로만 일을 한다면 순열이 아니라 조합이 되고, 전혀 다른 결과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동안 많이 겪어보지 않았는가.



3. 시너지는 보고서에 쓴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런 현상들은 분명 산토리와 빔의 시너지 효과로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하지만 이는 오랜 시간을 들인 경영이 강렬한 의지로 생성해 낸 성과물이지, 결코 두 회사가 합병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온 시너지는 아닙니다.


조직개편은 여러 이유로 단행된다. 대개는 최고 경영자의 의중이 반영되지만 불가피하게 이 조직 저 조직을 합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런 경우 보통 조직 간 시너지를 만들기 위해 단행한다는 명분이 앞선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너지는 쉽사리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 책에서는 산토리 홀딩스가 위스키 브랜드 짐빔을 인수 합병한 이야기를 통해 시너지를 만든 사례를 설명한다.


산토리 홀딩스는 위스키 브랜드 짐빔을 인수 합병했다. 인수합병이 결정되는 시점에 로손에서 산토리 신임 사장으로 취임한 니이나미 사장은 “빔을 매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시너지 같은 건 없습니다. 시너지란 ‘자, 여기 있습니다.’ 하듯이 정해진 곳에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만들러 온 것입니다.”


산토리는 짐빔의 위스키 장인들을 찾아가 그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고, 근본적으로 제조기술과 현장에 기반한 정책을 구상하며 노력했다. 그 결과 위스키에 소다수를 타고 얼음을 넣어 마시는 술인 ‘하이볼’을 새로운 술 문화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하이볼은 단지 어느 순간 유행을 탄 것이 아니라 이미 완성형에 있는 일본의 주류회사가 위스키와의 시너지를 만들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한 결과로 탄생한 것이다.


그러한 시너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사업을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이해시키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사업을 추진하는 사람들, 혹은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는 그저 슬로건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구성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이해하며 함께한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좀 더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와 동기부여가 없이는 만들어낼 수 없다. 앞서 인용한 대로, 당사자가 의욕을 느끼지 않는 사업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어느 부서와 어느 부서가 왜 통합되는지, 당초 의도한 시너지가 제대로 구현되었는지, 혹은 아니라면 왜 그러한지, 사후에 어떻게 반성하고 기록하였는지? 시너지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노력을 했었는지, 등 누군가는 고민해야 한다. 시너지는 그저 보고서에 쓴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4. 당신이 만들고 싶은 회사의 미래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그러면 점점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 이 일을 하는 동안 고객도 이렇게 될 겁니다 → 그래서…’ 하고 결론이 나오죠. 돈을 벌 수 있는 핵심 요인이 나오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유능한 시니어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감각이 뛰어난 경영자’의 사고 회로죠.


건설업은 매우 보수적이다. 사업의 단위와 프로젝트의 규모가 큰 것이 한 이유일 것이고, 내가 속한 회사는 그동안 여러 부실 프로젝트로 많은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기조를 보여왔기도 하다. 그럴수록 경영진의 의지가 중요하다. 단지 회사 내 자리를 지키는 것, 혹은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는 것을 넘어서서 구성원들이 의욕 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사업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야기가 재미있는 사람이란 ‘제 생각에는’ 하고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자신의 생각이 먼저 있고 거기서부터 출발하지요. 인사이드 아웃의 사고방식입니다. 반면에 이야기가 시시한 사람은 ‘지금 이런 예측이 나와 있고, 이런 영향으로 언제쯤까지 이렇게 된다’하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전형적인 아웃사이드 인의 사고방식이죠.


우리 회사의 경영진이라면 이미 자신의 생각을 관리하는 것에 능할 것이다. 자신의 의견보다는 대세를 고려하고 주변의 환경과 맥락을 고려하여 이야기하는 것에 훈련된 분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자신의 의견보다는 신중하게 의견을 아끼는 분들이 대개 임원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그럴수록 경영진의 의견과 생각이 궁금해진다. 신입부터 경영진까지 올라가신 분들이라면, 분명 이전에 경험했던 회사의 모습과 지금의 회사가 다를 것인데. 과연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은지 궁금하다.


경영진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많다.

- 경영진이 만들어가고 싶은 회사의 미래는 어떤 것인가?

- 경영진이 성장해온 환경과 지금의 건설 환경이 얼마나 다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이해하는가?

- 우리 회사는 신입사원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인가? 현재 20대가 건설업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지금의 몇 안 되는 신입사원이 제 몫을 할 때가 되면 건설의 인구구조는 어떻게 변해있을 것인가? 그러한 장기적인 고민을 경영진은 하고 있는가?

- 현재 회사 내 기술인들은 충분한 실력과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회사는 이들을 성장시키기 위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 인력구조가 역피라미드 형이 되어가는 건설에서 숙련된 기술인력들과 젊은 기술인력들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 현장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 혹은 본사가 모든 것을 관여하고 대응하는 것이 맞는지?

- 현장의 보고 체계는 무엇을 위해 있는지? 무언가 사고나 이슈가 발생했을 때 우리 회사는 해결에 가치를 두는지, 보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 노조, 환경, 민원 등 여러 제약조건이 많고 점점 더 심화되어가는 건설환경에서 어떻게 기회와 수익을 만들어낼 것인지?

- 4차 산업, 기술의 발전을 건설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제로 활용할 것인지? 단지 ENG의 과제가 아닌 현장에서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적용과 활용은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 어떤 사람을 어떻게 적용하여 경험과 기회를 만들어낼 것인가?


기능별 단위 부서에게 이 질문을 쪼개서 던진다면 이런저런 답은 나올 것이다. 하지만 경영진의 마음속에 있는 진짜 생각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어떠한 미래를 생각하고 있을까.



마치며 : 하지만 일은 일일 뿐이다.


‘일은 일’이라는 구분도 감각 있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일하고 있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봅니다. 물론 열정을 지니고 일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결국은 일이니까’ 하는, 약간 냉철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때론 일에 몰두하는 것도 필요하고, 삶을 즐기는 것도 동시에 필요하다. 워라밸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구성원들에게 열정만 요구하는 회사는 아니면 좋겠다. 내 주변의 동료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직원들은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일은 일일 뿐이다. 일이 잘 되도록 만들어가야 하지만 일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인생이 일보다 더 크지 않은가. 일도 잘하고, 인생도 신나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삶을 장려하는 회사이면 좋겠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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