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글 속에서 스쳐가듯 이야기한 적이 있듯이 독서와 음악은 내 삶에서 가장 큰 줄기를 형성하는 흐름인데, 이 두 흐름이 서로 교차하듯 지나간다. 반비례한다고 해야 하나. 매일매일 책을 읽고 생각하시는 대단한 분들도 있지만 난 그렇게는 안되더라. 책을 읽고 싶은 시기가 몰려서 있고, 어느 순간 책보다는 음악이 들리는 때가 분명 있다.
항상 궁금했다. 어떻게 이 주기를 측정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이 흐름을 의도적으로 증폭 혹은 다운시킬 수도 있을까. 어느 주기인지 감각적으로 말고 기술적으로 알 수는 없을까.
그래서 한 번 분석해봤다.
나의 독서 Cycle을.
1. 독서 주기 분석
책 읽기에 관련된 오래된 습관은 핸드폰 메모장에 읽은 책의 목록과 완독한 날짜를 적는 것이다. 성취의 의미도 있고, 목록이 있으면 책에 관한 대화나 추천이 필요한 때에 빠르게 기억을 되살릴 수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적어둔 도서 목록과 완독 한 날짜를 보고 있노라니 이것으로 주기를 파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독서 실적 데이터를 기준으로 간단한 방법론을 구상했다. 올해 7/16 일까지 읽은 책은 총 40권이다. 1/1일부터 7/16일까지 책을 읽은 실적이 있는 날을 1로, 없는 날을 0으로 보고 엑셀에 표를 만들어 그래프를 그려봤다.
여기서 추가로 고려한 것은, 책을 읽을 때 보통 2-3일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책을 하루 만에 다 읽는 경우는 드물다. 기록이 없는 날이 한동안 지속되다가 다시 독서 실적이 있다면 그 전 2-3일 정도는 독서에 투입한 시간으로 보고 주기를 보정해주어야 한다. 평균 2일로 잡고 데이터 보정을 해본다.
그렇게 보정해서 책 완독 일자 실적과 일부 보정을 감안한 독서 주기의 흐름을 그려봤다. 그래프의 파란색은 완독 일자, 빨강색은 보정을 감안한 독서 주기의 흐름이다.
독서 실적과 독서 주기 그래프
엑셀로 분석해보면 한 달 30.5일 기준으로 독서 주기는 14일, 비주기는 16.5일이다. 독서 주기가 한 달의 절반에 약간 못 미친다. 인터벌로 보면 독서 주기가 가장 긴 경우는 24일, 짧은 경우는 3-6일 정도이다.
주기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 같다. 자연스러운 신체와 시간의 리듬이 가장 큰 것 같고, 필요에 의해 혹은 업무에 의해 책을 읽는 흐름이 단절되거나 장려되는 경우도 있겠다. 책이 얇거나 쉽게 읽히는 경우 주기가 좀 더 연장되는 것 같기도 하다. 독서에 쓰는 에너지도 유한한 것인지라, 어렵거나 두꺼운 책을 읽으면 그다음 책을 읽기 전에 고갈되는 느낌도 있다.
2. 독서 주기와 브런치 글쓰기와의 상관관계
내친김에 브런치의 글쓰기와의 상관관계도 있을까 궁금하여 추가 데이터를 만들어봤다.
작년 가을 브런치를 시작한 후 올 초부터는 한동안 주 2회 글을 올렸다. 최근에 여러 가지로 일이 많아지면서 주 1회로 올리고 있다. 브런치에는 글을 포스팅한 날이 표기되니 데이터를 확인하기는 수월했다.
독서 주기와 브런치 글쓰기 실적 그래프
그래프를 그려 보니 글을 올리는 흐름은 거의 일정한 편이다. 매주 규칙적으로 올리는 것은 사실 미리 쟁여놓은 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글 쓰는 시점과 글을 포스팅한 시점과는 갭이 있기도 하고, 그래서 독서 주기와 비주기의 영향이 직접적이진 않아 보인다.
다만 비주기일 때의 영향이 약간 있긴 한 것 같다. 비주기일 때 글을 올리는 흐름이 끊기거나 포스팅이 줄어든 경우가 간혹 보인다. 글 재고가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점점 글의 재고가 줄어들면서 독서 주기, 즉 지적 영역이 활성화되는 기간과 아닌 기간의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독서 주기일 때는 책에 관한 내용과 논리적인 글을 쓰고, 비주기일 때는 음악에 관한 글 혹은 감성적인 내용을 쓰는 등 주제의 차이도 있는 것 같다. 쓰는 것 자체는 즐거운데, 독서 주기가 아닐 때 뭔가 지적 능력과 분석을 필요로 하는 글을 쓰기는 쉽지 않다고 느낀다. 비주기일 때는 조금 더 가벼운 주제, 혹은 음악 작업을 하는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3. 시사점
3-1. 주기가 있는 것은 장점일 수도, 한계일 수도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리듬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리듬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리듬의 Up & Down에 따른 에너지와 집중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나라는 사람이 가진 자연스러운 속성일 것이다. 리듬이 업무 혹은 필요한 작업과 일치할 때는 시너지가 나기도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억지로 버텨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장점일 수도 있겠고, 한계일 수도 있겠다. 어쩔 수 없지 않나. 나라는 사람이 그런 것을. 그저 인정하고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3-2. 흐름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 흐름에 올라타자.
독서 주기가 최고조일 때는 보고서도 잘 써진다. 논리력도 날카로워지고 지적 활동이 활발해진다. 비주기일 때는 한없이 감성적이게 된다. 음악 작업을 할 때는 기왕이면 음악 주기와 일치할 때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가능하면 흐름에 맞춰가며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흐름을 잘 알고 올라타서 일하면 더 좋은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3-3. 주기에 있지 않더라도 Output을 내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생이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비주기일 때도 글을 써야 하고, 독서 주기일 때도 음악 작업을 하는 상황도 생긴다. 삶에도 관성이 있어서 꾸준히 음악을 하고 책을 읽다 보면 주기에 관계없이 어느 정도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기본 바탕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그래프에서 보면 독서 주기가 아닌 것 같은데 책을 읽은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브런치 글도 열심히 쟁여놓은 덕에 꾸준한 포스팅의 흐름을 만들기도 했다. 꼭 주기를 타고 있지 않더라도,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없더라도, 삶에서 필요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불가능한 건 아닌 것 같다.
마치며
흐름이 있어서 인생은 재미있는 것 같다. 흐름대로 되는 것도, 흐름대로 되지 않더라도 거슬러가며 헤쳐 나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지금은 다시 독서 주기가 온 것 같다.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고 글도 쓰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