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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TAE Apr 26. 2021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조지 오웰 산문선 中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신기한 일이다. 살면서 비슷한 시기에 어떤 것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어떤 책이나 아티스트, 노래일 수도 있고, 혹은 뭔가를 하기 위한 계기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우연이거나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 수도 있고, 혹은 기도응답일 수도 있겠다. 언젠가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지적 생활의 방법>이라는 책이 그랬고, 어느 해 계획에도 없던 성가대를 시작하게 되었던 계기도 그랬다. 얼마 전부터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한 글을 쓰려고 주제를 잡고서는 한참을 미적거렸는데 최근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내 삶에 여러 번 등장했다. 구독하는 브런치의 작가님의 글에서도, 지금 쓰기 시작한 다른 책의 지면에도 등장한다. 덕분에 날카롭고 생각을 자극하는 좋은 에세이를 만날 수 있었다.


조지 오웰은 글을 쓰는 모티브를 네 가지로 설명한다.

1. 순전한 자기만족 : 똑똑해 보이거나, 사람들에게 회자되거나, 죽은 뒤에도 기억되거나, 어린 시절의 무시에 대한 복수심 등. 끝까지 자기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는 부류.

2. 미학적 열정 : 외부 세계의 미에 대한 인식, 올바르게 배열된 단어의 아름다움,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에 미치는 영향, 좋은 글의 리듬에서 느끼는 즐거움 등.

3. 역사적 충동 :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짜 사실을 찾아서 나중을 위해 저장하려는 욕구.

4. 정치적 목적 : 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추진하고, 어떤 사회를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욕구.


미얀마에서 영국 식민지의 경찰로 일했고 스페인의 내전을 겪은 조지 오웰은 자신에게는 글의 정치적 목적이 가장 크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글의 날카로운 아름다움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그 믿음을 관철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이 에세이을 읽으면서 내가 글을 쓰는 목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글쓰기의 목적에 앞서,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는 홈레코딩이었다. 홈레코딩으로 음반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그 과정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설과 홈레코딩이라는 주제가 흔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쓰는 과정에서 재미난 이야기들을 풀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예정대로 음반을 만들어 출시했고, 브런치의 글 덕분에 조금이나마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릴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홈레코딩으로 음반 발매를 하고 나서는 고민에 빠졌었다. 여전히 홈레코딩을 하며 음악을 만들고 있고 새로운 곡도 구상하고 있지만, 앨범 발매라는 눈앞의 목표를 달성하니 글쓰기의 목적이 상실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글쓰기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글을 쓰며 알게 된 것이지만 글쓰기 자체가 꽤나 재밌다. 그리고 계속 쓰는 글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좋아서 썼던 글 덕분에 성덕이 되었고, 더 나아가 아티스트가 제작하는 콘텐츠의 일부를 만드는 경험도 해볼 수 있었다. 새로운 글에 대한 아이디어나 주제도 생기고, 글쓰기 자체의 힘과 즐거움을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좀 더 돌아보면 오랜 시간 내 글의 목적은 항상 나의 내면을 향해있었다. 드러내진 않았지만 오랫동안 내 삶에 일기라는 형태로 함께 했다. 삶에서 글쓰기는 나를 이해하고 기록하고, 되돌아보는 도구였다. 힘든 순간, 부끄러운 순간, 혹은 즐겁거나 새로운 경험의 순간, 그리고 깨달음과 각성의 순간을 일기로 기록을 했다. 짧은 기억력을 보완하기 위해서 경험과 각성, 깨달음과 반성을 가능한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해왔다.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꽤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언제 화가 나는지, 언제 힘들어하는지, 어떨 때 기쁘고 무력한 지, 혹은 지금 드는 이 감정이나 생각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 조금은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 인생에 중요한 순간과 아닌 순간을 조금은 더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순간에 좀 더 의연하게 대처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그런 깨달음의 결과로 나는 나 자신을 좀 더 아낄 수 있게 되었다. 힘든 순간을 견디어내면서 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는 타인을 돌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나를 아끼지 않는다면 타인에 대한 공감과 위로는 허상인 것이라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다. 고통스러운 순간, 나의 불완전함과 온갖 나약함을 마주하면서도 내 내면을 이해하고 돌보고 쓰다듬어줄 수 있었던 것도 일기 덕분이었다. 글쓰기는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는 도구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내 글쓰기의 가장 큰 목적이 아니었나 싶다.


글쓰기를 통해 타인에 대해 좀 더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동질감이 느껴지는 때에는 더 깊이 이해하며 공감할 수 있었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아픔과 괴로움 앞에서는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 법을 또한 배웠다. 그렇게 글을 쓰면서 내 이해의 폭과 한계를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


글쓰기는 성장을 위한 발판이기도 하다. 건설업계에서는 글을 쓰는 사람이 많진 않은 것 같다. 설계를 하는 건축가는 창작 혹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많아 인문학을 이해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어 보이지만, 시공과 제조에 가까운 건설업계는 그보다는 좀 더 투박하고 거친 업종이어서 글 쓰는 사람을 잘 만나질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계속 글을 써가는 것은 내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글을 쓰면서 사고와 생각이 더 정교해지고, 내 생각과 고민이 머무는 지점을 더 잘 알게 된다. 글을 쓸수록 생각이 자유로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동안은 주어진 한계 내에서 사고했다면 지금은 글을 쓰면서 생각의 경계를 더 넓혀가고 있다. 조금씩 사고의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느낌도 든다.


굳이 조지 오웰의 분류에 구분하고 싶진 않지만,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장을 원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돌보고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것이 주된 동기가 아닐까 싶다. 내게 역사에 남기고 싶거나 추구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 같은 건 없다. 한 몸 건사하기도 버거운 세상인데, 귀찮은데 휘말리는 건 딱 질색이다. 그저 지금처럼 나 스스로 즐겁게 글을 쓰면서 나를 더 아끼고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글쓰기의 목적은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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