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혈액암 환자의 인생 적응기.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는다는 건 어쩐지 외로운 일이다.
죽은 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찾아오고, 그들은 내가 세상에 없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어떠한 표정을 지을지. 죽고 나면 영원히 모를 상관도 없어질 일들이다.
나름대로 위대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위인들과 천재들이 태어났다. 무수한 발명과 발견들이 이루어졌지만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도, 존경해 마지않는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조차도 그들의 장례식에 관한 일은 알지 못한 채 죽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나의 모든 것이 시시해졌다.
6년 정도의 병원생활을 하면서 항상 콧김이 느껴질 정도로 뒤통수에 붙어있는 죽음과 더불어 20대를 보내왔고, 그래서 한 명의 사람과 가까워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간절한 일인지 알고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내가 발견한 인생은 외로움과 시시함 뿐이란 사실은 날 비참하게 만든다.
등 뒤의 그 녀석은 굳이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근육질의 마초 같은 이미지보다는 삐쩍 마른 몸과 유난히 튀어나온 목젖, 심하게 움푹 패여 눈썹 밑으로 짙은 음영이 드러날 정도로 쑥 들어간 눈두덩이를 가지고 애처롭게 남은 몇 가닥의 흰머리를 소중히 길러 황량한 윗머리에 조심스럽게 걸친 헤어스타일을 가진 80대의 할아버지 같은 이미지다.
이 할아버지는 마음 한구석에서 조용히 앉아있다가도, 이따금씩 내뱉는 콜록콜록 기침소리가, 문득문득 사람을 답답하게 하는 그런 타입이다.
밉상인 할아버지의 엉덩이를 발로 뻥 차서 문밖으로 내쫓고 싶기도 하지만, 이 할아버지를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다. 나와 할아버지는 종종 둘만의 티타임을 가져왔다. 나를 닮아있는 이 할아버지에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묘한 동질감이 때때로 나를 위로하니까.
길 건너편에 학진이가 보인다. 시력이 좋지 않아서 고속도로 표지판을 읽는 것조차 애먹는 나지만, 멀리 보이는 저 실루엣이 친구라는 사실은 확신할 수 있다.
두툼한 패딩에 두 손을 푹 찔러 넣고 옷 속에 옷걸이를 넣고 있나 싶을 정도로 두 어깨를 힘껏 추켜 올린 채 길쭉하고 가느다란 다리를 성큼성큼 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친구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4~5학년 즈음이다. 기억력이 나쁜 탓에 30년 전통의 설렁탕 국물처럼 뽀얀 색의 흐리멍덩한 기억 속의 친구는 상당히 까칠하고 똑 소리 나는 친구였다.
약간은 신경질적이고, 공부를 잘하고, 나와는 확실히 다른 타입이어서 쉽게 다가가기 힘든, 다가갈 마음도 들지 않는 그런 친구였다.
서로의 존재만 알고 지내다가 고등학교에서 같은 반으로 다시 만났을 때, 확실히 변해있는 친구가 사뭇 놀라웠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친구는 나와 많이 닮아 있었다. 물론 본인이 이 말을 듣는다면 기분 나빠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됐든 나는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학진이와 친해지기에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그렇게 질이 좋은 학생은 아니었다. 물론 태생이 대충대충인 타입이라서 일진이나 양아치 같은 건 할 꿈도, 엄두도 못 내었지만, 게으르고 학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최악 이게도 말버릇도 안 좋았던 나는 학진이와는 맞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런 사이였는데 21살 1월에 둘이서 한 달 간 급작스레 뉴질랜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사실은 다른 친구와 계획된 여행이었는데, 비행기 표를 예매한 후 친구의 집에서 보내줄 수 없다는 통보를 듣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와 둘이 무작정 학진이네 집 앞까지 찾아가서 한 시간 정도를 설득했다.
뜬금없고 무례한 나의 제안에 친구는 당황한 듯 보였지만, 아예 마음이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부모님께 물어보겠다며 들어간 지 두 시간 후에 여행 허락을 받고, 그 주에 바로 뉴질랜드로 향했다.
이렇게 내 인생의 최고의 게이스러운 여행을 하게 되었다.
아랍 거지 스타일의 길고 굵은 웨이브 헤어스타일을 하고 달라붙는 청바지를 즐겨 입는 남자와 뿔테 안경을 쓴 공대생 스타일의 마른 체형을 가진 남자 둘의 뉴질랜드 여행은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었다.
사람보다 모기 시체가 더 많았던 유황온천 트윈 룸 데이트, 마오리족의 춤과 함께하는 호텔 저녁 같이 유럽 늙은 노부부의 여행코스에서나 들을법한 추억들은 지금 생각해도 유쾌하기만 하다. 여행은 쉬러 가는 거라고 굳게 믿는 나와, 많은 것을 보고 관광하는 여행을 추구하는 학진이가 서로 뒤섞이면서, 적당히 쉬면서 관광도 즐기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여행 이후로도 종종 어울리면서 게임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꾸준히 연락을 하게 되었고, 내가 암 투병을 할 때도, 완치 후 주어진 과제들로 힘들어하는 중에도 나를 묵묵히 지켜봐 주는 친구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