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안녕!(2)

29살 혈액암 환자의 인생 적응기

by 김탱글통글

나는 항상 산 근처에서 이것저것 많이 주워 먹으며 다녔다. 한동안 밤을 주워 삶아 먹다가 나중에는 주인아주머니의 허락을 받고 텃밭의 야채를 뽑아 먹었다.

“언제든지 뽑아 먹어요. 몸만 좋아진다면 텃밭 전부를 뜯어먹어도 돼요.” 내가 만난 사람들은 언제나 나에게 친절하다.

새잎이 돋아야 하니까 안쪽 깊숙이 손을 집어넣어서 티슈를 뽑듯이 조심스러운 스냅으로 뽑아야 한다. 주로 대충대충 썰어서 깨끗이 씻고 큰 그릇에 담아 들깨 드레싱을 뿌려먹었다. 샐러드는 간단한 노력으로도 썩 괜찮은 맛을 낼 수 있어서 좋다.

Ceasar-Salad.jpg 샐러드는 짜게 먹을수록 맛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야식을 사서 먹는 날도 있었다. 집은 가로등마저 외면한 구석진 산속에 숨어있었다.

달빛이라도 없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저녁에 나갈 때는 항상 큰 손전등을 가지고 다녔다. 도시에서는 본 적도 없는 어두움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갇히면 거리감은 사라지지만 긴장감은 극대화된다. 좁은 화장실이 어두운 것과 날 둘러싼 세계 전부가 어두운 것은 느껴지는 공포감의 크기가 다르다.

몇 번 정도 이런 완전한 어둠을 경험하고 나니까 서울에서의 밤은 더 이상 무서워지지 않았다. 아니 서울에 진정한 밤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하루는 전 여자친구가 호수를 찾아왔다. 항상 뭐라고 부르며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옛 여자친구, 전 여자, 헤어진 애인 모두 소름 돋게 어색할 뿐이다.

헤어졌지만 연락은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헤어지지 않은 것처럼 행동할 때도 있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치를 떨며 싫어했을 행동을 내가 그대로 하고 있었다.

그녀가 찾아온 날은 유난히 뜨거운 태양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모든 것이 짜증 나는 하루였다. 이런 날은 하염없이 무기력해진다.

간단하게 음식을 만들어 먹고 산책을 하다가 집에서 쉬는 중에 그녀는 조용히 잠들어 버렸다.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의 어깨부터 이어지는 가냘픈 손이 등을 따라 허리까지 부드럽게 흘러간다.

그 선에 완전히 반해버려서 그저 보고만 있어도 좋았던 적도 있었다. 산 밑의 날씨는 제법 쌀쌀해서 나는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고는 의자에 앉아서 손에 집히는 책을 읽었다.

그녀는 한 시간 정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는 집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커피 한잔 마시고 가지 않을래?” 버스정거장으로 바래다주면서 내가 물어보았다. 너무 무뚝뚝하게 말한 것 같아서 나는 다시 한 번 “이 앞에 괜찮은 커피집이 있어서”라고 말했다. 마치 어색한 소개팅 자리에서 마지못해, 상대방에게 예의를 차리며 물어보는 듯한 말투였다.

카페는 도로 한복판에, 태평양을 표류하는 돛단배처럼 덩그러니 위치해 있었다. 그녀는 테라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무언가 초조한 듯이 담배를 피웠다. 말없이 담배를 피우는 그녀가 다소 쓸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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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나는 그 초조함이 어떤 말을 시작하기 전의 준비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 그녀가 갑자기 물었다.

갑작스러운 물음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침묵하기로, 투명해지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주변의 풀과 나무, 도로의 차량들이 나의 처량한 변명과 당혹스러움을 감추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순간의 정적이 오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뒤섞인 그녀의 한숨이 우리의 가장된 태연함을 무너뜨렸다.

커피 컵을 신경질적으로 탁 하고 내려놓고는 그녀가 말했다. “이제 슬슬 가야겠어.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지금 그녀의 행동에서는 따뜻했던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짐짓 태연한 척 그녀를 버스정거장까지 바래다주었다. 희미한 죄책감을 느끼면서. 어쩌면 이제 다시는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그녀가 새로운 남자를 만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항상 사람과의 관계가 서툴다. 만약, 새로운 남자가 나타난 후 우리가 각자의 마음을 조용히 마무리 지었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을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적어도 이렇게 씁쓸한 기분은 아니었을 텐데.

그 후로도 시간은 나 따위의 기분은 신경도 쓰지 않고 꾸준히 흘러갔다. 카페 아주머니의 부탁으로 자녀의 영어 과외를 시작했다.

영하는 머리를 빡빡 밀어 6.25 전쟁난민 같은 몰골을 하고 나타나서는 맥도널드 쿼터파운더 치즈버거를 게걸스럽게 해치우더니 다음날 군대에 입대해 버렸다.

영하가 떠나면 나는 항상 병이 생긴다. 친구가 나의 수호요정이라도 되는 걸까. 그건 좀 생각만으로도 징그러운데.

친구가 입대한 바로 다음날부터 얼굴이 걷잡을 수 없이 붓기 시작하더니 제주도의 돌하르방 같이 땡땡 부은 얼굴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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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살색 피부를 가진 돌하르방은 대단히 징그럽다. 급하게 찾아간 성모병원의 의사는 고기 판별사 같은 표정을 하고는, 나에게 남은 수명을 3개월 정도로 예상했다. 음식의 유통기한을 살펴보듯 환자를 대하는 의사는 치가 떨린다.

결국 병원과의 독립을 꿈꾸며 패기 넘치게 서울을 뛰쳐나갔던 나는, 카노사에서의 하인리히 5세 같이 세브란스의 의사 앞에 굴욕적으로 돌아와 3개월간의 짧은 항쟁을 마치고 항복해버렸다.

왜 행복한 시간은 항상 순간일까? 행복은 짧고 고통은 길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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