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TAE Apr 12. 2021

가사를 쓰고 싶다면 산책을 하세요.

새로운 곡을 습작했다. 그동안 머릿속에 맴돌던 코드를 정리하고 멜로디를 붙였다. 곡의 구성을 고민하다가 이전에 만들었던 테마를 연결하니 자연스럽게 하나의 노래로 연결이 되었다. 뭔가 잠들기 전 들으면서 편안히 쉴 수 있는 듯한 느낌의 잔잔한 노래였다.


곡을 만들고 나니 가사를 붙이고 싶어 졌다. 편안함, 쉼, 혹은 한적함, 이런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 와중에 자꾸 생각나는 건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라는 시였다. 아마 예전 고교시절 배웠던 이 시를 기억하실 것이다. 이 시의 한적하고 너그러운 풍경의 느낌이 좋아서 최근 되뇌었는데, 이 시의 이미지와 풍경이 계속 오버랩됐다. 특히 ‘구름에 달 가듯’이라는 표현이 입에서 맴돌았다. 한동안 머릿속에 여러 이미지와 함께 이 시가 맴돌았다.


<나그네>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그러다 어느 날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해가 저문 저녁 무렵, 산책을 하면서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내 마음도 구름에 달 가듯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힘든 하루가 끝나고 마음이 흘러가는 듯 한 감각, 그리고 산책의 쉼과 편안함, 마치 위로받는 듯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위로하는 마음을 가사에 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을 마칠 때 즈음 가사가 대략의 윤곽을 드러냈다. 방에 들어와서 머릿속에 떠다니는 가사를 붙들어 적고, 앞뒤 구성을 정리해서 가사의 초안을 완성했다. 기분 전환의 효과도 있겠고, 풍경을 보면서 받은 영감이나 인상도 있겠지만 산책 자체의 효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엄격하게 실천했던 매일의 일과 중 반드시 산책을 했다고 한다. <지적 생활의 방법>에서 그의 산책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오후 6시 이후 약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는데, 처음에는 철학자의 길을 산책하다가 아무 데고 앉아 사색을 하고 때로는 중요한 착상을 수첩에 적기도 하며, 산책은 항상 혼자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생각을 많이 하는 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산책 혹은 운동이 아닌가 싶다. 


산책을 하면 뇌 활동이 활발해지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신선한 공기, 약간 빠른듯한 심장 박동의 움직임은 굳어있는 뇌에 생생하게 산소를 공급해준다. <혼자 하는 공부의 정석>에서도 저자는 공부하기 전에 운동을 하라고 권유한다. 공부도 육체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운동을 하면 뇌에 산소가 많이 공급되어 최고의 상태가 되고, 뇌의 시냅스에서 신경 전달 물질의 양이 늘어나고 뉴런이 자란다. 그 상태에서 공부든 창의적인 작업이든 최대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도 정조,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오쩌둥 등 운동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천재들의 사례를 통해서도 설명한다. 분명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그 이후로 산책을 좀 더 열심히 하게 됐다. 몸도 마음도 새로운 감각을 느낄 수 있고, 틈틈이 이렇게 창의적인 측면에서의 효용도 있는 것 같다. 그때처럼 번뜩이는 순간이 매번 찾아오진 않지만 괜찮다. 필요하면 또 마주할 수 있겠지. 


오늘 저녁에도 산책을 할 생각이다.

구름에 달 가듯, 흘러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외장공사와 스트링 Mock-up의 이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