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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탱글통글 Jul 24. 2017

외로움

달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시간은, 적어도 나에게 흐르는 시간은 독특한 존재다. 하루는 느린데 한달은 너무나 순간이다. 눈만 깜빡인 것 같은데 벌써 반년이 넘게 지나있다.

 그리고 건조하게 지낸 하루하루 였는데도 뒤돌아서 생각해보면 정말 즐거운 반년으로 포장되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즐거웠는지는 모르겠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쭉 그렇게 정신빠진 상태로 살아왔던 것 같다. 친구들이 "그때 무슨무슨 일이 있었잖아" 라고 말하면 그제서야 아하! 하면서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혼자서 지냈을 때를 생각하면 도무지 뭘 하면서 지냈는지 모르겠다. 나름대로 엄청 정신없이 바쁘고 즐거웠던 것 같기는 한데...


"넌 너무 연락이 없어."

 

 그렇게 정신없기에 예전부터 종종 들어왔던 지적이다. 연락을 잊는다. 전화를 끊을 때마다 "다음에 먼저 통화할께!" 라고 당당하게 선언하지만 지킨적은 드물다. 몇 달간 연락하지 않아도 그렇게 힘들다고 느끼지 않는다. 애정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저 나에게 '주기적인 연락'은 게으름과 망각의 경계에 위치해 있을 뿐이다. 그렇게 친구가 많은것도 아니면서 관리를 너무 못한다. 물론 지금은 많이 노력한다고 생각(혹은 착각) 하지만, 역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김다다(da da)

 


 생각보다 해야 할 일 혹은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 읽기, 글쓰기, 그림연습, 공부, 스포츠 시청 등등. 안타깝게도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만 취미인 점도 한 가지 이유인 것 같고. 그러니까 적어도 나름의 변명거리는 있다는 말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로 바쁘지도 않으면서 연락조차 안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서 꼼지락거리며 살고 있으니까. "바빠서 연락하지 못했어..." 라고 조심스럽게 둘러댈 명분정도는 있다는 그런...


 그런데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외로움은 언제나 갑작스레 찾아온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들을 보다가, 자기 전 샤워를 마친 후에 차가운 탄산수를 마시면서, 침대의 서늘한 이불이 뺨을 스칠 때 문득문득 스며들곤 한다.

 물론 감정이란 것 자체가 '천사소녀 네티'처럼 "오늘 밤 당신의 마음에 찾아가겠어요." 라며 친절하게 예고장을 날리진 않겠지만, 외로움은 뭐랄까 애완견이 죽어서 슬프고, 상대방이 욕을 해서 화가 나고, 손을 잡아줘서 설렌다 와 같이 원인과 결과가 매끄럽게 이어지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속 시어머니처럼 맥락없고 급작스런 방문이다.



 


 그래서 종종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누구와 즐겁게 이야기라도 하는 중 갑작스레 외로움이 찾아올 때면, 나는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마치 탈피를 끝낸 매미처럼 껍질만 그곳에 남겨둔 채, 마음은 저 멀리 날아가 외롭다고 왕왕 울어버리는 일이 가끔 생긴다. 이유를 모르겠으니 대처하기가 힘들고 평정심을 유지하기도 힘들어진다. 그럴때면 마치 달에서 외롭게 지구를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외로움이 예고도 없이 문을 열 때면 나는 항상 노크 없이 방문을 연 부모님 앞 사춘기 소년처럼 당황하고, 분노하다가, 이따금 눈물까지 흘리곤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당하고 당황하다가 나름대로 찾아낸 대처법이 글쓰기였다. 암에 걸려서 병원 침대에서의 시간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체력적으로 무리 없이 혼자 조용하게, 하고 싶은 모든 말들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엔 보여줄 생각도 없었으니 말과 달리 뱉고 없던 일로 만들기도 수월했다.

 그리고 여전히 주로 급작스러운 외로움을 부드럽게 흘려보내기 위해 쓴다. 글에 묻어있는(혹은 표현하려고 했던) 슬픔은 대부분 그런 것들에 관한 표현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문장이 맥락 있다든지, 수려하다든지, 교훈을 준다든지, 그러다가 유명해져서 돈을 버는 것 같은 건 관심과 능력 밖이다(노력은 한다).



Yes, I want!!


 그저 외롭지 않고 싶어 끄적인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기적적으로 마누라의 유전자가 몰빵 된 기특한 아이들을 키우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후손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게 된다면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글을 쓰지 않아도 괜찮을까? 이따금 찾아오는 외로움이 내게 흥미를 잃을까? 떠나가는 외로움을 웃으며 보낼 수 있을까?


 가끔 상상해보지만, 확신은 없다.

 

 주변의 모두가 각자의 외로움을 지니고 사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도저히 외로울리 없어 보이는 사람조차도. 착하든 이쁘든 돈이 많고 친구가 많은 것 '따위'는 상관없었다.

 둘러싼 것들은 소용없다. 아무것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원치 않게 상어가 걸려버린 어부처럼 낚싯줄을 풀고 조이며 애쓰는 것만이 방법이다. 소중한 낚싯줄을 쉽사리 끊어버릴 수는 없으니까.

 갑작스러운 외로움의 공격에 시퍼런 바닷물로 휩쓸려가지 않으려면 비교적 능숙하게 그리고 유연하게 감정을 밀고 당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럭저럭 앞가림하는 노인(목표 중 하나)이 되려면 말이다. 앞으로도 표류하는 땟목 위에서 조용히, 혼자서 그리고 꾸준히 "어기~ 영차!" 하면서 테크닉을 익혀 나가야 하는 수밖에.

 외로움은 해결 방법조차 고독하다. 정말 별난 녀석이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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