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만 웃었다. 마스크를 써서 보이지 않겠지만(2)

29살 혈액암 환자의 인생 적응기

by 김탱글통글

병실에서는 거의 항상 내가 가장 어리다. 어쩌면 암 병동의 환자들 중에서 가장 어릴지도 모른다. 어쨌든 20대 초반의 암 환자는 흔하지 않으니까.

나는 다른 노인 환자분들과 어울리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다. 간병인 아주머니들과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을 대하는 일이 나에게는 어색하다.

물론 가식적으로 미소 지으면서 접대하는 일은 자신 있지만 다 같이 죽어가는 암 병동에서 그런 건 어쩐지 대수롭다. 게다가 나는 선천적으로 싸가지 없는 사람이니까.

간병인 아주머니들은 항상 티브이를 틀어 놓는다. 환자의 휴식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간병인들의 무료함을 이해 못할 정도로 쪼잔한 사람은 아니지만 매일 저녁 “웃어라 동해야”를 강제로 시청해야 하는 것은 괴로웠다. 침대 위치가 티브이 바로 옆이라서 커튼을 쳐도 소리가 들려온다.

Untitled-2.jpg 제임스 ♡ 안나

그런데 매일 같이 보고 듣다 보니까 어느샌가 나도 내용을 모두 알게 되었다. 간병인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웃어라 동해야’에 대한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으면 짐짓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오! 제임스가 드디어 실마리를 찾아냈구나.” “아니, 아니 안나의 풀 네임은 안나 레이커라고요.” 라며 마음속으로 참견을 하고는 했다.

결말을 보지 못한 체 무균실 격리 치료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안 보게 되었는데, 안나는 제임스와 잘 이어졌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간병인들과 노인들이 일일드라마에 열광했던 이유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노인 암환자가 있는 병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게다가 어쩐지 내가 있었던 방은 하드코어 환자들만 있는 것처럼 일주일에 한분 정도는 시체가 되어 병실을 떠나셨다.

잔인한 현실의 고통보다는 가상의 드라마가 훨씬 매력적이니까.

하지만 병실에서 내가 목격한 고통보다 더 잔인한 모습은 가족들의 외면이었다.

어느 날 건너편 할아버지 한분의 다섯 자녀가 모두 병원에 모였다. 머리를 맞대고 수군수군 거리다가 갑작스럽게 언성이 높아졌다.

“그럼 지금 나보고 병원비를 다 지불하라는 거예요?”

“우리 집 사정 뻔히 알면서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아니 일단 병간호는 누가 할지부터 정해야 하잖아.” 턱살이 세 겹 정도 접힌 모피 코트를 입은 아주머니가 말했다.

Howls.Moving.Castle.2004.DVDRip.XviD.AC3.CD1-JUPiT.avi_0034.jpg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타입(하울의 움직이는 성)

“돌아가면서 하는데 시간이 안 되면 돈으로 메꾸던가.”

“더러워서 돈 낸다. 내! 계좌번호 문자로 보내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곱슬 파마를 한, 눈썹 문신이 인위적으로 그려져 있는 아주머니가 보라색 파우치 백을 신경질 적으로 집어 들며 말했다.

침대에 모른 척 누워계신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슬퍼 보였다. 벽으로 고개를 돌린 노인의 흰자와 눈동자의 경계처럼 희미해져 버린 서로 간의 유대감은 누구의 잘못일까?

돈의 탓일까. 아니면 세월의 야속함일까.

끝자락에 레이스가 수 놓인 분홍색 실크 드레스를 입고 천진하게 뛰어노는 손녀딸의 모습이 비극을 더 극대화시킨다.

이 사건 목격한 후, 나는 감정이입의 패러독스에 빠져버렸다.

피해자에게 감정을 이입할수록 도와줄 확률은 높아진다. 하지만 어느 선을 넘어버리면 관찰자는 괴로운 상황을 회피하고 피해자와 거리를 두고 싶어 진다.

나는 주변의 상황들과 나를 단절시켜버렸다. 아픈 것은 나 혼자만의 고통으로도 충분히 벅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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