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만 웃었다. 마스크를 써서 보이지 않겠지만(1)

29살 혈액암 환자의 인생 적응기

by 김탱글통글

신촌 세브란스는 잠실 근처에 있는 우리 집에서 한강을 끼고 한 시간 정도 되는 거리에 있다. 이 한 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최대한의 자유를 즐기기 위해 몸부림친다.

병원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간장게장을 담그듯이 나를 항암제에 푹 절여야 하니까.

게들이 게거품을 물고 몸을 버둥거리며 저항해도 결국에는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간장이 스며들 듯이 내 몸에도 항암제가 스며들 것이다.

나는 그런 끔찍한 짓을 내 돈을 써가면서 하고 있으니까. 나란 놈은 얼마나 한심스러운가.

간장게장은 맛있기라도 하지.

217599_113586_142.jpg 나도 간장게장 먹고싶다..

내가 치료를 받던 제중관은 마치 731부대의 마루타 감옥처럼 음침한 분위기를 풍겼다. 원한 서린 귀신들이 둥둥 떠다닐 것만 같다.

외관은 빛바랜 하늘색에 주황색 굵은 줄이 그어져 있는데, 페인트들이 다 갈라져서 마치 거대한 딱지 덩어리 같았다. 새로 지어진 깨끗한 현대식 건물들 사이에서 혼자서만 덩그러니 이질적인 모습으로 쿡하고 박혀있다.

제중관이 설립된 지 130년이 되었다는 판넬이 병원 정문에 자랑스레 붙어있었다.

130년 이라니, 그 수많은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환자들의 비명이 제중관의 땅 밑으로 녹아내렸을까. 소름이 돋는다.

이곳은 온통 암 환자 들로 뒤덮여있다. 정말이지 ‘뒤덮여’ 있다.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이 크게 놀랄 일이 아니게 되는 몇 안 되는 장소다.

암 환자는 다들 비슷하게 생겼다. 같은 '종'의 모임들이 생김새가 비슷해지는 것처럼 항암 치료를 하는 환자들도 서로를 닮아간다.


e.jpg 다단개

사람의 외모란 것이 생각보다 단조롭다. 근육이 빠지고 머리카락과 눈썹도 몽땅 사라진 상태로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다들 비슷비슷해 보인다.

하루는 수액을 달고 병원 복도를 힘겹게 걷고 있었는데 젊은 남자 한 명이 반가운 표정으로 불쑥 말을 걸었다.

“아이고. 안녕하셨어요? 잘 지내시죠?”

내가 아는 사람인지 재빠르게 머릿속 인물사전을 넘기며 대답했다. “아..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암환자는 절대 잘 지낼 수 없는데 관습적인 질문에 그만 습관적으로 대답해 버렸다.

“몸은 좀 어떠세요?”

“치료를 받고 있기는 한데 체력이 많이 부족하네요.”

“힘드시겠어요.”

“힘들어도 어쩌겠어요. 어쩔 수 없지요.”라고 말하면서 입으로만 웃었다. 마스크를 써서 보이지 않겠지만.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힘내세요!”라고 말하면서 아저씨는 씩씩한 발걸음으로 반대쪽 복도를 향해 걸어갔다.

모르는 사람인데.

“나는 당신과 모르는 사이랍니다.”라고 말해주어야 했을까. 하지만 오랜만에 바깥의 사람과 대화하는 건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저 사람이 후에 나와 착각했던 그 환자를 만난다면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지. 신화나 민담 같은 것도 의외로 이런 얼토당토않은 식으로 탄생되는 걸지도 모른다.

그 후에도 두세 번 정도 모르는 사람과 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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