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아침 산책을 다녀오니 핸드폰이 다수의 카톡 메시지로 북적거렸다. 인스타그램을 해킹당한 것 같다는 연락들.
황급히 인스타그램을 들어가 보니 프로필 사진이 이쁜 누님의 사진으로 교체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사모님이나 사장님의 애인 알바를 모집한다'는 광고 메시지로 계정이 도용당해있었다. '야릇하고 은밀한 공개 모집' 메시지를 확인하는 와중에도, 팔로워들은 쉴 틈 없이 몰려온다.
연예인의 삶이 궁금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런 방식으로 간접 경험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디렉트 메시지(귓속말 정도 되려나)도 몇 통 받았다. 주로 외국인 남성의 '팔로우해줘서 고맙다.' 혹은 '당신은 아름답다. 만나고 싶다.' 따위의 애정 어린 글들이었다. 살면서 이런 부드러운 호의는 드물었기에 살짝 두근거렸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청소를 시작했다.
디렉트 메시지를 삭제하고, 비밀번호를 바꾸고, 프로필 사진과 글을 원상태로 바꿨다. 낚여 들어온 900명가량의 온라인 친구들을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언팔로우를 누른 뒤에서야 한숨을 돌리고 긴급 연락을 준 카카오톡 친구들에게 감사의 답변을 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 계정으로 올라온 일당 사십만 원짜리 꿀알바 광고 글에 '드디어 이 자식이 본성을 드러냈구나..'가 아닌, 'SNS를 해킹당했구나..'라고 생각해 줬다는 것이. 게다가 나 같으면 '오.. 당해버렸구먼...'이라고 넘어갔을 일을 급하게 알려준 마음에 살짝 뭉클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어쩐지 내 주변에는 온통 고마운 사람들뿐이다.
대체로 적을 두고 살아오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딱히 살갑게 살아온 인생도 아니었는데 용케도 이렇게 지랄 맞고, 예민한 데다 게으르기까지 한 인간과 인연을 끊지 않고 연락해준다는 사실이 고맙다.
나 같은 성격의 친구를 내가 만났다면 진작 얼굴에 침을 뱉고 "네가 죽은 뒤에 너의 무덤에 다시 한번 침을 뱉어주마"라고 말했음직한데.
항상 감사하다고 생각하지만, 연락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아프기도 했고 내 마음을 당연히 알아주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럴 리 없는데..
인간의 마음이란 항상 불안하고 뒤죽박죽이라 자신조차 알 수 없는데, 연락 한번 하지 않고서 사실 그리운 마음이었다 말하는 나의 게으름은 얼마나 뻔뻔한 일인지.
더는 '원래 내 성격이야.'라는 변명으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일을 회피할 수는 없다. 말하지 않는 감사함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해킹을 제보한 카톡 친구에게 말했다.
"고마워. 앞으로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일주일에 한 번 용기 내서 연락할게. 부디 답장해 줬으면 해."
약속은 '그럭저럭' 지켜가고 있다. 그럭저럭...
(17.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