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이 계속되면 궁상이 되어버린다(1)

29살 혈액암 환자의 인생 적응기

by 김탱글통글

내 몸은 외형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물론 대머리에다 코가 사라져 있기는 했지만 내 말은 적어도 팔다리가 잘려서 피가 흐르거나 화상을 입어서 붕대를 감고 있는 것처럼 “아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항상 세상이 항암제로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울렁거리고 역겨워서 시도 때도 없이 토를 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눈알을 누른 상태로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것 같이 시공간이 휘어진다.

사랑과 재채기는 감출 수 없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토였다. 아침에 흉부 엑스레이를 찍으러 가는 20미터 정도의 거리에서조차 항상 세네 번씩 토를 했다. 그러면서도 매일같이 새벽 5시 반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토를 하면서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다. 마치 성실한 좀비처럼.

토에 관한 수필도 썼었다.

어느 날 검사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도대체 매일 복도에다가 토하는 사람이 누구야아아아와아아앜!”하며 절규하시는 메아리가 들렸다.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시도 때도 없이 토를 하니까 나중에는 위에서 초록색 액체를 꾸역꾸역 게워냈다. 마치 뱃속에서 “들어가는 게 있어야 뭘 내보내지.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요?”라고 말해 오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몸은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들처럼 상식을 벗어났고 기묘했다.

난 이상한게 아니라 정상이 아닌건데요?

어느 날은 뼛속의 골수까지 시려서 이불을 두 겹이나 덮고서도 벌벌 떨다가, 다음날이면 혼자 사막 한가운데 던져진 것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입부터 항문까지 이어지는 소화기관이 모두 망가져서 몇 주를 아무것도 안 먹으며 누워 있다가도 갑자기 미친 듯이 배고파서 영양제 두 캔을 순식간에 들이켰다. 물론 곧바로 침대에 토해내서 한바탕 소동이 났지만.

한 번은 폐의 염증을 검사하다가 흉부에 공기가 차서 폐가 쪼그라들었다. 병은 매번 창의적인 방법으로 나를 찾아온다.

결국 옆구리 갈비뼈 사이에 사람 중지 손가락 굵기의 호스를 삽입했다. 뼈 사이로 튜브가 들어가니까 “아...아읏.. 거.. 거기는 안됬..!”같은 망가 속 여주인공이나 말할 듯한 대사가 저절로 나왔다.

폐 속에 볼펜 한 자루가 가로로 박혀있는 것 같이 조금만 움직여도 쌍욕이 나올 정도로 고통이 몰려왔다. 삼일을 미동도 안 하고 앉아만 있었더니 발이 팅팅 부어서 슬리퍼가 들어가지 않았다.

이때는 정말 죽어버리고 싶었다. 적어도 죽고 나면 아프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죽을 용기가 없다. 꾸준히 아프면서도 순간의 아픔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 아픔이 원통하고 분해서 눈물을 찔끔 흘려도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다.

나는 몸이 불타거나 어디가 잘려나간 것은 아니니까. 물론 누군가에게 처참히 살해된 것도 아니다. 난 어찌 되었든 ‘치료’ 중이니까. 나아지는 중이니까.

한끼 알약. 아침부터 한알 한알 힘겹게 삼키다 보면 같은 양의 점심약이 도착했다.

아픈 일도 많고 힘들었던 일도 많아서 자세를 고쳐 잡고 앉아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싶지만 애써 참는다.

어차피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다. 인간의 무의식이 자기방어를 위해 공감을 거절한다. 인간은 그렇게 태어났다. 아무리 비참한 비극이라도 결국에는 남자의 군대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지루해져 버린다.

한탄이 계속되면 궁상이 되어버린다.

그러니 쓸쓸해도 꾹 참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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