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새로운 현장에 발령받았다. 이전 현장의 준공을 무사히 마치고 나서, 오랫동안 자리가 비워져 있던 새 프로젝트로 배치받아 근무를 시작했다. 익숙하고 낯선 환경,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업무, 달라진 여건 등 새 현장의 업무를 파악하고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경력과 경험이 있으니 업무는 파악하는 대로 진행하면 되지만, 달라진 환경에서 내가 더 집중해야 할 삶의 우선순위도 조정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고 음악 하는 시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삶도, 업무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낼 필요성을 절감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야 한다. 성공적인 작품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의 습관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 레오 톨스토이
메이슨 커리의 이 책은 예전에 읽었던 <예술하는 습관>보다 먼저 쓰인 책이다. <예술하는 습관>이 여성 예술가들의 삶과 습관을 담았다면 이 책은 남성 예술가들을 포함하여 더 많은, 다양한 예술가들의 삶과 습관, 여러 모습들이 담겨 있다. 정말 다양한 작가와 음악가, 학자와 무용가의 삶이 그려진다. 다양한 개성처럼 삶의 모습도 비슷하지 않고 각기 개성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앤서니 트롤럽이라는 작가는 중앙 우체국 공무원으로 33년을 일하고 은퇴하면서 글을 썼다. 그는 매일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5시 반에 일어났고, 3시간 동안 집중해서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훈련을 꾸준히 했다고 한다. 그렇게 글을 쓰고 집중하는 시간을 확보하려는 노력 덕분에 47편의 장편소설과 16권의 다양한 책을 남겼다.
건축가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르 꼬르뷔지에는 아침시간을 예술적 사색으로 보낸 덕분에 건축가로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오전에는 그림과 글쓰기에 집중했고, 오후에는 사무실에 출근해 건축설계를 했다. 엄격하게 오전 시간을 준수했지만, 오후에 설계를 할 때는 때로 시간의 흐름을 잊고 일에 몰두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엄격한 오전과 종잡을 수 없는 오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어떤 작가는 수도사처럼 일정한 규칙과 시간표에 따라 글을 쓰는가 하면, 어떤 음악가는 밤과 향락을 취하면서 무질서한 듯한 일상을 보내기도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생업을 가지고 평생 일하면 살아왔던 사람도 있고, 부유한 배경으로 여유롭게 생업은 신경 쓰지 않으면서 연구와 작업에 몰두했던 이들도 있다. 약물이나 커피, 담배 등 중독적인 무언가에 의지해서 예술을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침대에서 뒹구는 시간이나 게으른 순간을 즐기며 작업하는 이도 있었다.
예술가들에 따라 너무나 다양한 습관과 다른 일상을 읽다 보니, 결국 나 또한 나 자신의 일상에 맞는 습관과 루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내 시간을 온전히 내가 쓸 수 있었다면 지금은 새로운 환경에 맞는 습관과 행동양식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했다.
일상의 루틴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찾아낸 방법이 버스 출퇴근이었다. 집에서 현장까지 차로는 20분 정도 걸린다. 외곽지역이어서 교통편이 있을까 싶었는데, 찾아보니 집 앞에서 바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버스로는 약 40분 정도 소요되어 새벽에 좀 더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은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때론 글을 쓰는 활동이 자유롭다. 다행히 나는 멀미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학창 시절을 꼬박 버스를 타고 다녔고, 버스에서 읽고 듣고 자는 모든 활동을 전혀 부담 없이 할 수 있었다. 일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서 생각과 손이 자유로운 시간을 만들어냈다. 새벽에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은 사람도 적어 붐비지 않는다. 이 시간에는 책을 읽는 대로, 음악을 듣는 대로 흡수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때로는 글을 쓰기도 하고 글을 구상하기도 한다. (지금 이 글도 버스 뒷자리에서 쓰는 중이다.)
무엇보다 제한된 시간임을 알고 있기에 이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하다. 이 책의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든 글을 쓰고 곡을 쓰고 무용을 연구하며 예술에 삶을 바치기 위해 시간을 만들어 내는 노력을 해왔다. 마음이, 영혼이 원하는 바를 좇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리라. 조금 먼저 일어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더라도 이 시간을 누리는 기쁨과 보람을 원하는 나를 만난다. 이렇게 글과 음악을 사랑하는 내가 낯설고 어색하면서도 기특하다.
사무엘 베케트는 겨울 폭풍이 휘몰아치던 어느 날 밤 방파제 끄트머리에서 매서운 바람에 용솟음치는 파도를 바라보며, 자신의 삶에서 억누르려 애쓰던 어둠이 실제로는 창작을 위한 영감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고, ‘그 어두운 면을 인정하고 그 개성을 글로 표현해내리라’고 다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