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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TAE May 10. 2021

[글쓰기에 관한 책 리뷰-1] 책 한번 써 봅시다.

몸으로 익히는 '기예로서의 글쓰기'를 배워봅시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SNS가 대중화되면서 더 많은 텍스트를 소비하는 세상이 되었다. 인스타나 유튜브처럼 이미지와 영상을 통한 소통이 강세를 보인다고 해도 텍스트의 소비가 과거에 비해 월등하게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많은 정보를 단시간에 소화해야 하기에 정보의 체계적인 정리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댓글, 트위터 등 짧은 단문으로 감정과 생각, 혹은 비판과 불평을 쉽게 내뱉을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텍스트가 흘러 다니지만 글이라고 불릴 만한 텍스트는 여전히 가치가 있고 희소성이 있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소속회사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불만을 자유롭게 토로할 수 있는 블라인드에서도 단순한 불평과 대비되는 좋은 글들이 가끔씩 있다. 그저 감정의 토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논리 정연하게 비판하는 주장과 근거를 논증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소속 회사에 대해서도 더 가치가 있고 의미 있는 영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큰 무기가 된다. 일상을 정리하는 블로그부터 주제를 가지고 쓰는 체계적인 글들까지, 정제된 텍스트를 생산해 낼 수 있는 능력은 개인의 경쟁력 차원을 넘어서, 삶을 기록하며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고 그를 통해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하는 좋은 도구로서도 의미가 있다.


글을 쓰는 것과 책을 쓰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인 것 같다. 글을 쓰는 것은 짧게는 1천 자, 길게는 4-5천 자의 분량으로 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지만, 책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는 긴 이야기를 쓸 각오와 노력, 지식이 필요하다.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내게 그런 각오와 지식이 있는지, 혹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능한지 의문이 들 던 즈음, 장강명의 <책 한번 써 봅시다>를 만났다. 많은 인사이트 중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책을 쓰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한 주제로 12만 자 글쓰기다.


산문작가를 꿈꾸는 분들께 내가 제안하는 목표는 ‘한 주제로 200자 원고지 600매 쓰기’다. 200자 원고지 600매는 얇은 단행본 한 권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분량이다.


가장 처음 와 닿았던 것은 글의 분량이었다. 책을 쓰려면 통상 12만 자 정도 분량의 글을 써야 한다. 작가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쉽게 될 수도 있다. 자비 출판의 방법도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적을 대필작가를 쓰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비용을 들이면 이렇게 저렇게 책을 만들어준다는 서비스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은 ‘작가’가 아니라 ‘저자’를 목표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이렇게 저렇게 쉽게 작가가 되는 것보다 직접 글을 쓰며 고만하는 ‘저자’의 가치가 더 크다고 이야기한다. 저자가 되기 위해 글을 쓰고 고민하는 과정과 한 주제를 끝까지 이끌어가려는 노력이 의미 있는 것이라며 저자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을 권한다.


예전에 독서를 하면서 글의 분량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종이책은 페이지 수로 가늠할 수 있지만 전자책은 페이지수가 폰트의 크기와 줄 간격 등으로 쉽게 달라져서, 글자 수를 기준으로 읽는 속도와 예상 완독 기간을 생각해봤다. 통상 250페이지 책 한 권이 12-14만 자 정도 분량이었다.


글자 수 분량을 알고 있는 덕분에 브런치를 시작할 때 글자 수에 대한 목표를 잡았다. 글의 수준에 대한 목표는 세우기 어렵지만 분량은 정량적이어서 목표 관리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홈레코딩을 주제로 12만 자 목표를 세웠었다. 쓰다 보니 주제가 가지치기를 해서 책 이야기도, 여러 다른 이야기도 쓰게 되었다. 그렇게 지난 3월 경 14만 자를 채웠다. 글의 분량만 생각하면 200자 원고지 600매는 해볼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오히려 하나의 주제를 끝까지 끌어가는 것이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되려는 사람은 자신이 말하려는 주제를 종합적으로 살피게 되며, 자기가 던지려는 메시지에 대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비판 할 지를 예상하고, 그에 대한 재반박을 준비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처음의 주장이나 자기 자신 역시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런 성장과 변화를 의미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주제와 방향, 소재를 고민하며 자조하고 주눅 드는 시간마저 저자가 되기 위한 여정이라니, 지금의 고민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2. 글쓰기는 학문이 아니라 ‘기예’다.


