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이 계속되면 궁상이 되어버린다(2)

29살 혈액암 환자의 인생 적응기

by 김탱글통글

실험실의 생쥐같은 이런 나날이 계속되면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하루는 갑자기 “이제 조금만 있으면 영락없이 죽어버리겠구나”라는 생각이 온 정신을 지배했다.

3차 항암치료를 끝내고 집에서 일주일 동안 쉬고 있을 때였는데, 힘든 와중에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가을바람이 차가워서 집으로 다시 들어갈까 싶었지만 이미 곧 죽을 것이라고 단정 지어버린 마당에 두려울 건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런 궁상을 떨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에는 절박했으니까.

한발 한발 내딛다 보니 어느새 어릴 때 살던 아파트에 도착해 있었다. 20년 전의 나는 지금 서있는 이 공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KakaoTalk_20160428_200330609.jpg 어릴 때는 밥도 항상 떠먹여주셨다. 넘나 호화스러운 생활.


지금의 나도 그때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다. 너무나 간절해서 어쩔 때에는 행복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분노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정말로 알 수가 없다.


그곳은 여전히 차들로 가득했다. 아파트의 도로가 차들로 구겨져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아파트에 살 때 아버지는 검은색 사각 그랜저를 몰고 계셨다.

그 당시로서도 꽤나 구식에 창문도 수동으로 열어야 했지만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그 직각 그랜저가 굉장히 멋져 보였다. 부자가 된 것 같아서 우쭐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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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다시 그때를 떠올려 보면 나 자신이 우습다. 사각 그랜저에 우쭐해하는 초등학생이라니.

부유함이 주는 자신감은 이렇게나 유치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계속 걷다 보니 관호의 집이 나왔다. 친구는 나와 같은 공간에서 자라 왔다. 같은 동네에서 같은 초, 중, 고, 대학을 다녔다. 교집합이 많을 수밖에.

20살 때는 검은색 스쿠터를 몰고 다녔다. 그 친구와 같은 대학을 다녀서, 수업시간이 겹치는 날은 항상 친구를 픽업해서 갔다. 기다리는 걸 싫어해서 음식점에 줄이 조금만 있어도 금세 포기해버리는 친군데 자기는 항상 약속시간에 늦게 나와서 날 짜증 나게 했다.

dfdfdfdffd.jpg 9시 수업인데 항상 8시 45분쯤에 엉덩이를 긁으면서 나왔다. 화나..

지금 서있는 이 자리에서 인사처럼 욕을 하고 같이 담배를 한 대 피운 후 부랴부랴 학교로 갔었다. 하지만 지금 그 친구는 미국에 가있고 나는 온몸의 털이 빠진 58kg의 초라한 몰골로 이 자리에서 그때를 추억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때처럼 행복할 수 없다.


갑자기 분하고 억울해져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눈가에 핏줄을 세우고 얼굴이 벌게져서는 주먹을 꽉 쥐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결여되어있다. 틱 장애처럼 문득문득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이런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오랜 투병생활로 정신마저 병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감추기가 힘들어져버렸다.

나는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년간에 걸친 다양한 치료들과 합병증으로 나는 고통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몇 년 전에 부분마취로 중심정맥관 삽입술을 했었다. 고용량의 항암제를 투입하면 일반 혈관이 녹아내리니까 심장 쪽 혈관에 직접 바늘을 연결해서 투입해야 한다나.

KakaoTalk_20160425_204715479.jpg 봉합은 스테이플러로 한다. 프랑켄슈타인이 되는 기분이었다.


수술대에 누워 있으니 인턴이 와서 녹색 천으로 눈을 가렸다. 수술이 시작되고 나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었는데 천을 완벽하게 가리지 않아서 내 몸을 실시간으로 찍고 있는 엑스레이가 보였다. 내 몸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는 튜브를 몸 안이 보이는 모니터를 통해서 지켜보는 건 꽤나 그로테스크하다.

의사들도 결국 사람이다. 컴퓨터처럼 완벽하게 모든 수술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마치 유체이탈을 한 것처럼 다섯 발자국 정도 뒤에서 의사가 내 몸을 푹푹 찌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JAnaesthClinPharmacol_2013_29_3_397_117114_u6.jpg 대충 이런 느낌의 모니터였다.


그런데 막상 그 모습을 직접 대면하니까 생각보다 고통스럽지 않아서 놀라웠다.

매번 가리고 있으니까 외면하고 있으니까 더욱 두려웠던 것이다. 아픔은 눈을 똑바로 뜨고 정면으로 냉철하게 마주 보면 생각보다 이겨내기 쉬워진다.

아, 수술대 위에서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고통이 다 무엇인가. 아픔과 번뇌란 무엇인가.

마치 성불이라도 한 것 같다.

삽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스테이플러를 박으며 피부를 봉합하는 중에 부분마취가 풀려간다.

“앗 땃 따것!!”

신경질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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