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허벅다리 안 쪽에 크고 길쭉한 흉터가 있었다. 감나무에서 떨어져 생긴 흉터라 했는데 어릴 적 나는 그 상처가 어쩐지 멋있어 보여 괜스레 흘긋거리며 쳐다보고는 했다. 어른의 징표 같아 보였달까.
그런 아버지의, 상처에 관한 한결같은 철학이 있다면 '이런 건 뜨거운 물로 지지면 금방 나아'라는 문장일 것이다. 집을 수리하다가 손가락이 찢어져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피부가 쓸려온 날에도 항상 저 말을 주문처럼 웅얼거리며 별 대수롭지 않은 듯 툭툭 털고서 목욕탕으로 향하셨다. 뭐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진심으로 그렇게 믿으셨을 리도 없는 데다 오히려 상처가 물에 닿으면 위생에 안 좋을 뿐이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신체 능력 덕에 목욕탕을 다녀오시면 정말로 상처가 아물어 있는 것을 보며, 어릴 적에는 '정말로 뜨거운 물로 상처를 지지면 아무는구나...'라고 믿은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이터에서 생긴 작은 생채기를 보시고 아버지는 "이런 건 뜨거운 물로 지지면 금방 나아"라는 주문을 어김없이 웅얼거리며 자식을 목욕탕으로 끌고 가 뜨거운 물에 던져 넣으셨다. 그러고서 "으갸아아아ㅏㅇㄱ" 하며 고통에 울부짖는 나를 보고 피식 웃으며 "엄살은.."이라고 말한 뒤 이내 무심한 표정으로 스르르 사라지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상처가 뜨거운 물에 닿으면 단지 아플 뿐이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놈의 '뜨거운 물로 지지면'...
아버지는 아픔을 항상 묵묵히 참는 편이었다. 피를 흘리는 상처가 생겨도 마치 '뭐야 빨간 물감이 튀었잖아?'와 같은 표정을 하고서 귀찮다는 듯이 쓱쓱 닦아냈다.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성부터 감성까지 아버지와 닮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투병 중 매번 토하고 괴로워하고 뒹굴면서도 부모님과 친구들만 보면 "뭐... 이까짓 껏... 괜찮아.."라고 덤덤한 척할 때마다 내가 그의 아들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서 피식거리곤 했다.
목욕탕의 온탕에 발바닥부터 올라오는 고통스러운 뜨거움과 그 고통이 주는 약간의 쾌락을 즐기며 서서히 들어갈 때면 나는 가끔 아버지를 추억하고는 한다.
어릴때는 저 용암같이 뜨거운 물에 들어가서도 평온한 표정으로 상처를 '지지는' 아버지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그만큼 뜨거운 욕조에 몸을 지지며 아버지를 생각하는 나이가 될 만큼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만약 그 시절의 아버지를 온탕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묻고 싶다. "아버지. 상처를 물에 지지라는 말은 이제 알 것도 같은데 마음에 입은 상처들은 아무리 물로 지져도 아물지가 않아요"라고.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예전처럼 허벅다리 안쪽의 커다란 상처를 슥슥 문지르고서 "엄살은.."이라며 피식 웃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나도 "그렇죠? 엄살이 심하죠?" 라며 같이 피식거릴 수 있을 텐데.
(16.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