다행인 건 글쓰기도 연습에 따라 실력이 늘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기고한 <월간 윤종신> 당신의 노래 칼럼이 게시되고 나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글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잘 쓰려고 한 건 아니었고 그저 계속 쓰던 대로 쓰는 것뿐이지만, 그동안 쌓인 글 덕분에 조금은 글이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


장강명 작가는 ‘글쓰기는 학문이 아니라 기예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기예는 익힐 수 있는 기술이라는 의미이다. 자전거를 타고 악기를 배우듯이, 기예는 익힐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예를 익히는 데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초반에 우스꽝스럽게 휘청거리고 자빠지는 일을 거듭해야 한다. 기예의 두 번째 특징은 남이 하는 설명으로는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고 몸으로 넘어야 하는 지점이 있다. 깨침과 숙달 사이에 시간이 걸린다는 게 기예의 세 번째 특징이다.


처음 글을 브런치에 올릴 때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이런 글을 올리면 누가 봐줄까. 재미없다고 외면하면 어떡하나. 과연 반응은 있을까. 엔지니어 출신의, 딱딱한 글이라고 보진 않을지. 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글을 올렸고, 용기가 점차 무모함이 되어 더 이상 두려움 없이 글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깨달은 바 중 하나는, 글은 독자를 생각하며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지만 읽어주는 것은 브런치에서 수고스럽게 링크를 눌러 내 글을 열어주는 소중한 독자들이다. 내가 깨닫고 경험한 바를 어깨에 힘을 주며 이야기하려 하면 독자들이 대번 알아차린다. 글이 어려운 것은 주제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내 성의가 부족하다는 것을, 친구의 피드백을 통해 깨달았다. 깨침과 숙달 사이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 기예의 특징이라는 문장처럼, 여전히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글을 쓰는 이에게는 꼭 필요한 관점이다.


에세이 원고를 검토할 때 어떤 점을 주로 살피는 지를 물었다. 위는 서로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는 팀장급 편집자 네 명이 들려준 답이다. 언뜻 제각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밑바닥에는 큰 공통점이 하나 있다. ‘독자의 시선’이다. 편집자들은 ‘이 원고를 요약해서 소개문을 썼을 때 독자가 그 내용을 흥미롭게 여기고 전문을 읽어보고 싶어 할까?’를 따진다.


 내 글을 읽으시는 독자들은 과연 끝까지 읽고 싶은 마음이실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3. 글을 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질은 ‘삶을 사랑하는 태도’


에세이를 잘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질이 뭘까. 나는 ‘삶을 사랑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사랑하면 그 대상을 유심히 헤아리게 된다. 그에 대해 할 말이 많아진다. 좋은 에세이에는 그렇게 삶에 대한 남다른 관찰과 애정이 담긴다.


삶을 사랑하는 태도라는 것은 글쓰기가 삶과 주제에 대한 사랑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대상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에세이건, 혹은 어떤 것에 대한 비판일지라도 그 대상에 대한 마음이 없다면 굳이 힘을 들여서 글 쓸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내 글의 주제는 그동안 홈레코딩, 건설과 책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기도 하고,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의 원천이기도 하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글의 주제가 ‘글쓰기’로 확장된다는 것은 글쓰기에 대한 애정이 더 생긴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순간 내 정체성에 글쓰기가 자리 잡고 있는 듯도 하니.


글을 쓰면 더 사랑하고 이해하게 된다. 일기는 내게 나를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한 도구였다. 일기를 쓴 덕분에 나는 내 모습을 좀 더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기애가 충만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좀 더 나를 아낄 수 있게 된 것 같다.


