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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탱글통글 May 20. 2016

커닝의 추억

한번 접힌 종이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백하자면, 대학교 1학년 때 커닝을 시도한 적이 있다.

07학번이 신입생으로 불리던 옛날 옛적, 파릇파릇한 신입생이었던 나는 선배들의 간곡한 진언에도 불구하고 패기 넘치는 21 학점 풀 수강신청을 해버렸다.


신입들의 문제점은 항상 의욕이 과도할 정도로 넘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중용'의 덕을 강조하였는데, 그때의 내가 이것을 알았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ㅉㅉㅉ...



꽉 채운 학점과 훌륭한 성적으로 학교를 조기 졸업하겠다는 찬란한 목표에 반해, 나의 머리와 의지는 시궁창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성적을 결정짓는 기말고사 시험을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골고루 망쳤다.

나는 꽤나 민주적인 사람이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로 정말 뭐 하나 잘 본 것 없이 고루고루 망했으니까.


21 학점을 수강 신청하는 나의 뒷모습을 아련하게 바라보던 선배의 눈망울이 불현듯 떠올랐던건 왜일까..




컨닝의 핑계를 대자면 절박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매의 새끼가 팔랑이는 절박한 날갯짓, 흡사 그것과 같은 절박함이었다.

술 마시고 놀러 다니는 것이 학교생활의 전부인 듯 살았으면서 무엇이 절박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당시에는 꽤나 다급했다.


금요일은 과의 상징과도 같은 무역학원론의 시험이 있는 날.


이것마저도 망치는 순간 무역학도로서의 나의 아이덴티티도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양심과 정의는 잠시나마 고이 접어두고 대학생활 첫 커닝을 시도하기로 결심했다.


아침 9시 시험까지는 대략 9시간 정도 남아 있다. 시험 범위는 책 반권 분량 정도.

커닝 방법은 책의 내용이 요약된 커닝지를 만들어서 시험지 밑에 깔아 두고 훔쳐보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예전부터 내려오는 클래식한 수법.

고전적인 방법이 주는 안정감은 심리적인 위로를 주니까.



뛰어난 스포츠 선수들은 심리적인 안정감을 잘 컨트롤한다고 전해진다.


커닝지는 대략 지금의 스마트폰 사이즈로 축소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처음에는 컨닝지에 적을 중요한 부분만 추려내기 위해서 전체적으로 두 번을 훑으면서 핵심이 되는 문장을 형광펜으로 밑줄을 쳤다. 교수님이라면 어느 부분을 시험에 출제할지 교수님의 마음가짐으로.

마지막으로 한번 더, 형광펜을 안 친 부분에서 혹시 빠진 부분은 없는지 확인한 후 커닝 페이퍼 만들기 돌입했다. 한 시간 정도 후에 정성스럽게 종이를 재단하고 꾹꾹 눌러쓴 커닝 페이퍼를 완성할 수 있었다.


1. 그런데 완성본을 보니까 글씨를 크게 쓴 것 같기도 하고 크기를 더 줄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글씨 크기를 줄여서 정성껏 다시 작했다.


2. 줄이고 나서 확인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필요 없는 내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 것 같아서 조금 더 자세히 간추려서 수정했다. 다시 컨닝지를 만들었고 결국 스마트폰 반칸 분량으로 축소했다.


3. 커닝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내용을 숙지하고 있어야 빠르게 스캔한 후 옮겨 적을 수 있기 때문에 남은 시간 동안 5번 정도 정독해서 읽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는 이제 끝났다. 이제 나머지는 내 손을 믿는 것뿐이다.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작년에 본 영화의 주인공이 나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아침의 찬 공기가 나의 감각을 더 날카롭게 해주는 것만 같다. 긴장감을 유지한 상태로 학교에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책상을 점검하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주변의 친구들이 분주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잭 웰치스의 경영철학은?"


"뭐?? 그런 학자가 있어?? 못 본 것 같은데... 으아 망했어 어떡해..." 옆 자리의 소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기업 이익은 경영진의 마인드와 관리방식에서 나온다. 마인드와 관리방식만으로도 기업이 생산과 마케팅에 최소의 돈으로 최대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잖아.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속으로 생각했다.


질문하는 친구가 소녀에게 다른 문제를 던졌다.

"그럼, 19세기 중반 독일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보호 무역 정책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 학자는?"



'프리드리히 리스트' 갑작스럽게 생각난 그 이름.


'?????'


아...! 그러하다. 커닝 페이퍼를 그렇게 정성스럽게 작성하다 보니까 어느 틈에 책 반권 분량을 모조리 외워버린 것이다. 나는 시간이 부족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나의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핑계를 댄 것뿐이었다.


'아... 고작 시험하나 잘 보겠다고 나는 얼마나 양심 없는 짓을 하려 했던가.. 부끄럽도다..' 


마음속에 잠시 접어두었던 양심과 정의를 다시 주섬주섬 꺼내서 펼치며 생각했다.

그래도 한번 접혀버린 자국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후회하는 부분 중 하나이다.


물론 지금은 접힐대로 접혀버렸다.




결국에는 컨닝지 없이 시험을 시작했다.

시험은 1문제 인가를 빼고는 전부 머리 속에 들어있는 내용이 나왔다. 1등으로 답지를 작성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제출한 뒤 시험장을 나왔다.

대학생활 동안 한 번도 커닝하지 않았다는 나 자신에 대한 뿌듯함. 시험을 잘 봐서 다행이라는 마음의 안도감.

어쩐지 시험장 밖의 햇살처럼 눈부신 대학생활이 펼쳐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다행히도 나의 대학 첫 커닝 시도는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 그리고 결국 무역학원론은 조별 점수 최하위로 C-를 받아서 재수강을 했다. 결국 대학은 과제점수가 정말로 중요하다. 그것이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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