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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탱글통글 Sep 25. 2017

반성하는 글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는데..

 그날은 유독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깼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를 정도로 쓰라렸다. 눈물을 닦을수록 눈이 간지러워져 마른 동공에서 물수건을 쥐어짜듯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불을 켜고 컴퓨터로 기어가 인터넷 뉴스를 킬 때까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멍한 정신과 흐릿한 시야로 기사를 훑는 중에 멕시코 지진 속보를 보았다. 강진이 있었고 현재까지 발견된 사상자는 5명이라고 했다. '강진치고는 사상자가 적네... 다행이다.'라고 생각했고 곧바로 후회했다. 부끄러움으로 졸음이 사라져서 정신이 퍼뜩 들었다. 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날 저녁에는 사촌 누나에게 SNS 메시지가 왔다. 누나는 외가의 장녀다. 나랑 다르게 활동적이고 주변에 관심이 많다고 해야 할까, 자기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이다. 올해 결혼을 했다. 약간은 늦은 나이였다. 사실 누나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 살 것 같았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대단히 수다스럽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혼자 살아갈 줄 알았는데 어쩐지 약간은 허무할 정도로 휙 가버렸다. 성당에서의 결혼식이었다. 누나는 긴장 하나 없이 여전히 수다스러웠다. 신부 대기실에서 수많은 친구와 기계적으로 웃으며 사진을 찍는 누나를 보면서 나는 약간 울먹였다. 뭐 막말로 팔려가는 것도 아니고, 특별나게 친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사진앨범에 있던 갓난아기인 나를 안고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 누나의 사진이 떠올라서 뭉클했다.


 누나는 을 마치고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떠났고, 몇 달 뒤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잘 들어가지 않는 SNS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타이밍 좋게 누나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아기는 연말에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여자아이에, 마땅히 "이거다!" 싶은 이름이 없어서 고민 중이라고 했다. 초음파 사진도 보내주었다. 어느 정도 인간의 형태는 잡혀있는 상태였다. 노산이니까 힘내..라고 말하려다가 관뒀다. 고민하다가 "뒤통수가 되게 동그랗고 이쁘다."라고 칭찬했고 나중에 메시지를 본 동생에게 비웃음 당했다. 그 후 누나는 마치 '택배 오면 연락할게!'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아기가 나오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담담하게 말하고서 대화창을 떠났다.

 누나에게도 자식이 생긴다. 그 아이는 나와 다른 세대를 살아가는 존재일 것이다. 서로의 호칭조차 한참을 생각해봐야 할 정도로 우리는 다른 세대와 시간, 공간을 살아가겠지. 미국에서 자랄 테니 만날 기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어쩌다 만나더라도, "킴 아저씌 안녕하쉐요우."라고 어색하게 인사한 뒤, 구석으로 가서 스마트 폰이나 붙잡고 있겠지. 아마 평생에 두세 번이나 보겠지 싶지만, 나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이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너의 소식은 나를 참 기쁘게 했다. 건강하게 태어나길 바란다. 그리고 꼭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지혜롭고 아름답게 자라나기를 소원했다. 진심이었다.



 그날 오전, 나는 '고작' 다섯 명이 죽은 것에 안도했다. 그리고 밤에는 배 속의 아기를 축복하고 기뻐했다. 모르는 다섯 목숨은 가벼웠고 어설프게 알고 있는 한 생명은 소중했다.


혹시나 마이클 샌델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의 운전자인 당신의 철로 앞에는 인부인 아버지가 일하고 있다. 버튼을 누르면 비상 철로로 우회할 수 있지만, 그곳에는 다섯 명의 인부가 있다. 당신은 버튼을 누를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버튼을 누를 인간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선택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그래도 다섯 명의 인부를 살려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런 인간은 아니었다. 사실은  선택 중 정답이 있기는 한지조차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마음속 모르는 다섯 명의 목숨보다 알고 있는 한 명의 목숨을 선택하는 사람이라는 건 알아버렸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날 부끄럽게 한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나는 하늘로 간 다섯의 생 명복을 빌었다. 먼 나라에서 고작 다섯이 죽었다며 안도하고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하나의 생명에 기뻐하는 이런 이중적인 인간의 변변찮음에 사과드립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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