우리는 언어로 사고를 한다. 언어로 사고를 한다는 것은 명확한 문장과 개념이 잡힐 때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해되지 않는 현상도 지식으로 혹 이론으로 이해하면 더 깊이 사고할 수 있는 것처럼, 내 삶도, 타인의 마음도, 이해되지 않는 우연도 단어와 문장, 문단으로 사고하면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을 사랑하는 태도로 글을 시작하지만 글을 쓰면 더 깊이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마치며 : 쓰고 싶은 사람은 써야 한다.


최근 2-3년간 내게 중요한 목표는 나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글일 수도 있고 음악일 수도 있겠다. 일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삶의 목표와 의미는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 장강명 작가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공허감의 원인을 억눌려있는 창작에 대한 갈증이라고 진단한다.


창작의 욕망을 억지로 누르면 어떻게 될까. 나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공허감이 바로 그 결과라고 생각한다. 요즘 한국 사회는 어느 연령대, 어느 세대를 봐도 ‘내가 여기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하는 살마이 많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고 객관적이 조건이 나쁘지 않은데도 공허함을 토로하는 젊은이도 있고, 중년에 이르러 허무함을 못 견디겠다며 뒤늦게 일탈하는 이도 있다. 그런 정체성 위기는 자기 인생의 의미, 자신이 만들어내는 일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할 때 온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지금 내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감각이 필요하다.


쓰고 싶은 사람은 써야 한다. 어느 누구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감각, 그것을 느낄 수 있다면 되는 것이다. 스티븐 킹도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반드시 해낼 것이라며 마술과 같은 글쓰기의 생명수를 마음껏 마시라고 권유했다. 장강명 작가도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마음껏 발산하라고 촉구한다.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당신이 하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작품을 몇 편 발표하기 전에는 당신 자신을 포함해서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오랜 욕망을 마주하고 풀어내면 분명히 통쾌할 거다. 가끔은 고생스럽기도 하겠지만 그 고생에는 의미가 있다.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포기하는 것을 포기하자. 의미를, 실존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중심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눈앞에 있다.


조금 더 자신감을 얻어 본다. 작가의 격려에 힘입어 조금 더 꾸준히 글쓰기를 하고 싶다.



못다 한 이야기 1.

브런치는 연작 장편 소설과 유사하기도 하지만 짧은 칼럼 같은 성격도 있다. 칼럼을 잘 쓰는 법이라는 챕터의 내용을 추천한다. 칼럼을 잘 쓰기 위한 핵심은 “짧으니 멋 부리지 마라”는 것이다. 칼럼은 보통 800-2600자 안팎으로 짧기도 하고, 에세이와 사설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글로, 짧기 때문에 주제가 한정적이고 치밀한 논리를 방대하게 전개하기도 어렵다. 이럴 때는 “이런 거 아냐?”라고 생각을 툭 던지는 자리라고 여겨야 한다고 설명한다. ‘진부한 정답’보다 ‘턱도 없지만 참신한 딴죽 걸기’가 더 환영받는 공간이라고 말이다.  


못다 한 이야기 2.

글쓰기를 하다 보면 손으로 쓰는 글과 키보드로 쓰는 글의 차이에 대해 느끼게 된다. 김훈 작가의 손으로 눌러쓴 정갈한 문장의 날서림도 좋지만, 아무래도 내 글쓰기는 장강명 작가처럼 키보드의 속도감이 더 편안한 것 같다. 생각을 그대로 표현한 듯 한 문단을 마지막으로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나는 그런 품격과 정갈함보다는 워드프로세서의 자유와 속도감이 더 좋다. 글이 막히면 오래 고민하지 않고 아무 문장이나 적어본 뒤 지우고 다시 다른 문장을 시도하면서 언덕을 넘는다. 문단 배치를 바꿔가며 이야기의 호흡과 효과를 전과 비교하고 개선한다. 플롯에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되고, 시인이라기보다는 건축가와 같은 관점으로 글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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